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살기, 어학원 등록이 필요한 이유(2)
들어가며
나는 2009년, 영국 런던, 스페인 발렌시아, 프랑스 리옹에서 살아보는 여행을 떠났다.
당시에는 한 달 살기라는 이름이 없었기에, 나는 이 여행을 생활여행이라고 불렀다.
이름 그대로 한 도시에서 생활하며 그곳의 리듬과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이 하고 싶었다.
1년 간의 생활여행은 단순한 여행을 넘어, 삶에 대한 태도와 방향을 새롭게 제시해 준 중요한 경험이었다.
생활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축은 어학원이었다. 한 달 이상 한 도시에 머문다면 어학원 등록은 정말 추천하고 싶다. 지난 편에 이어 장점들을 소개하려 한다.
넷째, 친구들을 쉽게 사귈 수 있다
어학원은 생활 속에서 현지의 리듬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친구를 사귀고, 외로움을 잊게 하는 소중한 경험을 준다. 런던에서 만난 S 언니와는 모로코 여행과 리옹 생활까지 함께하며 특별한 인연을 맺었고, 역시 런던에서 만났던 N과는 서로의 결혼식에도 참석하며 우정을 계속 쌓아가고 있다. 또한 런던 플랏메이트로 만났던 J 언니와도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어학원에서 사귄 친구들은 생활여행의 무료함과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보석 같은 존재였다.
생활여행은 일상을 살아내는 여행이기에 정해진 활동이 없으면 무기력해기 쉽다.
낯선 환경에서 이러한 외로움과 무기력은 종종 향수병을 동반한다.
어학원에서는 수업 외에도 다양한 소셜 액티비티를 주최하는데, 이 역시 일상의 활기를 더해주는 중요한 요소다. 내가 다녔던 영국 어학원은 소셜 액티비티가 많기로 유명했는데, Pub crawl, 템즈강 보트파티, 주말여행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다채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학원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온 사람들인지라 마음에 여유가
있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데도 적극적이다. 이렇게 사귄 친구들은 유럽 여행을 할 때 정말 든든한 로컬
가이드로 변신한다. 덕분에 여행 중 유럽 여행을 다닐 때 늘 친구들 집에 머물며, 친구들의 도움으로 편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다섯째, 여유와 설렘을 모두 느낄 수 있다
자장면이나 짬뽕이냐, 여유냐 설렘이냐. 선택하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배낭여행자들이 여행 중에 가끔은 현지인 같은 여유를 느끼고 싶어 하듯, 한 곳에 오래 정착한 사람들은 생활이 익숙해짐에 따라 여행의 설렘을 그리워하게 된다. 나 또한, 중국 교환학생 시절 익숙해짐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한 장소에 익숙해질수록 무기력함도 찾아왔고, 그럴 때면 새로운 곳으로 떠날 계획을 세우며 설렘을 되찾곤 했다.
생활여행은 짬짜면과 같이, 여유와 설렘을 모두 선사한다.
런던, 발렌시아, 리옹은 생활의 보금자리이자 여행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했다. 발렌시아에서는 주말마다
바르셀로나 같은 주변 도시로 여행을 떠났고, 긴 휴가에는 주변 나라를 방문하며 설렘을 만끽했다.
설렘을 만끽하고 돌아와 다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기반이 있다는 것은 생활여행이 주는 매력 중 하나였다.
마지막 이유, 비영어권 어학원을 다니면 영어를 쓸 기회가 더 많다!
처음에는 영국 어학연수를 가려다가 생활여행으로 방향을 바꿨다. 영어권에서의 연수만으로는 영어 실력
향상에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주변에서 영어권 어학연수를 다녀온 친구들이 일본어나 중국어만 늘어왔다며
농담을 하곤 했는데, 그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반 친구들은 나와 비슷한 수준의 영어를 사용할 테고,
반에 단 한 명 있는 원어민인 선생님과 수업 시간 외 만나서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때 과거 중국에서의 연수 경험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만난 반친구들은 대부분 북미와 유럽 출신이었고
수업 시간 외에는 영어로만 대화했기 때문에 중국에서 오히려 영어 회화 실력이 크게 늘었던 것이다.
영어권이 아닌 스페인과 프랑스의 어학원에 등록하면, 오히려 반에서 영어 네이티브 친구들과 어울리며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더 많지 않을까? 역발상의 도전이었으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예상대로 현지어가 서툴렀던 우리 반 친구들과는 수업 시간 외에는 자연스럽게 영어로 소통하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한국어와 영어가 내 머릿속을 오갔다면, 스페인과 프랑스에서는 영어와 스페인어/프랑스어가
오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에서 배운 영어를 가장 많이 사용한 곳은 스페인과 프랑스였다.
영어 공부를 주목적으로 스페인과 프랑스를 선택하라고 추천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곳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하며 영어를 주요 소통 언어로 사용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고, 기본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라는 제3 언어까지 보너스로 얻게 되었다는 점에서 내게는 소득이 컸다.
발렌시아에서 만났던 한 영국인은 스페인 여러 도시에서 일주일씩 어학원을 등록하며 두 달간 여행 중이라고 한 것이 인상 깊었다.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그라나다 등을 돌아다니며 어학 공부를 이어가는 색다른 여정을 즐기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도 다음에 한 번쯤은 도전해 보고 싶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않고, 주변의 만류에 흔들리지 않으며 내 마음속의 확신을 기반으로 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하나하나 입증해 나갔던 여행이었다. 내가 세운 목표와 가정들이 여행을 통해 하나하나 채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심지어 예상치 못했던 것들까지 보너스로 얻어졌다.
단지 한 달 살기라는 오늘에서야 입증된 트렌드가 당시엔 정해지지 않았기에, 주변에서 만류했던 게 아닐까? 그 만류에 흔들려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할 기회를 놓쳤더라면 어땠을까? 마음의 확신을 믿고 따르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었는지 새삼 오늘에 와서야 더 크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