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어
나는 언제나 겨울을 좋아했다. 자기가 태어난 계절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그런가 싶었다. 발목을 내놓고 다녀도, 가죽 재킷 하나만 걸치고 나가도 괜찮을 만큼 몸에 열이 많은 것은 신이 내게 주신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감기 한번 잘 걸리지 않은 채 이 추위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히 겨울을 사랑했다.
안타깝게도 여름의 불볕더위 아래에서 나는 영 맥을 못 춘다. 미지근한 바람이 느껴지면 안으로,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시작한다. 벌써 내 몸 어딘가에서 땀이 찔끔 삐져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름은 어김없이 찾아오는데 그 계절의 온도는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졌다. 이상 기온은 지구가 아프다는 신호라지만 당장은 내가 아플 것 같았다. 뜨겁다. 이 한 철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곳에서의 기억을 다시 소환해야만 한다.
뉴질랜드로 떠날 때 우리나라에는 폭설이 내렸다. 지구의 남반구에 있는 그곳은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였는데, 오클랜드 공항 밖으로 첫발을 내디뎠을 때 나는 이미 직감할 수 있었다. 내 생에 가장 환상적인 여름이 될 거라고! 시야를 가릴 정도의 강한 햇빛이 무색하게 살에 닿는 볕이 이렇게 뽀송뽀송할 수가 있나 싶었다. 이곳에서는 내 손가락으로 초콜릿을 집어 올려도 절대 녹지 않을 것 같았다. (사실 초콜릿을 만져도 손에 묻어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는 충격을 받았다) 한낮의 뙤약볕에도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누워,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듣던 제이슨 므라즈의 ‘I’m Yours’. 당신이 너무 화끈해 녹아버렸다(You’re so hot that I melted)는 그의 노랫말에 양발로 까딱까딱, 박자를 맞추다 보면 어느새 잠이 솔솔 왔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여름, 바닷바람에도 끈적임이 없는 이런 계절이 있다면 천년만년 이곳에 살고 싶었다. 밖으로, 더 밖으로 나와서 걸으며 한여름의 태양을 아낌없이 누렸다. 두 번의 여름을 보내고 그 반짝이는 계절에 그곳을 떠나왔다.
끈적한 열기와 사투를 벌이는 계절을 또 한 번 치열하게 보냈다. 어김이 없는 자연의 섭리 덕분에 때마다 경쾌한 초록빛 기억을 선명하게 꺼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반갑게 여기면 조금 숨이 트이는 것 같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뜨거운 것이라도 좋았던 그곳의 여름을 그려본다. 한여름의 태양을 사랑했던 그날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