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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 Dec 02. 2024

낮잠을 아무도 게으르다고 하지 않는 곳

No Pasa Nada -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살아보는 여행하기

런던을 떠나 오렌지 빛깔의 발렌시아로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던 런던과는 달리, 발렌시아의 태양은 여전히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트렁크 두 개를 들고 공항에 도착한 나는 그제야 실감했다.
정말로, 말이 하나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 살러 온 거구나.

목이 말라 자판기에서 물을 사면서 처음 배운 단어는 Agua. 내가 익힌 첫 번째 스페인어였다.

어학원에서 어레인지해 준 택시 기사 아저씨가 이것저것 말을 걸었지만,
나는 어색한 웃음으로만 대답했다. 그렇게 발렌시아에서 내가 살게 될 플랫, 아니 피소(Piso)에 도착했다.

시원한 대리석 바닥이 깔린 멋진 피소였다.


띵동. 문을 열어준 건 환한 미소를 가진 친구였다.


“안녕? 아, 네가 새로 온 하우스메이트구나?”

“응.”
“들어와!”

아파트 안에는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스페인어 할 줄 알아?”
“아니.”
"하하, No pasa nada! (아무 문제없어!) 앞으로 이곳에서 자주 듣게 될 말이니까 기억해 둬.”

시원하게 웃던 그는 독일에서 온 크리스티안이었고, 룸메이트 역시 17살 독일인 리나였다.


그렇게 나는 떠나오기 전 재미있게 본 영화 Spanish Apartment와 같은 쉐어드 아파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스페인어 한마디도 못해요" 라며 쩔쩔매면 더듬거리는 영어로 "Don't worry be happy!"를 외치던 랑스러운 사람들. 오후 두세 시의 씨에스타를 마치고 바닷가로 달려가 저녁 8시까지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누워있다가 어슬렁어슬렁 집으로 돌아와 밤 10시에 늦은 저녁을 먹고, 소화도 안 시킨 채 11시에 잠들어도 아무도 너 왜 이렇게 게을러! 라고 혼내지 않던 곳.


2009년 발렌시아의 여름이었다.



스페인어 첫걸음


어학원 반편성 시험을 치러 갔을 때, 선생님이 물었다. 

“실력이 제로인데, 시험 꼭 보고 싶어?” 팩폭. 

결국 시험 없이 A1반으로 배정됐다.

런던 어학원에서는 10분만 지각해도 수업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발렌시아 어학원에서는 선생님들이 15분씩 지각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그런데도, 수업 종료 시간만큼은 기가 막힐 정도로 칼 같았다.

우리 반 친구들은 나처럼 스페인어를 못 하는 이들이었고, 대화는 대부분 영어로 이루어졌다.
그때 처음 경험했다. 나의 주 언어가 한국어에서 영어로 바뀌는 기분.

가끔 영어로도 답답한 순간엔 문득 떠올랐다.

‘아, 나 원래 영어도 잘 못했었지.' 




낮보다 화려한 발렌시아의 밤


보떼욘(El botellón), 말하자면 ‘길거리에서 술 마시기’는 발렌시아 바닷가에서 활발하게 펼쳐졌다.

정부에서는 금지한다고 하지만, 밤을 좋아하고, 술을 사랑하고, 노는 걸 즐기는 스페인 사람들이 포기할 리 없었다. 매일 밤 바닷가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지만, 특히 수요일에는 사람들이 더욱 넘쳐났다.
그 이유는 바로, 수요일에는 입장료가 무료인 클럽이 많기 때문!

보떼욘을 즐기고 공짜 클럽에 가서 신나게 춤추다 해가 뜨면 아침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잠드는 것.
이게 바로 스페인식 밤문화였다.

룸메이트 리나와 함께 집에 굴러다니던 와인을 들고 바닷가에 갔더니 이미 해변은 보떼욘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독일에서 약대를 다니는 엘레나와 크리스티나, 벨기에에서 온 귀여운 사라, 프라하에서 온 안 나와 친구들, 네덜란드에서 온 사랑스러운 마루. 

그리고 아마 가장 신기한 존재였을 스페인어 한마디도 못하면서 한국에서 온 나까지! 


지금 스페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 가우디의 건축물도 지중해를 비추던 뜨거운 햇살도 밤늦게까지 이어지던 파티도 아니다. 기분 좋은 날이면, 아니 조금 울적한 날이더라도 상그리아 한 병, 맥주 한 캔 사다가 바닷가로 달려가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소소한 순간들이 가장 생각난다. 

친구 한 명과 가도, 결국엔 열명이 일행이 되어 돌아오는 유쾌한 보테욘 의 기적이 가끔 그립다. 



오고 가는 정 


런던 어학원에서 같은 반 친구로 만난 엠마는 우연히도 발렌시아 피소에서 트램 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그간 신세를 많이 진 엠마를 위해 김치전, 김밥의 재료를 들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언제나 덤벙대는 나는 김치전을 준비하기로 해놓고 김치를 빼놓고 가서, 양파전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솔직한 엠마는 양파가 듬뿍 들어간 정체 모를 전과 김밥을 먹고 나서, 이렇게 많은 양파를 한꺼번에 먹어본 적은 처음이라 가슴이 울렁거린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날 밤, '누군가 나를 위해 요리해 준 적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정말 고마워'라는 그녀의 문자를 받고는 엄청 뿌듯해하며 행복하게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 그녀는 내게 스페인에서 먹고 싶은 음식이 뭐냐고 물었고, 나는 빠예야라고 답했다.

엠마: "내가 빠예야 맛있게 하는 곳 알아" 

과일도 싸고 식재료도 싸서 천국 같았던 스페인은 의외로 외식을 하려면 비용이 꽤 많이 든다. 그래도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빠예야 정도는 먹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엠마가 저렴하고 맛있는 빠예야 맛집을 추천해줬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데 이게 웬일, 엠마의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엠마 부모님 댁이었다.

빠예야는 레스토랑에서 사 먹는 음식이 아니라, 일요일에 가족들과 함께 먹는 음식이라며 나에게 차마 

레스토랑을 추천해 줄 수 없었다고 했다.

어머니의 정성이 들어간 빠예야는 감동적일 만큼 맛있었고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한자리에 둘러앉아서

이야기는 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했다. 타지에서 오랜만에 느껴본 정이었다. 

발렌시아에서는 런던에서 느끼기 힘들었던 정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온기.

런던보다는 조금 촌스럽고 덜 세련되었지만, 어딘가 인간적인 느낌이 가득한 곳.


내 기억속의 발렌시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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