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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 Nov 19. 2024

생각의 추를 옮기자 새로운 시야가 열렸다

생활여행 아이디어를 얻게 해 준 북경 단기 어학연수

1년 동안 유럽 생활여행을 하겠다는 아이디어,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대학교에서 중국어를 전공했던 나는 살아있는, 생생한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으로 대학 2학년 여름방학에 중국으로 단기 연수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내가 선택한 곳은 북경어언대학교의 5주 단기연수 프로그램.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계획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바로 그곳!

北京语言大学(북경어언대학)


기대와 두려움 반반으로 시작한 이 5주간의 연수가 단순한 어학연수를 넘어,

내 대학 생활과 더 나아가 인생을 바꾼 터닝포인트가 될 줄 그때는 정말 꿈에도 몰랐다.







학교생활


5주라는 시간은 긴 듯했지만 매일매일이 신선한 충격으로 가득 차 지루할 틈이 없었다.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 이어지는 수업은 왕 선생님과 다양한 국적의 반 친구들과 함께했다. 상급반일수록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 학생들의 비율이 높았지만, 필드 트립(Field Trip)에서 만난 전 세계의 친구들은

대부분은 기본 인사도 하지 못하는 초보반 학생들이었다. 처음엔 이런 친구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중국어 한 마디도 못하면서 여기 와서 뭘 배우겠다는 거야?"


한국에서는 보통 기초를 다진 뒤 중고급 단계에서 어학연수를 떠나는 경우가 많아, 기초도 없이 연수를 시작한 그들의 모습이 낯설고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왕 선생님, 아직 건강히 잘 계실까?




교외활동 - 내몽고에서 세계를 만나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HSK 준비반, 서예 수업, 운동 등 방과 후 활동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주말에는 만리장성, 서안, 낙양, 내몽골 등으로 떠나는 필드 트립도 있었다. 나는 내몽고를 선택했다.

일반 여행사보다 가격은 비쌌지만 학교에서 주최하는 여행이라 더 믿음이 더 갔고, 친구들과 함께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내몽고로 향하는 버스 안은 작은 세계 같았다. 아무도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중국어로만 가이드를 하다가 갑자기 전통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을 당황시키던 선생님, 곧바로 이탈리아 민요로 맞받아치던 유쾌한 이탈리아 친구들, 어딘가 늘 심각해 보였던 독일 커플, 제일 뒷자리에 앉아 열정적으로 키스를  나누던 프랑스 커플, 그리고 하루종일 시끄럽게 떠들던 미국 유학생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이 신기하기만 했던 호기심 많은 한국인, 나.


내가 그간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에 딱 들어맞는 모습을한 장소에서 보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그 장소가 내몽고를 가로지르는 버스라는 점이 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버스 안의 작은 세계는 여전히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이때부터 세상이 넓다는 것을 깨닫고, 꼭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가 묵었던 내몽고의 전통 숙박 형태 몽고바오 (蒙古包)


사고의 축을 이동하다


내몽고 여행을 하며 만났던 친구들을 통해 나는 이전에 품었던 의문,

"중국어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들이 여기 와서 뭘 배우겠다는 걸까?"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중국에 대한 호기심으로 방학을 이용해 중국으로 여행을 온 학생들이었다.

어학연수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


"기초도 없는 상태에서 와서 뭘 배우겠다는 건가?"
"5주 동안 새로운 언어를 얼마나 배울 수 있겠어?"


와 같은 비효율성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관점의 추를 '여행'으로 옮기자 전혀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도시를 거점으로 삼고, 주말마다 다른 도시나 인근국을 여행할 수 있구나."
"수업을 통해 반 친구들을 사귀고, 이들과 함께 도시를 탐방할 수도 있구나."
"여행만 했다면 서바이벌 중국어 정도만 배웠겠지만, 학교를 다니니 훨씬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구나."


정말 무릎을 탁 치게 된 순간이었다.
사고의 축을 이동함에 따라 하나의 현상을 이렇게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때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언젠가는 나도 꼭 이런 여행을 해보겠다고.



중국에서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더 느끼고 오다


나는 중국어를 배우러 북경에 갔지만, 오히려 입술 언저리에서 떨어지지 않는 영어 때문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방과 후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룸메이트 언니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수능 끝나고 고이 묻어두었던 영어를 다시 꺼내야 했다. 중국어과라서 중국어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5주간의 연수를 마친 후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영어권 친구들과 대화할 때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느낀 자괴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외고를 졸업하고 수능 외국어 영역에서 1등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아무런 말도 못 해서 병풍처럼 서 있던 그 자괴감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속상함에 기숙사로 돌아와 울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자괴감에 빠져 있을 때,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오래했던 언니가 말했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절대 잊지 말고, 한국에 돌아가서 영어 공부의 원동력으로 삼아.”


이 조언은 나를 바꿨다. 한국에 돌아와 영어회화반에 등록하고 매일 아침 빠짐없이 다녔고,

영어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내몽고를 여행하며 만났던 친구들은 대부분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원어민들이었고, 방과 후 룸메이트

언니 친구들과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도 모두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영어 원어민 친구들과 이렇게 편한 환경에서 영어로 대화하며 친해질 수 있는 기회는 어쩌면 영어권 국가가 아닌 곳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비로소 생기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보통 어학연수를 가면 일상을 벗어나 타지로 모험을 떠난 비슷한 처지의 반 친구들과 주로 친해질 확률이 높을 텐데, 영어권 국가에서 어학연수를 하면 영어 원어민을 반 친구로 만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이 5주간의 짧은 단기 연수는 내가 앞으로 떠날 1년간의 생활여행의 아이디어를 얻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생각의 추를 이동하며 새로운 시야를 얻었고, 자괴감을 영어 공부의 원동력으로 바꾸는 힘을 배웠다.

그리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그 열망은 나의 여행 계획으로 이어졌고, 나는 살아보는 여행을 떠나기 위한 계획을 차근차근 세워가기 시작했다.


우연한 계기로 떠난 대학 2학년 여름 방학 북경 5주 단기 연수는 이렇게 내 인생의 첫 나비 효과를 불러 일으킨 이벤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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