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한계를 알고 있는가?

자신의 한계를 체계적으로 경험해 보는 과정을 가져보자

by 최용

나는 커리어 코칭 중에 피코치에게 본인의 역량 수준을 묻는 질문을 종종 던진다. 스스로 파악하고 있는 자신의 현 상태, 즉 '메타인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지난주 코칭에서도 한 피코치에게 ‘학습 역량’ 수준에 대해 물었다. "100점 만점에 80점 정도인 것 같아요." 그 수치를 어떻게 확인했느냐는 이어진 나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좋아하는 과목이라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받았던 최고 점수가 80점이었거든요. 제 인생에서 가장 잘 받은 점수였어요."


이 피코치는 그나마 자신의 수준을 가늠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과연 그의 학습 역량이 본인이 알고 있는 것처럼 ‘80점’일까? 이 답변은 자신의 역량을 '투입 가능한 에너지의 총량'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진 '결과값(성적)'으로 환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상대적 점수로 자신의 역량 수준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도 한계가 있다. 80점은 그 당시의 '상대적 결과'일뿐, 그 점수를 얻기 위해 내가 쏟아부을 수 있는 '엔진의 크기'를 설명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혹시 주량이 어떻게 되나요?" 소주 기준으로 반 병? 아니면 한 병?


아마 대부분의 독자는 주량, 즉 '음주 역량' 수준을 구체적으로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외의 역량 수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짐작된다.


왜 주량은 알면서 학습 역량 수준은 모를까? 학습 역량뿐만이 아니다. 집중력의 지속 시간, 스트레스 저항의 크기, 회복탄력성의 수준과 같은 자신의 한계를 대부분 잘 모른다.


우리는 자기 탐색보다 목표 탐색과 상황 탐색에 먼저 익숙해진 존재다. 그래서 정작 '나 자신'을 잘 모른다.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중간에 멈추지 않고 자신의 에너지와 역량이 고갈되는 지점까지 달려본 경험, 소위 '임계점'을 찍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경험이 부족하다. 내가 나의 주량을 아는 이유는 명확하다. 토하거나 필름이 끊길 때까지, 즉 한계까지 마셔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내가 나의 학습 역량 수준을 모르는 이유는, 내 에너지가 다할 때까지 공부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뚜렷한 목표가 있다 하더라도 자기 탐색이 선행되지 않으면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

현재 나의 수준(Current State)과 목표 수준(Target State) 사이의 간극(Gap)이 정확히 정의되어야 전략이 수립된다. 그래서 목표 설정보다 중요한 것이 내 수준에 대한 냉철한 이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기 이해도가 낮은 피코치와의 코칭은 자기 탐색부터 진행하게 된다.


이번 주에는 나의 딸이자 훌륭한 피코치인 한희에게, 스스로의 한계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물었다.


한희는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현 수준을 제법 잘 파악하고 있었다. 학습 장면에서의 집중력 한계는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라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다음 대처였다. 스스로 한계를 파악하고 있기에, 억지로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 하기보다 잠시 쉬었다가 집중력을 다시 충전하는 방식을 택한다고 했다. 한희는 피곤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휴식이 자신에게 가장 큰 충전 효과를 주는지도 잘 알고 있었고, 그에 맞춰 자신을 조절하고 있었다.


한희가 이토록 자신을 잘 조절할 수 있는 이유는, 과거에 1시간 30분 이상 억지로 앉아 있었을 때 효율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한계'를 이미 경험으로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계를 측정해 봤기에, 한계를 관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덧붙여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사실은, 한희는 같은 이야기를 세 번 반복해서 들으면 급격히 지루해한다는 것이다. 한희와의 대화에서는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절대 두 번 이상 반복하지 말아야겠다.)


신학기를 앞두고 고2, 고3이 되는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학습 코칭을 겸한 커리어 코칭을 종종 의뢰해 온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가 코칭을 통해 수능을 더 열심히 준비하는 변화를 갖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고등학생에게 수능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수능'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약자인 만큼 사회적 목적은 당연히 대학 입학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 입학에 관심이 적은 학생들에게 수능은 무의미한 것일까?


코치로서 나는 조금 다르게 본다.

내가 생각하는 수능의 숨겨진 의미는 단순한 '성취의 결과'가 아니라,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한계를 체계적으로 경험해 보는 과정'이다. 대부분의 학생에게 수능 준비 기간은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정신적·육체적 에너지를 끝까지 써보는 '의도적 한계 측정'의 시간일 것이다.

이 경험은 나를 탐색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다. 끝까지 달려보는 경험을 통해 나의 역량 그릇을 파악하는 것은 앞으로의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정이다. 마치 주량을 알아야만 인사불성이 되어 건강을 해치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현 수준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면(진단), 그 후에 해야 할 것들(처방)이 자연스럽게 찾아진다. 필요하다면 역량 그릇을 키우기 위한 훈련을 할 수도 있고, 한희처럼 내 그릇에 맞는 휴식 전략을 짤 수도 있으며, 나를 보호하는 나만의 방식을 알게 될 수도 있다.


한희의 답에서도 이와 맞닿아 있는 통찰을 발견했다.

"아빠 질문을 받고 저의 한계점들을 다양하게 생각하다 보니, 저는 그 한계점을 무작정 넘으려 애쓰기보다는 한계에 부딪혔을 때의 해결 방안을 미리 정해두는 것 같아요. 예전엔 이게 ‘도전 정신 부족’인가 싶기도 했는데, 이제는 나 자신을 다루는 방식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지가 아니라, 버티지 못하는 순간이 와도 나를 지킬 방법을 알고 있느냐가 아닐까요?"


'상황에 대한 탐색이나 목표에 대한 탐색'보다 '나'에 대한 탐색을 먼저 하는 습관을 들여보자.

그래서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스스로를 만들어 보자.


'나는 나의 한계를 알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