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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희 Oct 15. 2020

어려지고 싶은 7살

엄마는 매일매일 좋은 사람 이어야 한다.

하루의 끝에서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어렸을 때 정말 좋았는데... 어렸을 때가 더 좋았던 것 같아."


잠을 청하던 첫째가 말했다.

"넌 지금도 어린걸?"이라고 말했지만 커다란 눈을 꿈뻑이며 어린 시절(?) 회상에 빠진 아이에게 이미 내 말은 들리지 않았다.

"아니,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말이야. 지금은 형아잖아. 그땐 엄마가 업어도 주고, 에버랜드도 엄청 많이 가고, 맨날 놀고, 내가 말도 잘 들어서 엄마가 화도 하나도 안 내고..."

(눈치)


아이를 키우면서 눈칫밥을 준 것 같진 않은데, 첫째는 내 눈치를 많이 본다. 굳이 '본인이 말을 안 들어서'라는 조건을 붙여 말하는 것을 보면 아이는 참 나를 많이 닮았다.


아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엄마에게 혼나고 싶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만 받고 싶은

아이의 귀여운 마음인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이 더 좋았다는 아이의 말이 '그때의 엄마가 더 좋았다'로 들려서 괜히 잠이 오지 않았다. 잠든 아이의 발바닥을 만지작만지작 거리고, 볼도 한 번 쓰다듬고, 머리도 긁어주고, 뽀뽀도 해보면서 그렇게 한참 동안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지금의 내가 제일 좋아.

난 언제의 내가 제일 좋을까?

나 스스로 솔직할 수 없어서인지, 아이들이 없었던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어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이 둘의 엄마인 지금의 내 모습이 가장 좋다는 답변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아도 다른 답변은 생각나지 않는 것을 보니 이 문제는 객관식도 주관식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답정!


그래도 내가 과거의 어느 한 시점으로 콕 집어 잠깐 되돌아갈 수 있다면, 내가 가장 가고 싶은 장면은 선명하게 떠오른다. 거실과 안방에 텔레비전이 있었던 우리 집. 거실에 있던 텔레비전이 더 크고 좋았지만 저녁을 먹고 난 후 우리 가족은 약속이나 한 듯 안방 침대로 모였다. 지금은 우리 곁에 없는 이슬이(반려견)도 함께였다. 엄마가 깎아주는 과일을 받아먹으며 옹기종기 모여 함께 텔레비전을 보았다. 남동생은 이따금씩 아빠와 스포츠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사실 우리 아빠는 막장드라마를 더 좋아했다. 엄마는 드라마를 좋아했지만 드라마보다 웃으며 담소를 나누는 아빠와 아들, 딸의 모습을 좋아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이슬이가 아빠 발 밑에서 꾸벅꾸벅 잠이 들 때쯤이면 아빠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우리 가족은 방 한 칸이면 충분해. 어차피 다 침대 위로 모일 텐데 큰집은 사서 뭐해. 그지?"

답이 정해져 있는 아빠의 질문이 참 그립고, 그때가 너무 행복했다.


우리 아이들의 단상에 이런 장면이 많았으면 좋겠다. 어른이 되어 지치고 힘들 때, 그때를 떠올리며 힘을 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어느 날 추억에 기대어 쉬고 싶을 때, 그 날이 오늘이 되고, 내일이 되려면 내가 오늘도 내일도 좋은 엄마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이가 조금 더 클 때까지, 아이의 하루에 나의 영향력이 적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이가 혼났던 하루에 지친 마음으로 잠이 들지 않도록, 아직 어리디 어린 네가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보단 "오늘 하루 너무 행복했어!"라는 행복으로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화내지 말자!"



오해 방지 사진입니다. 팥쥐 엄마같지만 사실 콩쥐처럼 살고 있어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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