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형 시제까지 밖에 진도가 못 나갈지언정
2009년, 나는 영국 런던, 스페인 발렌시아, 프랑스 리옹에서 살아보는 여행을 떠났다.
당시엔 한 달 살기라는 개념의 여행이 없었기에, 나는 이 여행을 ‘생활여행’이라고 불렀다. 이름 그대로 한
도시에 머물며 그곳의 리듬과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이 하고 싶었다. 1년 간의 생활여행은 단순한 여행을 넘어, 삶에 대한 태도와 방향을 새롭게 제시해 준 중요한 경험이었다.
생활여행의 핵심, 현지 어학원
생활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축은 다름 아닌 현지 어학원이었다. 한 달 이상, 짧게는 일주일 이상 한 도시에서 머물 계획이 있다면, 현지어학원을 등록하는 것을 강력 추천하고 싶다.
어학원 등록은 언어 학습을 넘어 현지 생활을 이해하고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기회를 제공했고,
그 외에도 장점이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첫째, 현지 언어로 소통하며 문화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한 나라에 머무는 동안 그 나라의 언어를 기초적이라도 익히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간단한 대화라도 현지어로 가능하면 그 나라의 다양한 문화적 면모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발렌시아에 있는
동안 하루에 5시간씩 5주 동안 언어를 집중적으로 배우고, 오후에는 문화 수업을 들었다. 짧은 시간 같지만, 이는 대학 교양 수업을 일주일에 두 시간씩 한 학기 수강하는 시간과 맞먹는 시간이다. 물론 이 기간 동안
현재형 시제까지만 배우는 데 그쳐 대화는 오직 현재와 만고불변의 진리에 머물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배운 어휘를 실생활에 바로 활용하며, 어린 아이가 언어를 받아들이듯 스페인어와 프랑스어가
서서히 스며드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둘째, 규칙적인 일상으로 여행의 무료함을 방지할 수 있다
한 도시에 오래 머물다 보면 여행의 신선함이 조금씩 줄어들 수 있고 익숙함이 쌓이다 보면 무료함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무료함이 자칫 우울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어학원 수업은 이러한 무료함을 막아줄 수 있는 규칙적인 루틴을 만들어 주었다. 책의 진도가 나가는 만큼 나의 하루하루도 쌓인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특히 오전 수업에 등록한 덕분에 하루를 부지런하게 시작할 수 있었고, 덕분에 나른한 여유와 생동감 넘치는 일정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다. 비록 스페인에서는 늦잠이 아닌 낮잠을 자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했지만, 이 역시 시에스타 체험인 걸로. 흠흠.
지금 돌이켜보면, 죄책감 없이 늘어지게 낮잠을 잘 수 있었던 것도 그때만 할 수 있었던 여유로운 경험이
아니었나 싶다.
셋째, 숙소 문제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다
현지 어학원들은 학생들을 위해 학생 기숙사, 아파트 셰어, 홈스테이 등 다양한 숙소 옵션을 마련해 두고
있다. 어학원을 통해 현지 숙소를 쉽게 해결할 수 있었고, 덕분에 현지 생활의 안정감도 크게 높아졌다. 특히 언어 장벽과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상황에 미리 숙소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한 달 정도의 단기
렌트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은데, 현지 학생 아파트들은 6개월 이상 장기를 선호하고, 에어비앤비와 같은 단기 숙박 전문 플랫폼을 통해 해결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발렌시아 어학원을 통해 학생 피소(Piso, 아파트)를 소개받았고, 그곳에서 만난 하우스 메이트들과
마치 영화 ‘스패니쉬 아파트먼트’처럼 유쾌한 일상과 인연을 나눌 수 있었다. 발렌시아 전체 어학원과 연결되어 있는 아파트라, 다른 어학원에서 연수하는 친구들까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프랑스 리옹에서는 현지 대학생들이 거주하는 학생 기숙사를 이용할 수 있어, 당시 기준으로 한 달에 200유로가 채 되지 않는 금액으로 싱글룸에서 지낼 수 있었다.
이렇게 마련한 공간은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큰 안정감을 주었고, 생활여행의 든든한 뼈대가 되었다.
아직도 남아 있는 기가 막힌 장점들은 다음 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