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해도 괜찮아.
한국인을 조심해!
이민을 간다고 하니 주변에선 걱정의 마음을 담아 몇 가지 조언들을 해주셨는데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는 아마도 '한국인을 조심해.'일 것이다.
한국인을 조심하라는 이야기가 나는 참 무서웠다. 나의 사회적 성격은 관계를 아예 맺지 않거나 혹은 그 관계에 흠뻑 빠지거나 둘 중 하나인 '제로 혹은 오버'인데 나에게 사람을 '조심해서' 사귀라는 것은 아예 한국사람을 만나지 말라는 말로 들렸다.
나는 항상 부러웠다.
'적당히'를 잘하는 사람들. 적당히 자기 자신을 잘 지키면서 적당히 다른 이에게도 잘하고 그래서 적당한 선을 지키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참 현명하고 지혜로워 보였다. 나는 어떤 관계가 좋으면 그 관계를 위해 내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는데, 그럴 경우 그러한 전심의 노력을 끝까지 동일하게 유지하려면 내가 힘들고, 반대의 경우 상대방이 서운해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 같은 성격이 사기당하기 딱 좋은 성격이라며 친한 친구들은 이민 가선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것을 입을 모아 권고했다.
그래서 나는 이민을 오기 전부터 새로운 인연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새로 살아갈 사회에선 난 '박다희'라는 이름보다 '누구누구의 엄마'로 '누구의 부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더 겁이 났다.
그래서 나는 좀 쿨하고 도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적당히 선을 잘 지키는 사람. 맺고 끊는 것을 잘하는 사람. 삶을 돌아보면 그런 사람들에겐 사람들이 더 잘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수많은 다짐 끝에 이민을 왔다.
이곳에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
제로에서 오버로
고백하자면 나는 계획에 성공하진 못했다.
이민이라는 큰 인생의 변화가 나를 조금은 달라지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괜찮은 사람이고 싶은 욕심은 버렸다. 그리고 애써 만들지 않아도 되는, 만나도 되지 않아도 되는 관계에 미련을 버렸다.
욕심과 미련을 버리니 굳이 내가 변하지 않더라도 나는 나름 잘 '조심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난 여전히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쏟으며(오버하며) 최선을 다하지만, 다른 것은 '외국'에선 모든 관계의 중심에 내 가족이 있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약 35년을 나는 나보다 남을, 내 가족보다 다른 사람들을, 내 아이보다 아이의 친구를 더 신경 쓰며 살아왔는데 이곳 에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정말 찾기 힘들다.
관계에서 '욕심', '미련', '남'을 뒤로 하니 '한국인을 조심해'라는 경고를 마음에 새기고 살지 않더라도, 그리고 새로운 관계에 두려움으로 무장한 경계태세로 살지 않더라도 나의 새로운 사회는 참 괜찮다.
내가 변하지 않아도 괜찮다.
쌍무지개
나는 이곳에서 몇몇 친구를 사귀었고, 그들은 나와 같은 엄마들이고, 나보다 참 지혜롭고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 한국인이지만 난 그분들에게 맘껏 오버하며 나의 마음을 표현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어젠 그들과 쌍무지개를 보았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본 쌍무지개였다. 왠지 무지개가 이 사람들에겐 온 마음 다해도 좋을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참 좋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