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행자의 행운 - 내게 일어난 무수한 기적들
2009년 2월 7일,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날.
차가운 런던 공기와 처음 마주한 날이다.
유럽에서 살아보는 여행을 떠나는 길 위에서, 설렘과 긴장 사이 어딘가의 마음가짐을 한 채로 히드로 공항에도착했다.
여행 대부분의 시간(6개월)을 보내게 될 도시였고, 영국에서만큼은 어학 공부도 제대로 하고 싶었기에
도시와 어학원 선정에 가장 고심했다.
인턴십 프로그램과 소셜 프로그램이 활발한 St. Giles International London Central을 선택했다.
처음 배정받은 반은 General English 코스의 Upper-intermediate 반.
한국, 일본, 콜롬비아, 이탈리아, 터키, 체코, 독일 등등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한 국가에 치우치치 않고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편이었다.
St.Giles 생활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적응기:
영국 생활의 첫 한 달, Upper - Intermediate 반에 배정받았던 시기.
Zone 4 너머에 있는 홈스테이 집에서 매일 센트럴까지 통학하며, 낯선 영국과 학교 생활에 적응하던 시기다.
도약기:
벨기에와 네덜란드 여행을 마친 후 Advanced 반으로 올라간 시기. 다양한 국적의 반 친구들과 어울리며
런던을 제대로 즐겼던 시간이다. 친구들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마다 쿨한 척하며 인사했지만,
집에 와서는 속상한 마음에 엉엉 울곤 했던 어린 나.
마무리기:
인턴십을 끝내고 돌아와 다른 Advanced 반에서 보냈던 런던에서의 마지막 한 달.
남은 런던 생활을 후회 없이 보내기 위해 매 순간에 적극적으로 임하던 시기다.
신기하게도 다음 여행 목적지였던 발렌시아 출신 스페인 친구가 마지막 반에 있었다.
발렌시아에서 생활할 때 그녀는 내게 정말 많은 도움을 줬다.
심지어 내가 살게 된 집 전철역 두 정거장 거리에 살고 있어서 놀라웠다.
살아보는 여행을 하는 동안 무수하게 내게 일어났던 감사한 기적들 중 하나다.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수많은 우연과 마주했다.
때로는 이 여행이 내가 계획한 게 맞는지, 아니면 발걸음을 내딛던 모든 길들이 원래 내가 가기로 정해져 있던 길이었는지 헷갈릴 정도로, 기적이라 부르기 충분한 우연들이 많았다.
인턴쉽 끝나고 학원으로 돌아온 첫 번째 날,
지각해서 헐레벌떡 뛰어들어와서는 눈에 보이는 빈자리에 그냥 앉았는데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North? South?' 물어보던 곱슬머리 아이가
나를 따라 네덜란드로 이사를 오고,
나와 8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다는 것이
여행을 하는 동안 내게 일어났던 무수한 기적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꼽히는 기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