쌓아가는 경험을 응원해 보자.
이번 주 한희에게 내가 한 질문은, 한희의 자존감과 자아효능감에 대한 것이었다.
사실 이 질문을 던지기 전부터 궁금했다.
나의 20대를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자존감’이나 ‘자아효능감’ 같은 용어를 몰랐다. 그저 열정적으로만 살았던 것 같다. 당연히 나는 나의 상황과 감정을 살피거나 관리한다는 개념을 알지 못했다. 관리의 대상이 무엇인지조차 몰랐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요즘의 20대는, 특히 내 딸 한희는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관리하고 있을까?
자존감과 자아효능감은 존재론적인 고정된 상태라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심리적 상태이다. 어떤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그 상태가 굳어져 성향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본래는 생각과 감정이 함께 움직이는 살아있는 경험이다. 따라서 나를 잘 챙기기 위해서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경험 상태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하다.
아빠로서 내가 보기엔 한희는 전반적으로 자신의 자존감과 자아효능감을 잘 관리하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부모라고 해서 자식을 다 아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언제 자존감과 자아효능감이 높아지거나 떨어지는지,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하고 관리하는지를 물었다.
한희의 답은 의외로 단순하고 명확했다.
한희는 운동 중일 때 자존감과 자아효능감의 변화를 많이 느낀다고 했다. 학교생활에서는 자존감이나 자아효능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자존감이 흔들릴 때는 친한 친구에게 털어놓거나 스스로 시간을 가지며 회복한다고 했다. 자아효능감이 떨어질 때는 문제의 원인을 찾아 그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한희의 대답]
● 운동 중 자존감이 높아질 때
- 유독 잘 해내는 부분을 발견했을 때(기술 습득이 빠를 때, 회복이 빠를 때)
● 운동 중 자존감이 낮아질 때
- 반복되는 부상(계속되는 부상으로 '운동선수라는 직업과 안 맞는 것인가..’라는 생각에 빠짐)
● 학교생활 중 자존감이 높아질 때
- 뛰어난 사회성으로 주변과 잘 어울릴 때
● 학교생활 중 자존감이 낮아질 때
- 없음
● 운동 중 자아효능감이 높아질 때
- 평소 두려워하던 상황을 이겨내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을 때(예를 들면, 항상 해저드에 빠지던 홀에서 페어웨이 중앙에 안착시켰을 때)
● 운동 중 자아효능감이 낮아질 때
- 짧은 거리 퍼팅 실수처럼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 그 상황을 맞아 실수가 반복될수록 자아효능감이 점점 더 떨어짐
● 학교생활 중 자아효능감이 높아질 때
- 목표한 대로 성적이 잘 나왔을 때. 열심히 공부한 내용이 시험 문제에 나와 자신 있게 정답을 적어낼 때.
● 학교생활 중 자아효능감이 떨어질 때
- 없음
● 자존감이 떨어질 때는 스스로 시간을 갖거나 정말 가까운 친구에게 이야기하면서 회복함
● 자아효능감이 떨어질 때는 자아효능감을 떨어뜨리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함
한희의 답변에는 흥미로웠던 점이 있다.
한희의 자존감과 자아효능감의 등락에는 타인과의 비교가 전혀 없다. 이는 분명 내적 귀인 성향의 결과다. 그 덕분에 한희는 스스로의 경험을 자기 책임 안에서 해석하고, 결과적으로 회복탄력성도 높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적 귀인 성향이 강한 사람은 때때로 책임감을 매개로 한 완벽주의로 흐를 수 있고, 그 완벽주의는 번아웃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그 점이 아빠로서의 나를 걱정하게 만든다.
아 맞다. 우리는 걱정보다는 응원하기로 했지.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 상황을 탓하기보다 스스로 깨우치고 노력하며 회복력을 키워가는 딸을, 나는 그저 믿고 응원하려 한다.
한희의 답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한희에게는 학교생활 중 자존감이나 자아효능감이 떨어지는 장면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추측건대, 아마도 학교에는 곧바로 회복할 수 있는 심리적 자원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 힘의 원천은 친구들일 수도 있고, 지금까지 쌓아온 성취 경험의 기억일 수도 있다.
어쩌면 한희가 ‘필드에서의 경쟁’이 아닌 ‘학교에서의 연구’를 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자신이 자존감과 효능감을 높게 유지하는 장면과 맥락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결국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이 다음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내면의 힘이 된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내게 쌓인 경험이 나에게 주는 긍정적 감정과 의미가 결국 나의 다음 선택지를 결정하는 진짜 힘이 된다.
그래서, 나의 경험이 나에게 쌓아주는 감정과 의미에 대해 잘 탐색하는 기술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탐색된 나의 감정과 의미를 내 성장의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심리적 기술 또한 중요하다.
한희가 지금껏 쌓은 경험들, 실패경험과 성취경험 모두를 자신의 성장의 기회로 잘 활용할 수 있길 기대하며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