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는 수용성
비장한 마음으로 시작하지는 않았으나 얼레벌레 석 달을 채우게 된 소감 : 매우 뿌듯하며 나 자신이 아주 자랑스럽다.
좋은 습관을 만드는 데 며칠의 시간이 걸릴까? 석 달쯤이면 유산소 운동이 내 평생을 함께 할 습관이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뜀박질과 계단 오르기가 지금까지 내가 접했던 그 어떤 운동보다 스트레스에 효과적이라는 거다.
그전까지는 복싱이 제일 그랬다.
복싱은 내가 이십 대 중반 사회 초년생이었던 시절 6개월 정도 체력증진을 목적으로 했었는데,
제자리에서 스텝을 밟으며 샌드백을 치고 있자면 내가 무슨 이 세계 힘의 최강자라도 된 마냥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스파링을 하다가 어쩌다 한번 우연히 코치의 옆얼굴이나 턱 밑으로 우연히 내 주먹이 정확히 꽂힐 때, 그때의 쾌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 맛에 중독되어 정말로 생활체육인 대회에 나가볼까도 생각했었다. 내가 사람을 때리는 것을 이렇게 좋아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때는 열심이었다. 퇴근 후에 복싱장에 가면 하루 한 시간은 너끈히 글러브를 끼고 뛰었으니 운동량이 상당했는데, 그래서인지 갈수록
식욕이 너무 돋는 거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 니 등드리가 너무 커졌다. “ 했고, 어쩐지 입던 옷들이 조금씩 타이트해진 것을 느끼며
그렇게 복싱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만둔 이유를 이것으로 일축할 수는 없으나 체력증진과 더불어 맞게 된 식욕증진, 그에 따른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체중 증가가 가장 큰 이유였던 것은 맞다.
(실제로 복싱을 하기 전에 입던 쟈켓들은 그 이후로는 영 못 입게 되었다. 체중을 그 이전으로 돌려놔도 마찬가지다. 진짜로 골격이 커져버린 걸까?)
샌드백이나 사람을 두들기는 행위는 없지만 어쨌거나 뛰어야 한다는 점에서 복싱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유산소 운동은 닮아있다.
한참을 정신없이 뛰고 나면 말도 못 하게 숨이 찬다는 것도,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땀에 흠뻑 젖어있는 것도 말이다.
희한하게도 이 힘들어죽겠는 활동에는 중독성이 있다. 사람들에 치여 너무 피곤한 하루를 보낸 때는 견딜 수 없이 헬스장으로 직행하고 싶어 진다.
얼른 땀 빼면서 풀고 싶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스트레스는 수용성이라는 말이 영 터무니없는 말은 아닌 것 같다.
티셔츠가 땀에 절여진 채로 기진맥진 쿨다운을 하고 있노라면 일과 중에 있었던 힘들었던 일은 생각도 안 나게 된다. 몸에 열이 돌아 후끈거리면서도
개운하기 그지없다. 몸은 지치는데 마음은 정갈해진다. 이 맛에 계속한다.
오늘은 천국의 계단을 40분 동안 올랐다. 천국의 계단을 타면 100층을 오르는 것이 늘 목표였는데, 100층을 오르려면 내 기준 평균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그렇게 30분 동안 100층을 오르면 최대심박수가 180 이상까지도 올라가면서 이제 진짜 못하겠다, 하는 느낌이 절로 드는데
우습게도 그 즉시 머신에서 내려오면 1분 안에 심박수가 120 밑으로 떨어진다. 아까 힘들었을 때 그냥 조금 더 해볼 걸 하는 오기가 드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100층을 채우고도 40분 돌파해 보자 하는 마음에 속도를 줄인 채로 계속 다리를 움직였다. 힘들긴 했으나 영 못할 건 아니었다.
내일은 30분 천국의 계단, 20분은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기를 해볼까 싶다. 처음 시작할 때는 꿈도 못 꿨던 일이다. 앞으로도 이렇게 조금씩 운동량을
늘려볼까 한다. 유산소는 꼭 몸의 근육만 키우는 일이 아니라, 마음의 근육도 함께 키우는 일이란 걸 너무나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회복탄력성이라고 하던가? 요즘은 어지간해서는 마음이 힘들지 않다. 모든 운동이 공통적으로 가진 효능이 아닐까 싶다. 스트레스는 수용성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