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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데이팔팔 Nov 13. 2023

어떤 죽음

이제는 바람이 제법 매서워진 밤 어김없이 행복이를 데리고 밤산책을 나선 날이었다. 내일부터는 나올 때 행복이 패딩 입혀야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바람이 찼다. 들이닥칠 바람을 대비하여 어깨를 한껏 목에 붙인 채로 아파트 코너를 도는 데 어디선가 삑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목걸이형 플래시를 소리 나는 곳으로 비춰보니 세상에, A4 용지만 한 끈끈이 위에 작은 새가 소복이 붙어있었다. 아휴 저걸 어째 발이 동동 굴러졌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플래시를 비춰보니 몸집이 조금 큰, 짙은 회색 빛 한 마리와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고 깃털에 연두색이 섞인 다섯 마리다. 세 마리는 겨우 숨만 붙은 채로 할딱이고 있었고 나머지 세 마리는 그래도 아직 날아오르려고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떼어내면 살릴 수 있을까... 얼른 집으로 돌아가 행복이 발을 씻겨 넣어놓고, 식용유와 니트릴 장갑을 챙겼다. 혹시 몰라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전화해 봤으나 밤 열 시를 향하는 시간에 전화를 받을 리가 만무했다.


여기는 너무 추워서 안돼, 남편의 말에 우리는 끈끈이를 통째로 든 채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나는 경비실에 들러 따듯한 물을 종이컵 두 컵에 받았다. 경비아저씨에게 끈끈이 위에 새가 붙었다고 얘기했고, 아저씨는 아이고, 하고 앓는 소리를 하시곤 이따 치울게요 하셨다.


- 끈끈이를 관리사무소에서 놓나 봐요?

- 예... 많이 놔요. 요즘 쥐가 많아서.

- 고양이가 있는데 왜요 ㅠ.ㅠ

- 사료를 주니까... 고양이들이 사료를 먹고 쥐를 안 잡아요.


아파트 내에 캣맘이 있다는 얘기였다. 나도 길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있어서 아파트 내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이 눈에 밟히는 처지였고, 사료나 캔을 몇 번 준 적이 있다. 아파트 게시판에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공지가 붙어있는 걸 보면서 그럼 고양이들은 굶어 죽으라는 얘긴가 싶어서 사람들 참 고약하다 느낀 적도 있었다. 그 공지가 붙었을 때 즈음부터 아파트 내에서 고양이를 보기가 부쩍 힘들어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남편과 한 적도. 내가 알기로 고양이는 쥐를 먹이로도 잡지만 '놀이'삼아 잡기도 한다. 쥐가 많다는 건 어쩌면 이 아파트에 쥐의 천적이 없어서가 아닐까. 쥐를 잡기 위해 놓은 끈끈이가 쥐 대신 새도 잡고 고양이도 잡고 했던 것은 아닐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많이 죽어나갔을 것이다.


식용유가 흥건해진 끈끈이는 그나마 그 효력을 조금 잃어서 새를 떼어내는 데는 성공했다. 숨만 겨우 붙어있던 세 마리는 지하주차장에 들어왔을 땐 이미 그마저도 끊어졌고, 간신히 떼어 낸 세 마리 중 한 마리, 연신 삑삑거리며 도와달라 외치던 것도 기력이 다했는지 죽고 말았다. 여섯 중에 살아서 집에 데려온 것은 두 마리였는데 빈 쌀통에 넣어 행복이 사료를 좀 뿌려주고 물그릇을 놔주는 사이에 한 마리가 또 가버렸다. 그래도 혹시 남은 한 마리는 살릴 수 있을까 싶어 핫팩을 넣어 놓고는 경과를 좀 지켜봤다. 나중에는 날갯짓도 하고 뛰어오르기도 하기에 얘는 정말로 살겠다며, 아침에 야생동물구조센터에 데려다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며 새벽까지 몇 번이나 들여다봤는데, 마지막에 봤을 때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눈을 초롱초롱 떴었는데. 마지막 남은 한 마리도 아침을 보지는 못했다.


새는 작았다. 이렇게 작은 데 살아있는 게 신기하다 싶을 만큼 작았다. 몸통이 내 엄지손톱만 했는데 그 작은 몸통이 연신 헐떡거리는 게 무서워서 나는 잡지도 못했다. 쥐 끈끈이에 새가 잡힐 거라고는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통유리로 된 건물 창에 부딪혀 죽고, 불꽃놀이에 죽고 한다는 것은 알았어도, 땅에 있는 끈끈이에 새가 죽을 거라고는 말이다. 의도 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인간은 살생을 너무 많이 한다.


그 애들은 전부 가족이었을까. 조금 커다랬던 한 마리는 엄마였을까 아빠였을까. 끈끈이 위에 잔뜩 뿌려져 있던 멸치며 콩이며 잡곡을 보고 오늘 우리 가족 배불리 먹을 수 있겠다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앉았을까. 떨어지지 않는 발에 화들짝 놀라 몸부림치다 헤어날 수 없는 늪에 갇힌 것처럼 날개까지, 몸까지 다 빠져버렸을까. 플래시를 비췄을 때 빽빽 소리를 지르던 건 살려달라는 말이었을까 아프다는 말이었을까...


오늘 아침 출근길에 보니 그 자리에 또 새로운 끈끈이가 놓여있었다. 저렇게 사방이 다 트인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쥐가 다니나? 저게 정말 쥐를 잡자고 놓은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는 곳에서, 또 안 보이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어야 되나.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해야겠다. 보이는 곳에 끈끈이를 두면 안 된다고 해야 하나. 끈끈이에 쥐만 잡히는 게 아니라 새도 잡힌다고 해야 하나. 끈끈이를 놓지 말라 해야 하나. 단순 민원으로 치부되지 않을까. 내가 얘기해서 먹히기나 할까. 복작거리며 붙어있던 새들의 모습이 한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인간은 이 많은 살생의 죄를 어떻게 씻으려고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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