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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다 Aug 26. 2021

지금의 안녕에 안도하면서

어둠을 안고도 유유하게

맑은 하늘이 이따금 내 마음을 가라앉게 만든 지도 벌써 4년째. 병원에 가는 날이면 유난히 날이 좋다. 나는 6개월에 한 번씩 아빠의 정기 검진을 함께 가고 있다.


아빠가 대장암 진단을 받은 그날, 맑은 하늘 아래에서도 세상이 캄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처음 알게 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빠가 몸에 이상 징후를 느끼고도 검사를 미뤘던 건, 무서웠기 때문이라는 사실. 무서웠다고. 아빠의 입에서 그 말을 들을 거라고는 그때껏 생각지 못한 일이라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었다. 하지만 아빠가 너무 담담해서 나는 그 앞에서 차마 울 수 없었다. 눈물 없이(아마 눈물도 나지 않을 만큼 큰) 두려움을 맞닥뜨린 아빠에게 내 슬픔의 무게까지 지게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아빠의 두려움까지 내 몫으로 가져오고 싶었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들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너무 별것이 아니었다. 입원과 수술에 필요한 서류의 보호자란엔 내 서명을 넣고, 때마다 내원 안내 문자를 대신 받고, 검사를 받는 동안에는 화면에 띄워진 아빠의 이름 석자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기다리는 이런 소소한 일로 아빠를 보호할 수 있긴 한 걸까 생각하면서도 나는 반기마다 보호자의 책임을 자처한다. 감춰진 불안을 더 깊숙이 가리고, 지금의 안녕에 안도하면서.


병원에 가기 위해 차에 올라타는 아빠의 얼굴이 까칠하기만 한데, 오늘도 아빠는 여전히 웃는다. 그랬다. 4년 전, 수술이 끝나고 병상에 누운 채 실려 나오면서도 양손으로 브이를 만들어 힘겹게 흔들어 보이던 아빠는 마취가 채 풀리지 않아 퉁퉁 부은 얼굴로 입꼬리를 올리며 기어이 미소를 뗘주었었다. 걱정돼서 또 잠을 설친 거냐고 물으려다 말을 삼켰다. 그냥 조용히 운전대를 잡고 병원으로 향했다. 눈앞에는 깨끗하고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그 가운데 떠있는 조각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구름 아래 깔린 옅은 음영이 어쩐지 위로가 된다. 저 구름도 하얗기만 한 건 아니니까. 빛이 닿지 않는 곳도 당연히 있는 거잖아. 그래서 나는 하늘의 구름을 보는 게 좋다. 맑거나 흐리거나. 흰 구름에서 어둠을 보고, 먹구름에서 빛을 찾는 게 좋은 거다. 이제 시시로 마음이 푹 가라앉더라도 제법 잘 견딜 수가 있다. 아빠도 저 하늘을 가끔씩 올려다보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는 어둠을 안고도 유유하게 흘러가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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