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탄력성은 어디서 오는가?

무조건적인 지지자(One Caring Adult)

by 최용

이번 주 한희의 질문은 ‘회복탄력성’과 관련된 것이었다.

스스로 느끼기에 본인은 회복탄력성이 높은 편인 것 같은데, 정말 그런지 궁금하다고 했다. 높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반대로 회복탄력성이 낮은 사람은 왜 그런지까지 함께 물어왔다.


한글로 번역된 심리학 용어들을 보다 보면, ‘왜 이렇게 번역했을까?’ 싶은 단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회복탄력성’이라는 용어는 꽤 잘 된 번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어 원어인 ‘resilience’보다 오히려 의미를 더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탄력적으로 다시 회복되는 능력. 왠지 이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삶에서 쉽게 꺾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에 대한 연구는 1970년대 발달심리학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위험요소가 많은 환경에서도 비교적 건강하게 성장하는 아이들의 특성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원래는 물리학에서 사용되던 이 개념이 심리학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전까지 학계에서는 ‘위험요소가 많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조현병 환자를 부모로 둔 아이들은 유전적·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정신질환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고, 알코올 중독 부모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은 범죄자나 사회부적응자가 될 확률이 높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달랐다.

그와 같은 환경에서도 많은 아이들이 비교적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연구자들은 질문을 바꾸기 시작했다. ‘왜 어떤 아이들은 그 환경을 뚫고 잘 자라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바로 ‘resilience’, 즉 ‘회복탄력성’이다.


그렇다면 '회복탄력성'은 타고나는 것일까?

대부분의 심리적 특성이 그렇듯, 기질과 성격에는 타고난 요소가 작용한다. 하지만 나머지는 후천적인 환경 속에서 채워진다. 회복탄력성 역시 마찬가지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타고난 기질의 영향이 있을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개인의 내적 심리자원보다도 가족, 친구, 주변 어른과 같은 관계자원, 그리고 가정환경과 학교환경 같은 맥락적 요인의 영향이 훨씬 크다고 보고한다.


한희의 높은 회복탄력성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타고난 기질의 영향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회복탄력성을 만들어낸 가장 큰 요인은 기질 같은 개인 내적 자원보다는 가족의 지지, 즉 관계자원의 힘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막내로서 누렸던 정서적 여유, 가족의 무한한 사랑과 보호의 대상이었던 경험이 한희의 회복탄력성을 키운 중요한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반대로 회복탄력성이 낮은 경우는 어떨까? 기질적으로 예민한 탓도 있겠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믿을 구석’의 부재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안전한 관계가 부족할 때, 마음의 탄력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개념이 있다. ‘무조건적인 지지자(One Caring Adult)’ 이다.

이 개념은 하와이 카우아이섬의 고위험군 아이들을 40년 넘게 추적 조사한 연구에서 제안되었다. 역경을 딛고 건강하게 성장한 아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를 믿어주고, 조건 없이 아이의 편이 되어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곁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한 명의 어른이 아이에게는 심리적 안전기지가 되었고, 그 안전기지가 바로 회복탄력성의 뿌리가 된 것이다.


나는 부모로서 세 번의 양육 경험을 했다.

세 아이를 키우며 쌓인 경험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아이는 막내인 한희일 것이다.

첫째 아이는 비교적 엄격하게 양육했다.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믿었다. 둘째 아이는 그 반작용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자유를 많이 허용하는 양육을 했다.

두 번의 양육을 거치며 분명히 알게 된 것이 있다. 부모 역할의 핵심은 엄격함이냐, 방임이냐 같은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아이를 향한 신뢰와 사랑을 어떻게 드러내느냐에 있다는 점이다.

부모는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무조건적인 지지자(One Caring Adult)’여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두 아들을 키우며 배우게 되었다.


나는 부모로서, 코치로서, 그리고 누군가를 응원하는 사람으로서 ‘무조건적인 지지자(One Caring Adult)’ 개념을 믿는다.

이 믿음은 한희와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코칭 장면에서도 수없이 확인된다. 한 사람의 진심 어린 지지가 누군가를 얼마나 단단하게 만드는지를 나는 반복해서 보아왔다.


그리고, 이 개념을 부모나 코치가 아닌, ‘나 자신’의 관점에서도 한 번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나 스스로의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해 나는 나의 관계자원을 잘 활용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가족이면 가장 좋다. 하지만 모두가 좋은 가족을 둔 것은 아니니 꼭 가족이 아니어도 괜찮다. 카우아이 섬의 아이들이 그랬듯이, 주변의 누구라도 좋다. 단 한 명이어도 충분하다. 다만 그 사람은 친구보다는 ‘어른(Adult)’일 필요가 있다. 친구는 위로가 될 수는 있지만, 바닥에서 다시 튀어 오르게 하는 회복탄력성의 안전기지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감정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고, 관점을 확장시켜 주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좋은 어른’을 내 삶 속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나이 든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그런 어른이 되어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