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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희 Sep 26. 2020

내 비행의 종착지

나의 20대에 대한 이야기

엄마는 잡이 뭐야?

대학교 4학년 1학기,


그땐 졸업 전에 취직하는 것이 선망이었다.

나는 막연하게 홍보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승무원이 되었다.

대기업 홍보직은 경력직을 선호했고,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턱에 몇 번 걸려 넘어지다 보니 어느새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 '내가 될 수 있는 자리'를 찾게 되었다.

(물론 승무원이 되기 쉽다는 것은 아니고, 사실 내 꿈은 아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취직을 하고, 교육을 받고, 비행을 하고...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꼭지 었던 일련의 상황들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비행을 하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마음은 힘듦이었다.

특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상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승무원을 한 번 보고 다시 만나지 않을 인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예 관심이 없으시거나 혹은 잘 대해 주시지만, 몇몇 승객들은 같은 이유로 정말 막 대하시기도 한다.


해당 노선에 서비스하지 않는 것을 구해오라고 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자리를 업그레이드해달라고 우기시는 귀여운(?) 분도 있고, 승무원은 시키는 건 다 해주냐고 묻는 상식 밖의 승객도 있었다.



아이는 비행기 안에 승객들 같아.

퇴직하고 전업주부로 살면서 종종 우울함에 빠질 때가 있다. 그 우울한 마음은 대개 내가 그동안 공부하고, 일하고, 열심히 해왔던 모든 것들이 내 삶에 전혀 쓸모가 없다 느껴질 때 비롯된다.


출산을 하고도 아이를 키우며 열심히 일을 하고 돈도 버는 멋진 친구들을 보며,

'난 도대체 승무원을 왜 했던 거야!'

'그냥 사무직이었으면 어떻게든 복직했을 거야. 엄마 말씀대로 사범대학을 갔더라면 아이를 키우며 하루에 몇 시간 과외 같은 걸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혹은 유아교육과를 갔으면 아이들을 더 현명하게 잘 키우지 않았을까?'

(물론 멋진 워킹맘 승무원분들도 진짜 많다. 그냥 내가 생산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빠져드는 자기 비하의 어디쯤이라고 할까.)


그런 마음이 많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당신이 승무원을 해서 아이들한테 서비스를 잘하잖아."

그땐 그 말에 발끈했었다.

"내가 이 집에서 서비스하는 사람이야?"라고 따졌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니

그 말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꽤 좋은 말이었다.

내가 열심히 일했던, 비록 꿈은 아니었을지라도 나에게 좋은 추억과 다시없을 경험을 많이 안겨준, 그래서 사실 지금은 너무나 다시 일하고 싶은 나의 전직.


부모님의 사랑이란 울타리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던 내가

다른 이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내 구역의 승객들에게 최선을 다해 서비스하고

수많은 감정의 고비마다 내 스스로 그것들을 컨트롤했던 경험이 나를 좀 더 노력하는 엄마로 만들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사실 아이들을

승객에게 했던 것처럼 대하면

아이들은 정말 나와 친한, 엄마와 사이가 좋은 자식들로 성장할 것 같다.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을 해도, 그 부탁이 말도 안 되는 생떼일지라도 너그럽게 들어주고,

일관적인 스케줄로 아이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어떤 질문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안된다는 말에 우선해서 노력해보겠다 이야기해주는 것.

미안하다는 사과와 고맙다는 인사를 진심을 다해 하는 것.


그 모든 것들은

내가 20대에 교육받고 실천했던 것들.


다른 건 몰라도

한 번 만나고 다시 만날 수 없었던 비행기 안 승객분들보단 내 아이들이 내 삶에 훨씬 소중한 존재인데,

이제 내가 배우고 체득한 것들을

너희에게 돌려줘야지.

그런 마음이 들었다.


모르는 게 참 많고,

부족하지만,

내가 배운 것이 육아의 기본이었다니,

내가 일했던 것이 너희를 위해 사용될 수 있다니,

그게 나의 고마운 전직이라니.


이제야 참 그립고 고맙다.

나의 비행 시절.

그리고 나의 20대.

나름 열심히 살았고, 또 치열했다.



돌고 돌아 우리는 지금 괌

많은 나라를 가보았지만

괌에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괌은 내 비행의 종착지일까? 아닐까?


그 답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너희 둘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천국이라는 것.


그래서 이곳은 나에게 천국이고,

나의 20대에게서 배운 것으로 나는 지금 30대의

중턱에 서있다.


얼마 전에 미국은 노동절이었다.

학교에서 직업에 대해 배운 아이는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잡이 뭐야?"

"엄마는 너희들만의 승무원이지."


조금 오글거리지만

아이는 너무 좋아했다.

"에잉~ 그럼 엄마가 주스도 갖다 주고 그래야겠네~" ㅎㅎ

"네 손님, 무슨 주스로 드릴까요?" ㅎㅎ






난 아직 비행 중이다.

승객은 두 명.

(한 명을 더 껴줄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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