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살기를 하는데 필요한 우리의 자세
1년 동안 떠날 생활 여행을 준비하는 데 총 6개월이 걸렸다. 24시간 내내 계획만 세운 건 아니었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노트를 꺼내어 빈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여행 계획을 채워나갔다.
실제로 여행을 다니는 순간만큼이나 이 준비 시간 역시 설레고 떨리는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오래전, 싸이가 미국 엘런 쇼에서 강남스타일 춤을 출 때 '옷은 고급스럽게, 춤은 저급하게 (Dress Classy, Dance Cheesy)'라는 말로 화제를 모았던 적이 있다. 나의 생활 여행에서의 마음가짐도 비슷했다.
‘떠나기 전엔 철저하게, 떠난 후엔 유연하게.’
떠나기 전의 철저함
여기서 말하는 철저함이란, 모든 순간을 꼼꼼히 계획하라는 뜻은 아니다. 변수가 생겨도 흔들리지 않을 큰
줄기를 잡고 출발하라는 의미다. 여행 중에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생기고, 그때마다 내 마음도 쉽게
바뀔 수 있다. 이런 일들이 닥쳤을 때 빽빽한 계획에 매달리면 쉽게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여유 시간을 확보하고,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부분까지 계획에 포함해 두는 그런 철저함이 필요하다.
내가 세운 생활 여행의 뼈대는 '기간', '방문할 나라와 도시', 그리고 '현지 어학원과 숙소'라는 큰 요소들로
구성되었다. 이런 큰 틀만 확실히 세워두면, 예상치 못한 일들에 흔들리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선택과 집중 - 가장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하라
가장 어려웠던 결정은 방문할 나라와 도시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준비 과정에서 깨달은 점은, 좋아하는 것을 고르는 선택보다 버리고 싶지 않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여행 기간이 길수록, 경험하고 싶은 것이 많을수록, 이 고민은 깊어진다.
일단 세계 지도를 펼치고 평소에 가고 싶었던 나라들을 모두 나열해 보았다.
영국, 아일랜드, 스페인, 독일, 프랑스, 체코, 그리스, 홍콩, 일본, 콜롬비아, 칠레, 호주, 태국, 이탈리아…
결국 포기할 수 없는 목표를 중심으로 우선순위를 세우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어학원을 다니며 영어 실력을 키우고 인턴십을 경험할 것
적어도 세 나라에서 생활할 것
영국 외 나머지 두 나라의 생활비는 영국보다 비싸지 않을 것
이 목표를 중심으로, 스페인과 프랑스를 최종 선택했다. 프랑스의 리옹과 스페인의 발렌시아를 선택한 이유는 파리나 바르셀로나 같은 대도시보다 학비와 생활비가 저렴했기 때문이다.
여유 공간과 백업 플랜의 중요성
나라와 도시, 어학원까지 정해졌다면, 이제는 세부적인 기간을 조정할 시간이다. 나는 나라 간 이동 사이의
시기를 2주에서 한 달 정도로 느슨하게 잡아두었는데, 그 이유는 영국에서 만날지도 모르는 ‘상상 친구’ 집에 놀러 갈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아 물론, 계획을 세울 때는 영국으로 가기 전이었다.
아직 만나지 않은,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상상 친구의 집을 방문할 목적으로 여유를 둔 것이다.
상상 친구를 결국 만나지 못할 경우에는 다국적 배낭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백업 플랜도 준비했다.
다국적 배낭여행이란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버스를 타고 여행하며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고성에서 묵거나, 모로코 사막 투어를 하는 등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경험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당시 참고했던 프로그램들은 TOPDECK, CONTIKI, Travel Talk 등이었다.
15년 전 열심히 검색했던 다국적 배낭여행사들인데 아직도 운영되고 있어 꽤 역사가 깊은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겠다.
TOPDECK : http://www.topdeck.travel/
CONTIKI: http://www.contiki.com/
Travel Talk: http://www.traveltalktours.com/
준비의 의미를 넘어선, 자유로운 마음가짐
여행의 큰 뼈대를 잡고, 여유 시간을 확보하고, 백업 플랜을 마련하고 나니, 이제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여행의 본래 목표를 이루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그 외에 생기는 일들은 보너스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행 중에는 언제나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 역시 중간에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예상치 못한
도전을 마주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
생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로 영어로 진행되는 석사 과정을 마치고 네덜란드에 정착했다.
지금의 진로는 당시 열중했던 '한국 잘 알리기' 목표와는 다소 다른 길로 이어졌지만, 여행 중에 나만의
프로젝트를 꾸려가던 경험은 살면서 해보고 싶은 크고 작은 일들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외에도 바라면 욕심이라고 생각했던 모로코 사막 여행, 런던 박물관 자원봉사, 기본 스페인어와 프랑스어 회화 등 목표했던 것들을 이루었고, 상상 친구는 현실 친구가 되어 지금도 매년 만나며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마무리하며
여행 계획을 세웠다면 이제 계획이 틀어질까 걱정하지 말자.
어차피 일정은 빗나가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은 생기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