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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희 Oct 17. 2020

엄마 이전에 딸

코스모스 사진을 보니 내 마음도 가을을 타나 보다.

엄마에게 보냈던 편지

엄마. 
사람들은 자신의 반영을 상대방에게서 발견할 때 상대방을 더 좋아하게 된대. 난 아주 예전부터 엄마의 모습에서 날 찾곤 했어. 그래서 난 이미 엄마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하는데 엄마 모습에 비춰진 날 발견할 때마다 그 사랑이 점점 더 커져.
 
한 살, 또 두 살 나이가 들수록 엄마 기대에 보답할 수 있는 나의 능력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고, 또 엄마에게 걱정만 하나씩 얹게 되는 부족한 딸이지만 그래도 살면 살수록 엄마를 '엄마라는 존재' 그 이상으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만은 정말 감사할 일이야.
 
더 엄마를 닮고 싶어.
내가 엄마 나이가 되었을 때에 나의 모습이 지금 엄마처럼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고왔으면 좋겠어. 언젠가 내 소망처럼 엄마와 똑같은 모습의 내가 되면 그땐 지금보다 훨씬 더 엄마를 사랑하고 있겠지?
 
언제나 내 결정에 엄청난 지지와 무조건적 믿음을 보태주는 엄마! 정말 정말 사랑해요.
막상 앞에선 백만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 중에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고 투정만 부리게 되어서...
늦은 밤. 달 기운에 취해 이렇게 횡설수설해.  
 

-24살의 어느 날, 엄마에게- 중에서




사랑하고 미안해요.

약 10년 전에 엄마에게 썼던 편지를 찾았다. 저 편지에 적힌 대로 나는 지금 더 엄마를 사랑하는 것 같다. 그리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둘 낳는 동안 그 사랑에 측량할 수 없는 미안함까지 더해졌다.


엄마는 내가 좀 더 늦게 결혼을 했으면 하셨다. 그리고 결혼을 현실적인 것이니 내가 연애의 환상에서 스스로 깨어났으면 하셨다. 하지만 엄마는 내 딸의 남자 친구 또한 어느 집의 귀한 자식이라며, 현실적인 조언을 하실 뿐 '대놓고' 반대는 하지 못하더랬다. 그리고 한편 병상에 누워계신 아버지의 병원비를 대느라 돈 같은 것은 모을 새도 없이 힘든 삶을 살아온 남자 친구를 안타까워하시며 자꾸 음식을 해다 주셨다. 혼자 사는 남자 친구에게 샌드위치와 수프를 직접 만들어 예쁘게 포장해주는 일이 엄마에겐 아마 도를 닦는 일과 같았던 것 같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 친구를 엄마보다 더 심하게 반대하셨던 아빠가 어느 날 그를 집으로 초대했다. 아빠는 남자 친구에게 금색 띠가 둘러진 예쁜 몽블랑 펜을 선물하며 말씀하셨다.

"지금 가진 게 없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선물하는 이 펜으로 사인하는 모든 일들이 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겐 아직도 어린 딸이 고생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펜에 새겨진 오늘을 잊지 않고 사랑하는 내 딸을 평생 행복하게 해 주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그날 이후, 남자 친구는 나의 예비 남편이 되었다.


난 아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누구를 만나도 어떤 사람을 데리고 와도 결국 부모님은 내 편을 들어주실 거라는 것. 엄마, 아빠의 약한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던 장녀였지만 동시에 엄마, 아빠의 '엄청난 지지'와 '무조건적 믿음'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어린 자식이었다.




엄마가 보내준 사진

엄마가 사진 한 장을 보내주셨다. 분홍, 진분홍, 연분홍, 자주색 빛깔의 코스모스 밭 사진이었다. "나? 가을이야!"라고 뽐내는 듯한 푸르른 하늘과 이불처럼 하늘에 덮여있는 구름이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코스모스의 지평선에 나란히 서있는 초록나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다.


엄마는 예쁜 것, 좋은 것, 맛있는 것을 마주할 때면 내가 생각이 나나보다. 멋진 풍경을 지나칠 때면 사진으로 담아

나에게 보내주신다. 그리고 나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갈빗집은 미안해서 문 앞도 지나치지 못하시겠다 하셨다.


나도 그렇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을 보면 엄마 생각부터 난다. 24살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아마 10년 뒤, 20년 뒤에도 그럴 것이다.


비록 나에겐 사랑하는 남편과 토끼 같은 자식이 둘이나 있지만 그래도 난 여전히 엄마의 품이 그립고, 아빠의 미소에 마음이 든든해지는 그냥 어린 딸이다.


이민 생활에서 무엇이 제일 힘드냐고 사람들이 자주 묻는다.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항상 똑같다.

"엄마, 아빠를 보고 싶을 때 못 보는 거죠."

엄마 품에서 '아빠~~'를 부르며 손을 흔들어대기만해도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었던 나의 아기 시절. 부모님은 분명 말씀하시겠지. 너는 여전히, 아니 영원히 그런 딸이라고.


나는 우리 첫째, 둘째의 엄마로서 '잘 살아야'하지만 우리 부모님을 위해서 정말, 반드시, 꼭 '잘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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