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가부터 엄마는 김밥을 잘 쌀 자신이 없다고 했다
엄마는 종종 김밥을 쌌다. 엄마가 다른 어떤 음식을 할 때보다 김밥을 쌀 때는 특히 더 맛있는 냄새가 났다. 야채를 살짝 볶아내고, 계란 지단을 부칠 때 나는 기름내, 식초를 살짝 친 밥에서 풍기는 시큼한 향이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어우러져 스멀스멀 콧속으로 들어오는 날에는 엄마가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날 수 있었다. 소풍을 가는 것보다 김밥을 먹는 게 좋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벌떡 일어나 홀린 듯이 주방으로 가면 엄마는 이미 층층이 말아놓은 김밥을 가지런히 썰고 있었다. 그 옆에서 하나씩 받아먹고 집어먹는 김밥은 그렇게 맛이 좋았다. 못생긴 꽁다리는 따로 모아 아빠에게 갔고, 모양이 예쁜 알맹이들은 언니와 내 몫이었다. 김밥을 먹는 날이면 하루 종일 김밥을 먹었다. 아침에 먹고 남은 김밥은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저녁이면 엄마는 차가운 김밥에 계란 옷을 입혀 따뜻하게 부쳐주었다. 그렇게 먹어도 질리지가 않은 건 이상한 일이다.
김밥을 싸기 전날 밤부터 엄마는 재료들을 준비했다. 그리고 아빠는 엄마의 부탁으로 칼을 갈았다. 동그란 모양을 망가트리지 않게 썰려면 칼도 잘 들어야 하니까 그랬나 보다. 그날은 엄마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도 방 문 너머에서 들리는 어렴풋한 달그락 소리 때문에 잠결에도 짐작할 수 있었다. 재료를 손질해 하나씩 볶아 내고 부치고, 밥을 식혀 간을 하고 김밥을 말고 썰고, 그래서 엄마는 가장 손이 많이 가 귀찮은 메뉴라고 여기면서도 내색 않고 발을 꾹꾹 눌러 정성스럽게 김밥을 말았다.
그런 기억 때문일 거다. 나는 언제나 김밥을 달고 살았고, 여전히 김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자라면서는 엄마의 김밥을 먹었고, 대학생 때 기숙사에 사는 동안엔 편의점에서 김밥을 사다 먹었다. 혼자 살게 된 후로는 집 앞에 있는 분식집에서 김밥 재료를 바꿔가며 날마다 먹었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땐 최대한 빨리 끼니를 때워야 하니 김밥을 먹었다. 딱히 먹고 싶은 메뉴가 생각나지 않을 때도 단연 내 선택은 김밥이다. 이사를 몇 번 다니면서도 가장 먼저 새로운 집 근처의 김밥 가게를 찾는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도 첫 식사로 참치 김밥을 먹었다. 엄마가 김밥을 쌀 때 풍기던 절로 침이 고이는 그런 냄새는 어디에서도 맡을 수 없지만 그래도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것이어서 다행이다.
언제부턴가 엄마는 김밥을 잘 쌀 자신이 없다고 했다. 자꾸만 김밥이 터진다고. 그런 뒤로 엄마의 김밥은 먹지 못했다. 엄마의 김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게 그리 서운하지는 않았다. 다만 엄마가 싸는 김밥이 자꾸 터진다는 사실이 조금 슬펐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