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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희 Nov 02. 2020

3. 다이소보다 투몬 비치

벅찬 마음을 가진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합니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가 있다. 결혼을 하고 나선 더 그렇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니 더+더 그렇다. 내 마음 하나 지키기에도 한참 부족한 모지리인데, 내가 지켜 줄 마음들이 하나씩 더 늘어날 때마다 벅차오르는 순간이 늘어난다. 그 벅찬 마음의 바탕은 행복임을 잘 알고 있지만, 정답 없는 시험지를 풀고 있는 답답함이 이따금씩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한국에서는 그럴 때마다 탄천을 걸었다. 집 앞 탄천을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목이 마를 때쯤 다이소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들어가 사치스러운 쇼핑을 했다. 아이들의 장난감이나 퍼즐도 담고, 예쁜 수첩도 담고, 당장 필요 없는 예쁜 편지지와 카드도 담았다. 장바구니 가득 채워서 계산하면 3-4만 원 정도가 나왔는데, 그 정도면 백화점에서 50만 원 쓴 것처럼 스트레스가 해소되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다이소 꾸러미를 풀어놓으면 아이들이 신나서 달려들었고, 그 모습을 보면 내 안에 있던 복잡한 생각이 어느새 사라지곤 했다.


괌에도 그런 장소가 있다.

다이소에서 100만 원을 쓰면 그가 주는 위로에 비할 수 있을까?


그는 바로 바다다.






괌에도 많은 바다가 있다. 그중 여행객에게 그리고 괌에 사는 이들에게 가장 친숙한 바다는 '투몬 비치'일 것이다. 투몬베이는 북서부 사랑의 절벽부터 중서부 이파오 비치 전까지 이어지는 예쁜 쟁반 같은 바다다.


매끈한 비단처럼 펼쳐진 바다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기 때문에 괌에 있는 대부분의 호텔들이 투몬베이의 해안가를 따라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괌을 찾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누구나 이 투몬 비치를 들를 수밖에 없다. 이파오 비치, 건 비치, 아산 비치, 이판 비치, 리티디안 비치 등 많은 바다가 있지만 가장 괌스러운 바다를 딱 하나 고르라면 단연코 투몬 비치가 최고이기 때문이다.


투몬비치


처음엔 파도가 없고, 꽤 멀리까지 걸어 들어와도 수심이 얕은 투몬 비치가 신기했었다.

괌의 해안선은 산호초가 띠를 두르고 있다. 높은 호텔에서 바라보면 그 산호초 군락 절벽 속으로 파도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진귀한 풍경을 볼 수 있는데, 그 덕분에 비치 앞바다는 물의 깊이가 얕고 토파즈 보석 빛깔을 띤다. 그리고 바다의 열대우림이라 불리는 산호초 군락 포인트는 스쿠버다이버들에게 환상적인 장소가 된다.


그리고 괌에 살다 보니 신기했던 마음을 넘어 감격스러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투몬 비치는 신비로운 자연의 선물 산호초 울타리 덕분에 큰 태풍이 오지 않는 이상 언제나 변함없이 잔잔하고 평화롭기 때문이다. 투몬 비치는 내가 그를 처음 만났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참 한결같다. 아주 오랜만에 찾아도 그대로의 모습인 것. 변하지 않는 것. 그게 괌의 매력이고 감동이다.


하늘에서 보면 산호초 군락을 기준으로 바다의 색깔이 확연히 차이난다.
괌에 살면서 아이는 바다를 한 가지 색으로 그리지 않는다. 아이에게 더이상 바다는 'Blue'가 아니다.





투몬 비치는 나에게 아주 특별한 곳이다.

우진이를 품고 태교여행으로 이곳을 찾았을 때 아름다운 투몬 바다를 눈에 담으며 '바다를 닮은 아이'를 기도했었다. 몸이 약한 첫째에게 덥고 습한 기후와 깨끗한 공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무엇에 이끌리듯 괌으로의 이민을 결정했지만, 둘째를 조산하면서 아이에게 조산 합병증으로 뇌출혈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우리 아이의 경우엔 잘 흡수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아이의 추적관찰과 정기적인 검사를 위해 한국에 남아있게 되었고, 회사의 부름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던 아빠는 어쩔 수 없이 괌으로 먼저 오게 되었다.

결혼도 멋모를 때 해야 한다고, 아빠와 떨어져 사는 3년의 시간 동안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이민을 처음 결정하던 당시엔 미처(미쳐서) 생각지 못한 여러 가지 문제들로 타지에서의 삶에 대한 고민이 쌓여만 가던 그 시절. 이미 한국에서의 커리어를 다 버리고 괌으로 떠난 남편 생각, 아이들이 어떤 곳에서 자라야 잘 자랄 수 있을까에 대한 답 없는 고민으로 잠 못 이루던 그때, 방학 때 다시 찾은 투몬 바다가 나의 마음을 다잡아 주었었다.

아이들과 하이얀 산호모래 위에 털썩 주저앉아 바다를 바라보는데, 바다와 하늘이 하나로 이어진 것 같은 그곳에서 나는 깨달았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그곳이 어디든 천국이라는 것. 그때 투몬 비치는 우리 아이들의 첫 바다였고, 아이들의 첫 경험은 너무너무 예쁘고 따뜻했다.

그 뒤로도 나는 많이 흔들렸고 고민했지만, 투몬 비치를 생각하며 내 삶에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가족"임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렇게 오게 된 괌. 나는 이따금씩 투몬 비치에 앉아 우리 아이들이 수많은 생명들의 터전이 되어주는 넓은 바다처럼 사랑이 가득한 '바다를 닮은 사람'으로 성장하길 꿈꾼다. 그리고 그 꿈으로 내 고민들은 잠시 덮어둔다. 이곳에 살면 큰 배 속에 너를 품었던 그때의 소망에, 또 지금의 꿈에 큰 욕심 더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투몬 비치는 나에게 그토록 어려운 "내려놓음"의 마음가짐을 가르쳐 준 곳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지 않고, 다른 부차적인 것들과 마음속의 고민들은 하이얀 투몬 비치의 고운 모래 속에 묻어두고 살 테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다이소에선 1000만 원을 써도 투몬 비치가 주는 안도감을 살 수가 없을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들로 삶에 지치고 마음이 시끄러운 분들에게 이 강같이 잔잔한 바다를 추천한다. 이곳은 괌에 발을 디딘 이들이라면 누구나 갈 수 있는 친정집 같은 곳이자 언제 찾아도 변함없는 엄마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동생아 무서워하지마. 저 바다는 깊지 않아! 코에 물도 안들어와! 오빠가 지켜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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