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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다 Sep 04. 2021

나를 일으켰던 말

무엇이 그 순간 엄마의 마음을 벅차게 했을까

너희 둘, 이렇게 앞에 앉혀두면 너무 뿌듯해.


멋쩍은 말이었다. 내 옆에 앉아있던 언니도 실없이 웃었다. 휴가였던 어느 평일, 나는 엄마와 함께 근무 중인 언니의 점심시간에 근처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는 제약회사를 다니다가 약학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겠다고 문제집을 잔뜩 사둔 시점에 대뜸 결혼을 한다고 했고,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 지금은 아빠를 도와서 일하고 있다. 나는 30대에 접어들어 막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수입이 없는 그간 비상용으로 받아두었던 아빠의 신용카드를 반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나에게는 딱히 흉이랄 것도 없었지만(있을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무슨 자랑거리가 있는 자식도 아니었다. 세상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식에 대한 기대를 걸기 시작할 무렵엔 나의 부모도 그랬고, 그 뒤로는 쭉, 수많은 실망들을 안겨왔다는 걸 안다. 나에 대한 당신들의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그에 부흥하지 못할 바엔 그냥 모른 체하기로 마음먹기도 했다. 하지만 어려서는 그냥 모른 체하면 그만이었던 것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는 더 이상 그럴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명절에는 남들이 하는 것처럼 난생처음으로 10 원을 봉투에 담아 엄마한테 드린 적이 있었다. 그때 엄마는 아직 이런   줘도 괜찮다며 부드러운 거절로 되돌려 주었다. 다달이 남의 돈을 받는 월급쟁이에 나갈 돈들 투성인  처지를 나보다  꿰뚫고 있는  같았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할지,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지를 몰라 쭈뼛쭈뼛 봉투를 받아 바지 뒷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뒤로는 뻔뻔하지만 조금  미안해하며 명절을 맞이해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래도 왠지 평범한 축에도  끼는  같아서  주눅이 들었다. '누구 딸은, 누구 아들은 이번에  해줬다더라.' 하는 다른  자식들의 실리적인 효심을 엄마 입에서 전해 들은 적은   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때 언니와 나를 나란히 앉혀두고 엄마는 뿌듯하다고 했다. 뿌듯하다니. 무엇이 그 순간 엄마의 마음을 벅차게 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그날부터였던 것 같다. 내 마음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것 같은 기분. 늘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던 어떤 자책과 부끄러움으로 쪼그라든 맘 한쪽이 엄마의 그 말 한마디에 꿈틀거렸다. 나는 여전히 대단한 것들을 해드리지 못하고 앞으로도 장담할 수가 없다. 고작 엄마가 마시는 커피 캡슐을 떨어지지 않게 주문해 주거나, 엄마가 좋아할 만한 티셔츠를 우연히 발견하면 사다 주거나, 휴일에 가끔 근교로 나가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정도이지만, 엄마는 딸 덕분에 호강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엄마의 호강은 커피나 새 옷이나, 외식 덕분이 아니라 딸 덕분이라는 걸 이제 안다. 그럴 때면 그날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아마 오래도록 기억 날 것 같다. 우리를 바라보며 미소 짓던 엄마의 벅찬 얼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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