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진짜 여행'하는 부모가 되고 싶다.
설명을 들은 친구 있나요?
October is National Bullying Prevention Month. In solidarity with bullying prevention, students are invited to wear Orange to tomorrow's classes.
대면 수업을 할 땐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국가와 지역의 기념일들을 기념했었는데,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는 요즘은 해당일에 어울리는 옷을 입는 것으로 그날을 함께 기념한다.
어제저녁, 선생님께서 학급 게시판에 위의 공지사항을 포스팅하셨다.
"10월은 국가 왕따 예방의 달입니다. 학생들은 왕따 예방의 의미를 함께 상기할 수 있도록 내일 수업에 주황색 옷을 입고 오세요."
그리고 오늘 아이는 준비되어있던 주황색 옷을 입고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주황색 옷을 입고 왔네요. 아주 고마워요. 그렇다면 왜 오늘 우리가 다 같이 주황색 옷을 입고 수업을 듣는지 부모님께 설명을 들은 친구가 있나요? 있으면 손 들어주세요."
선생님의 질문에 11명의 친구들은 모두 침묵했다. 그들은 원래 수업시간마다 말 한마디라도 더 하고 싶어서 손들고 방방 뛰기까지 하는 7살 아이들이다. 하지만 결국 누구도 답을 하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친절하게 "왕따 예방의 달"과 그것을 기념하는 주황색에 대해 설명해주시고, 친구들끼리 서로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그 시간은 잘 마무리되었지만 나는 종전의 침묵이 찜찜했다. 아니, 내 마음이 너무 뜨끔했다. 아마 다른 부모님들도 그 시간에 함께 계셨다면 같은 마음이셨을 테지.
너와 나누는 심오한(?) 대화
내가 아이에게 무언가를 설명해주지 않고 그냥 '해야 할 일'만 했던 것은 비단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고백하건대 알아야 할 아이의 권리를 내가 스스로 무시한 적이 참 많다. 얼마 전 9월 11일, 9.11 테러를 추모하는 수업 날도 그랬다. 그날은 하얀색 or 빨간색 or 파란색의 옷을 입고 수업에 참여해야 했는데, 그때도 역시 아이에게 빨간색 옷을 입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그 색깔의 의미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않았었다.
아침시간이 워낙 촉박하잖아. 깨워서 주먹밥 하나 겨우 입에 물리고 눈곱만 간신히 뗀 채로 의자에 앉히기 바쁜걸. 가만히 흘러가는 시간과 여유 없는 우리 집의 아침 풍경을 핑계대기엔 나는 이미 같은 실수를 참 많이 저질렀다.
더 어린 시절, 태극기를 색칠하는 숙제를 할 때에도 "색칠"을 시켰을 뿐, 왜 태극기를 색칠하는지 "설명"은 하지 않았다. 왜 나는 자꾸 아이들에게 행동하라고 하면서 이해시키지 않았던 걸까?
수업이 끝나고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마음을 먹고!), 아이에게 오늘 입었던 주황색 옷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Bullying이라는 말이 한국어로는 '약자를 괴롭힌다'는 뜻이야. 힘 있는 몇몇 친구들이 힘을 뭉쳐서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는 일이 bullying이고, 어떤 친구와 함께 놀지 않고 따돌리는 일도 bullying이 될 수 있어. 주황색이 눈에 잘 띄는 색깔이잖아. 주황색 옷을 함께 입으면서 어떤 친구도 괴롭힘을 당하거나 따돌림을 경험해선 안된다는 다짐을 눈에 띄게 보여주는 거야."
"음... 그럼 놀기 싫은 친구랑도 같이 놀아야 해? 나는 ㅇㅇ랑은 좀 놀기 싫은데... 자꾸 내 물건들을 달라고 한단 말이야."
"놀고 싶은 친구랑 노는 것은 너의 마음이고, 함께 놀고 싶지 않은 친구가 있을 수 있는 것도 너의 마음이지만 그것을 겉으로 표현하는 것은 bullying이 될 수 있지. 너의 생각과 마음은 소중하지만 속으로만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 있어. 네가 입으로 말하는 순간 그것은 다른 사람의 영혼에 영향을 끼치거든. 친구의 좋은 점을 많이 보려고 하면 내 마음속에 있던 부정적인 생각은 어느새 사라져 버릴지도 몰라. 그런데 우진이가 만약에 '난 네가 싫어.'라는 말을 이미 해버렸다면 그건 되돌리기가 아주 아주 힘이 들어. 너의 물건들을 자꾸 달라고 하는 ㅇㅇ는 엄마가 한 번 살펴볼게."
"아 맞다! 엄마, 근데 ㅇㅇ가 예전에 내가 아파서 결석했다가 학교 다시 갔을 때 제일 1등으로 뛰어나와서 안아줬다? 나랑 놀고 싶어서 자꾸 뭐 달라고 그러나?"
아이와의 대화 속에서 알 수 있었다.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던 주제도, 명쾌한 해답은 없을 것 같았던 문제도 부모와 함께 나누는 단 5분의 대화로 아이는 스스로 알아간다.
그동안 아이에게 설명해주지 않았던 수많은 것들이 참 미안했다. 심오해 보였던 문제들, 복잡해 보였던 역사이야기. 그것은 어른인 나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뿐, 아이에겐 그저 '왜 비 온 뒤에 무지개가 뜨나요'와 같은 문제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5살 꼬마와 함께한 비잔틴 투어
오래전 터키 여행 때의 이야기이다. 유로 자전거나라라는 전문 가이드 업체의 프로그램을 통해 비잔틴제국의 유산을 둘러보았었다. (약 10년 전 경험이라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자전거나라 투어는 조금 빡센 것으로 유명했다.) 아침 일찍 히포드럼 광장 오벨리스크 앞에서 투어 참가자들이 집결(?)했는데 눈에 띄는 가족이 있었다. 유모차를 타고 있던 5살 아이와 터키 여행책을 들고 있던 엄마, 카메라를 목에 건 아빠였다. 오락가락한 날씨 때문에 예상보다 더 힘든 투어였던 터라 자꾸 5살 아이에게 눈길이 갔다. 오지라퍼 아가씨의 걱정이 무색하게 엄마는 아야소피아에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침략과 멸망, 그리고 그 격변의 세계사 속에서도 살아남은 아름다운 문화유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럼 누가 나쁜 사람이냐는 아이의 물음에 엄마는 그것이 우리가 전 세계를 여행하는 이유라고 답했다. (나중에 함께 밥을 먹으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가족은 무려 유럽 일주를 하고 있었다!)
아이를 낳기 전엔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지 못했다. 5살 아이를 데리고 세계사를 관통하던 그들을 보며 누군가는 비웃기도 하더라. 그게 기억에나 남겠냐고.
그때 그 꼬마는 지금 중학생이 되었겠지. 그 학생이 그때 다녔던 유적지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을 설명해주던' 엄마의 모습은 아이의 마음속에 단단히 새겨있을 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 부모님은 여전히 아이에게 '설명하는 부모'일 것 같다.
나는 아이들과 어떻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을까?
해인사야. 자, 사진 찍자.
파리 개선문이야. 자, 사진 찍자.
콜로세움이야. 자, 사진 찍자.
자유의 여신상이야. 자 사진 찍자.
이렇게 여행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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