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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데이팔팔 Apr 29. 2024

1인분의 일을 했더니 개인주의자가 된 나

그래서 어쩌라고



월요일 아침, 무거운 몸과 그보다 더 무거운 마음을 끌고 출근을 했다.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열고 굳어있던 손가락을 풀고 있는데 사내 메신저가 깜빡인다. 나름대로 가깝게 지내는 동료와의 채팅창이 열렸다. 아침부터 팀장(사무관)의 호출이 있었는데, 로 시작되는 흥미진진한 얘기였다.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다.


같은 팀의 A주무관을 지원하라는 얘기를 하더란다. 지난주 금요일 작은 소란을 일으킨 민원인이 있었는데, 그 민원인이 팀장을 찾아간 게 화근이었을까? 그리고는 내 얘기를 하면서, 내가 개인주의적이라고도 했단다. 내게 말을 걸어온 동료는 내 기분을 생각해 전부를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헤이데이88 주무관은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라 옆 직원이 고초를 겪을 때 도와줄 인물 같지 않으니, 당신이 좀 지원을 하라는 얘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다방면으로 어이가 없었다. 이 이야기를 내게 전한 동료도 적잖이 당황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분은 A와 전혀 업무에 교집합이 없다. 자리만 가까이에 앉았지 전혀 다른 업무를 맡고 있다. 본인도 상황을 설명했으나, 1년 반을 거기 있었으니 대충 다 알지 않냐고 반문을 하더란다. 말문이 막힐 노릇이다. (그러는 본인은 1년 동안 팀장을 해 먹었는데, 다 알까?)


그리고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당연하게도 매우 기분이 상했다. 엄연히 A의 업무 대행자는 나고, 그간 A가 쌌던 똥을 내가 처리한 것이 여러 번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주 금요일 그 민원인, 나도 정확하게 기억하는 그 민원의 경우는 다르다. 옆에서 다른 민원을 처리하고 있었던 나는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로나마 파악하고 있었는데, 애초에 A가 안내를 명확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이 소란을 일으켜도 내가 그걸 대신 커버해주고 싶지가 않았다. A도 발령을 받은 지 벌써 석 달이 지났고, 내 똥내산(내가 싼 똥은 내가 회수하는 것)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달리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그 민원인 때문에 지연되고 있었던 다른 민원을 내가 처리하고 있는 도중이기도 했다.


옆에서 나서야 할 만큼 큰 소란을 일으키지는 않았으나, 고상한 어투로 "여기 민원제기는 어디서 하나요?" 하는 민원인의 말에 A가 팀장에게 보고를 했고, 민원인을 사무실 안으로 안내했고, 3자 대면 끝에 민원인은 (대부분의 생떼 민원인이 그렇듯) 별 수확 없이 돌아갔다. 그 이후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쓰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이번 사건에 한해서는 나는 A 주무관을 탓하고 싶지 않다.


내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팀장이다. 민원부서에서 하급 직원의 안내 부주의로 인한 소란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안내 부주의가 아니라 하더라도, 본인의 뜻이 관철되지 않았다고 떼를 쓰는 민원인은 한둘이 아니다. 그런 케이스의 경우 으레 뒤에서 지켜보던 상급자들이 (하급자의 요청이 없어도) 나서주게 마련이다. 나이가 있는 결재권자가 나서는 것만으로도 수긍하는 민원인들이 많다. 그런데 지금의 팀장은 그렇지 않다. 나서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것 같다. 담당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어쩔 줄 몰라해도 나 몰라라 앉아있거나, 그저 강 건너 불 보듯 구경이나 하고 있다. 심지어 다른 직원에게 한번 가보라 등을 떠민 적도 있다. 등을 떠밀린 그분의 황당해하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다 지난주 금요일처럼 본인이 직접 민원을 응대해야 하는 일이 생기자, 민원 발생의 당사자 A 주무관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지도 않던, 대행자도 아닌, 제3자를 불러 업무 지원을 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면서 또 다른 직원의 험담을 한다? 이게 다 무슨 경우란 말인가? 이게 말로만 듣던 갑질인가? 그냥 들이받아버릴까? 하루종일 더러운 기분이 가시지 않았더랬다.


그래서 결론은 뭐냐고? 나는 굳이 내 입과 손을 더럽히지 않기로 했다. 그 팀장은 이미 우리 부서에 발령받기 전부터 소문이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상대로 대들어봐야 그저 그 소문의 진위를 내가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이는 것 그 이상도 아니므로. 그리고 남들에게는 어쩌면 씹기 좋은 얘깃거리에 지나지 않을 한낱 가십을 제공하고 싶지도 않았다.


대신 나는 칼퇴 후 내게 저녁을 해 먹이고, 운동을 가서 늘 하던 인터벌을 조금 더 강도 높여하고, 시원하게 사우나도 한판 때리고 이렇게 집으로 돌아와 청결한 몸으로 글을 쓴다. 내 인생에서 의미도 없고 별 쓸모도 없는 인간에게 휘둘려야 했던 나를 위로하고, 오늘 고생 많았다고 타이르며 나 스스로를 소중히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내일도 정갈한 매무새로 출근을 할 것이고, 내게 주어진 일을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긴 해도 사실 동료에게서 처음 얘기를 전해 듣고 네이버에 ‘개인주의자’를 검색한 것은 비밀이다.

남편에게 이 사실을 속속들이 일러바치며 그 팀장 욕을 질펀하게 한 것도 비밀이다.

그리고 이렇게 나의 공간에 무능한 당신을 고발하는 것도. 당신은 평생 알 노릇이 없는 나의 비밀이며 복수다.

어떠냐? 나의 음흉한 복수가. 고단한 하루를 뒤로 하고 두 발 뻗고 꿀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깔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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