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심코 해주고 있는 아이의 작은 일들
요즘 엄마들
존경하는 소아과 선생님이 계시다. 한국에 있는 우리 동네 작은 소아과의 원장님이셨는데, 국내 최고의 대학병원에서도 해결해주지 못했던 현실적인 처방은 물론이거니와 보호자의 마음을 진정으로 위로해 주신 분이었다.
그분이 괌에 이민을 간다고 했을 때 말씀해주신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요즘 엄마들은 아이들이 스스로(저절로) 할 때까지 잘 기다려준다고 하셨다. 기저귀는 좀 늦게 떼도 좋으니 아이가 배변훈련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고, 밥도 언젠가는 혼자 떠먹을 테니 지금은 좀 떠먹여 줘도 된다고 생각한단다. 나중에 크면 다 할 텐데 뭐하러 수건으로 몸 닦기, 스스로 로션 바르기 굳이 이런 자잘한 일들을 시켜야 하냐고 말한다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신다.
그리고 그런 여유로운 마음은 아이와 양육자 모두를 편하게 할 수는 있지만, 육아에 있어 최고의 화두인 '아이의 자존감 키우기'에는 사실 좋지 않다고 하셨다.
개똥벌레의 다른 이름은
반딧불이입니다.
자존감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마음은 어느 부모나 동일할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자존감이 균형 있게 잘 형성된 사람들은 인생길을 걷다가 바윗돌을 만나도 그것을 들어 올려 길가로 치워놓을 수 있고, 길 위에 핀 작은 민들레 하나가 주는 아주 작은 행복도 그냥 지나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느낀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참 예쁘게 빛난다는 것을. 이름도 '개똥'인 어느 벌레가 초여름 밤을 반짝반짝 예쁘게 밝히는 것처럼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인지, 지금이 밝은 낮인지, 아니면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인지 그러한 상황들은 그들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내 마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이 느낀다.
나도 우리 아이들을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육아를 하며 아이를 위해 당연하게 해 주었던 일들이 자존감의 건강한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니 눈이 번쩍 뜨였다.
선생님께선 이제 우진이와 지유가 6세, 4세가 되었으니, 또 외국에서의 새로운 삶이 아이들에게도 부담스럽고 녹록지 않을 테니(영어로 의사표현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아이의 바깥 사회에서 아이가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은 엄청 힘들 터이니) 이럴 때일수록 엄마가 가정에서 아이의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써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엄마가 무심코 해주는 수많은 일들. 그냥 엄마와 아이 사이의 당연한 일상인 그런 일들. 그런 것들을 찬찬히 생각해보고 그중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하나씩 하나씩 혼자 해볼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 일들은 가만히 두어도 어떤 시기가 되면 아주 자연스럽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지만 그 시기까지 기다리는 것은 아이의 자아 존중감이 자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한 일들은 연령대별로 다르겠지만 우리 아이들 같은 경우는 이불 정리나 목욕 후에 로션 바르기, 물컵에 물은 스스로 따르기 같이 아주 사소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동안 너무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다녀간 자리를 정리해주었고, 목욕 후엔 재빨리 로션을 발라주었다. 그리고 목이 마르다고 하면 물컵에 물을 따라 주었다. 생각보다 나는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에 대한 기회를 박탈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러한 일들을 스스로 해내면서 굳이 대단한 칭찬을 받지 않더라도 자기 자신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 엄마도 80년대엔 요즘 엄마셨는데.
돌아보니
엄마의 심부름을 처음 다녀온 날,
스스로 신발끈을 묶었던 날,
엄마 없이 혼자 샤워를 했던 날,
엄마 없는 날 동생에게 처음 라면을 끓여주었던 날,
그런 엄마 없는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내가 엄마라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페달을 굴리는 것조차 버거워했던 둘째가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동네를 누비는 모습을 보니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공짜 자존감 수업에 대한 확신이 생긴다.
신고 벗기 쉬우라고, 선생님이 힘드실까 봐, 넘어질까 봐 언제나 찍찍이 있는 신발만 신겼었는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끈 있는 신발도 한 번 사줘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