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반말 싫어해!
'어제저녁에 다들 많이 바쁘셨나 봐요?'
아내가 일하는 곳 멤버들이 있는 단체 대화방에 올라온 글이다. 어떤 의미로 올린 글인지는 이해되는데 이런 소통방식이 괜찮은지를 물으며 아내가 내게 이 글을 보여주었다.
오전/오후조로 운영되는 아내의 일터는 다음 근무조들을 위해 세팅해두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이전 조가 재료를 준비해 두어야 다음 조가 재료를 활용한 작업이 가능한 구조이다. 이 글을 올린 멤버는 어제 오후조가 마땅히 준비했어야 할 것들을 준비하지 않은 상황을 지적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어떤 답이 달릴지 궁금했다. 답글은 올라오지 않았다. 소통이 되지 않은 것이다.
또, 한 신입 멤버가 나이와 상관없이 동료들에게 반말을 한다고 한다. 호칭은 부른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런 방식이다. '누나, 점심 같이 먹자.'
나이 많은 아내에게는 그러지 않지만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스무 살 청년이 서너 살 차이 나는 형과 누나에게 이런 방식의 반말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두 살 많은 한 멤버가 왜 반말을 하는지를 물었단다. 그랬더니, '나는 원래 모두와 반말해.'라고 했다는 거다.
자기에게 반말을 하는 건 아니라 뭐라 할 건 아니지만, 심리학 박사로서 어떻게 생각하냐며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아내가 묻는다.
아내에게 이 친구들의 행동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물었다. 아내는 이들이 안쓰럽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어떻게 느끼시는지, 회사에서 이런 동료를 만나면 어떻게 하실 건지? 궁금해진다.
이해할 수 없는 Gen Z의 비상식적 행동으로 평가할 건지,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판단할 건지, 아니면 있는 그대로 수용할 것인지 궁금하다.
우선 이 친구들은 왜 그러는 건지 한번 살펴보자.
이들이 이런 방식으로 소통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발달심리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탈중심화(decentering)' 능력이 아직 충분히 상황에 맞게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일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탈중심화'란 자신의 관점과 타인의 관점을 구분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상황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는 특정 연령에서 갑자기 완성되는 능력이라기보다, 사회적 장면에서 반복적인 경험과 피드백을 통해 점진적으로 정교해진다.
발달단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타인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연습이 충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 결과 자신의 언어와 의도가 타인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세밀하게 점검하지 못하고, 인지적 자아중심성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함께 일하는 동료를 '나와 다른 독립된 내면을 가진 존재', 즉 '사회적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하기보다는, 나의 욕구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한 대상, 다시 말해 '도구적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경우, 상대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신의 표현 방식 문제를 돌아보기보다는, '왜 이걸 이해하지 못하지?'라는 해석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 결과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인 반응이 나타나기도 한다.
발달 요인과는 별개로, 환경적 요인에서 비롯된 인지 편향의 영향도 크다.
대표적인 것이 '지식의 저주'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나 맥락을 타인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 착각하는 현상이다. 여기에 '투명성 착각'이 더해지면, 자신의 감정이나 의도, 생각이 말속에 이미 충분히 담겨 있다고 믿게 된다. 그래서 굳이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상대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때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면, '그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라는 불만이 생길 수 있다.
또한, 타인의 불편함이나 사회적 맥락보다 자신의 행동 원칙을 더 상위에 두는 자아중심성도 작용할 수 있다. 나이, 직급, 관계의 친밀도 같은 맥락을 읽지 못하거나, 읽더라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 경우에는 능력이나 관계 방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믿음, 즉 정체성 고착이나 자기 일관성 편향이 함께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흔히 말하는 고정된 사고방식이 이런 태도를 더 강화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화 과정에서 필요한 소통 스킬을 충분히 학습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학교나 또래 집단에서는 친밀감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었던 반말이, 조직이라는 다른 장면에서는 오히려 관계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다. 지금까지 효과적이었던 방식이 다른 장면에서도 그대로 통할 것이라는 믿음이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후배를 만난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직장 선배의 입장에서 보면, 안타까운 마음에 혼을 내서라도 가르치고 싶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쉽게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종종 '자기다움'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자신의 방식이 가장 진실하고 옳다고 믿는다. 그래서 외부로부터의 조언이나 가르침을 '공격'이나 '통제'로 해석할 위험이 있다.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경험을 통해 자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방식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그중 하나로 제안하고 싶은 것이, 동일한 의사소통 방식으로 자각할 수 있도록 유도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원래 반말해.'라고 말하는 후배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나는 원래 반말하는 직장동료가 불편해.' 이 말에 상대가 의아해하는 순간이 생길 수 있다. 바로 그 틈에 질문을 던져보자.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자신의 의도가 상대에게 투명하게 전달된다고 믿는 후배에게도 일부러 그와 동일한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해볼 수 있다. 업무 지시를 할 때 구체적인 설명 없이 '이거 해주세요'라고만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는 되물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언제까지 하면 되는지. 그때 이렇게 말해볼 수 있다. '내 생각을 어떻게 모를 수 있나요?'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태도다. 골탕을 먹이려는 의도가 아니라, 왜 이런 방식이 오해를 낳는지를 함께 이해해 보려는 시도임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이후에는 내가 왜 그런 방식으로 말했는지, 그 의도를 설명해 주는 과정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다.
내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나를 이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 관점을 소통의 기본값으로 설정한 뒤에 말을 건네는 것과,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말을 던지는 것은 결과가 크게 다르다. 서로를 나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대할 것인지, 각자의 내면을 가진 사회적 존재로 대할 것인지는 아주 사소한 말투와 표현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내가 이 친구들을 '안쓰럽다'라고 느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런 방식의 소통이 결국 이들 자신을 관계에서 고립시키거나 불리한 위치로 몰아넣을 가능성을 직감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세대의 문제로 단순화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경험과 환경 속에서 형성된 소통 방식을 이해하려는 태도. 그 지점에서부터 조직 안의 갈등도, 배움도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