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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희 Nov 24. 2020

인친의 시대에서 펜팔을 외치다.

나의 소망

요즘 빠진 드라마가 있다.

"스타트업"


이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 달미는 학창 시절 엄마와 언니가 가난과 어려운 현실을 등지고 집을 나가 소중한 가족을 잃고, 아빠와 단둘이 남게 된다. 그리고 힘든 시기에 처한 달미를 위해 할머니는 가상(?)의 친구를 섭외해 편지를 주고받게 한다. 달미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위로받고 외로운 삶의 현실을 이겨낸다. 그렇게 그 편지들은 달미의 삶에 녹아들어 그녀의 꿈이 되고, 사랑이 된다.


나는 펜팔을 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외국에 있는 친구와 (얼굴도 본 적 없는) 수년간 펜팔을 주고받다가 그 친구를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 바퀴를 날아간 이야기, 펜팔을 나누다가 결혼까지 골인한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어보았다.


펜팔의 경험은 없지만, 브런치를 하다 보니 그 느낌이 무엇인지 짐작이 된다. 하루 세끼를 차리고, 치우며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아쉽게도 내 마음만큼 많은 분들의 글을 읽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몇 편, 많으면 몇십 편의 글을 읽다 보면 내 마음에 감시카메라를 달아놓았나? 싶을 정도로 내 생각과 싱크로율 99%에 달하는 글을 만나거나, 글을 쓰신 분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질 정도로 매력적인 글을 만나기도 한다. 어떤 작가님의 글을 읽다 보면 내가 이 분을 실제로 만났더라면 분명 좋은 친구(나이와 성별을 막론하고)가 되었을 거야 싶은 생각도 든다. 그들과 얼굴을 마주해 본 적도 없다. 그리고 나는 더운데 상대는 추운 어느 나라에 있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글들을 만나면 내가 있는 더운 섬나라가 선선한 가을이 되기도 하고, 추운 겨울이 되기도 한다. 가고 싶은 장소가 점점 늘어나고 그곳에 가면 그 글을 쓴 분과 마주칠 수 있을까 상상도 해본다.


아마 그렇게 펜팔을 나누던 이들은 친구도 되고, 결혼도 할 수 있었나 보다.


내가 좋아하고 찾아서 읽는 글들이 있다. 그 글은 때로 슬프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나를 부끄럽게 하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다.

남의 삶을 엿보는 예능 프로그램이 오랜 시간 인기를 얻고 있는데, 브런치로 만나는 수많은 글들이 나에겐 그런 예능 프로그램과 같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연예인에게 애정이 생기고, 그들의 부부관계에 연민 혹은 부러움을 느끼며, 그들의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운 것처럼 브런치에 존재하는 글들을 읽으면 나의 감정선이 글을 따라 흐르는 경험을 많이 겪기 때문이다.


어제 아침에는 슬픈 글을 읽었다.

마음이 먹먹해지고 힘이 쭉 빠졌다.

마침 괌의 커다란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졌고, 거센 비바람이 창을 부술 듯이 몰아쳤다.

그리고 기도했다.

그 글을 위해, 또 유난히 보고 싶었던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드라마 '스타트업'의 주인공 달미는 얼굴도 본 적 없는 도산이라는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십수 년을 이겨냈다. 그녀의 삶은 포기해야 할 것들, 참아야 할 것들, 그리움과 원망으로 가득 찬 삶이었지만 편지는 그녀를 포기 속에서도 도전하게, 참아야 하는 순간에서도 당차게, 그리움과 원망 속에서도 감사와 사랑을 느끼게 해 주었다.


말하고 싶다.

글에는 분명 마음이 있다고.

당신의 글이 오늘 나를 다짐하게 하고, 위로하고, 웃게 한다고. 또 글을 읽으며 글쓴이와 함께 슬픔을 나누고 있기도 하다고.


그리고 차마 부끄러워 말할 수 없었지만, 이것이 말이 아니라 글이라는 이유로 용기 내어 적자면 나의 글을 통해 누군가는 함께 용기내고, 다짐하고, 또 힘을 내고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괌에 내 (펜팔) 친구가 있어."



비가 오려고 하늘이 이렇게 예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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