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은 언제 업데이트했나요?
우리가 손에 쥐고 사는 스마트폰 화면에 또 뜬다. '새로운 업데이트가 있습니다'
나는 업데이트 버튼 누르기를 지극히 주저하는 편이다. 어차피 계속 사용할 기기이고 운영체계이지만 무언가 업데이트를 하면 시스템 재부팅, 재설정 같은 것들을 요구하지는 않을까, 설치를 위해서 반나절 이상 '본인 인증의 늪'에 빠지지는 않을까, 괜히 쓸데없는 것에 '동의' 해서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는 않을까 두려워서다.
그래서 멈추는 걸까.
많은 중년들이 새롭게 전환되고 있는 Life-stage 앞에서 멈춘다. 그럭저럭 굴러가니까. 회사 다니고 월급 받고, 애 학교 보내고, 아내 또는 남편과의 논의도 필요하고, 대출도 갚고, 부모님께 용돈도 드려야 하는 복잡한 '인생 OS(Operation System. 운영체계)'를 괜히 건드렸다가 꼬이고 무너질까 봐 그대로 두나보다.
가만히 보면 50대는 독특하다.
그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부를 보유하고 있는 세대이다. 그런데 새로운 것에는 비용과 노력을 잘 들이지 않는다. 시간 관리도 잘한다. 그런데 자신의 시간은 만들지 못한다.
아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깊은 관계는 점점 줄어든다.
일단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매일 아침이 무겁다. 거울을 보곤 깜짝 놀라는 경험을 한두 번씩은 한다. 미러갭(Mirror gap)인데, 50쯤 되면 본인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세면대 거울 속에 비친 모습(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모습)의 차이에 흠칫 놀라곤 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 본인의 생각보다 5~10살 이상 나이가 더 들어 보여서 놀랄 것이다. 이제는 탄력을 잃은 몸과 듬성해진 머리를 보고 스스로 실망하게 될까 봐 거울을 잘 안 보게 된다.
가끔 TV나 유튜브로 시간과 나이를 잊은 듯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처음에는 '나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어느 한 곳에 쏟아부을 시간을 생각하면, 비용을 생각하면, 아내나 남편에게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생각하면 포기하기가 쉽다. 반드시 무엇인가를 해야 할 당장의 필요는 없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무엇인가는 해야 한다는 조바심이나 갈증은 있었는데 이런 '사연'들이 있으니 오히려 포기나 '다음으로' 미루는 일에 죄책감이 없이 외면할 수 있어서이다.
건강검진을 하면 하나씩, 둘씩 경고등이 켜진다. 혈압, 고지혈증, 혈당, 콜레스테롤 기타 등등.
퇴행성 OOO라는 말은 그나마 위안이 된다. 자기 관리를 하지 않아 생긴 내 잘못이나 열성 유전자 때문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서 그냥 낡고 있다는 것이니까, 이 나이에는 정상이라는 뜻의 다른 표현이다.
예전에는 설렜던 일(Event)이 이젠 그냥 일(Burden)로 느껴진다. 친구와 만나서 술자리를 갖고, 회식을 하고, 연례모임에 참석하는 게 예전처럼 즐거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과 대화도 잘 통하지 않는다.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대화가 아닌 잔소리를 하고 있고 마주 선 아이들은 어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기만 바라는 눈치다. 아이일 때는 떼라도 쓰고 눈치라도 보더니 이제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경지에 다 달았다. 분리가 시작된 것이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시간이 생겨버렸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아내나 남편은 다른 일로 옆에 없다. '나 자신'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책도 읽고 싶고, 오랜만에 기분전환 삼아 드라이브도 하고 교외 카페에도 가고 싶다. 전시회나 공연은 아니더라도 오후에는 잠깐 친구를 만나서 맛있는 식사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집을 대충 정돈하고 나니, 급한 업무를 잠깐 처리하고 나니 벌써 오후다. '이제 뭘 해야 하지? 뭘 하지?' 하다 보니 해가 저물어 간다.
이제부터는 귀찮아진다. 아이가 하교를 했다. 배우자가 돌아왔다. '나 자신'의 얼굴 위에 다시 엄마 아빠, 아내 남편의 가면을 쓴다. 잠자리에 든다. 다시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시작된다.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이야 달리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거울 속 내 모습을 세심히 마주 볼 수도 있었고, 유튜브 속 인플루언서처럼 도전하거나 특별한 여행 계획을 세워보기 위해 정보를 찾아볼 수도 있었다. 건강검진 결과에 따라 건강관리를 위해 무엇을 할지 결심할 수도 있었다. 예상치 못한 시간이 났을 때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일상을 벗어난 대단한 일은 아니어도 바람정도는 쐴 수도 있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우리 삶에는 이미 '인생전환기'라는 큰 변화가 시작됐다.
그것을 우선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게 업데이트의 시작이다.
살면서 변화와 변수를 피할 수는 없다.
변화와 변수는 우리를 당황하게도 만들지만, 새로운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즐겁고 새로운 변화와 변수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닐까? 새로운 취미나 여가생활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그런데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변화와 변수를 통제의 대상으로만 대하는 경향이 있다. 아예 원천차단하는 삶의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일견 지극히 현실적이고 맞는 자세다. 부양가족이 있고, 쌓아온 삶의 시간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흔들거나 위태롭게 할지도 모를 변화와 변수가 달가울 리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변화와 변수를 한번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피할 수 있는 변화와 불가피한 변화.
통제할 수 있는 변수와 통제불가능한 변수.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와 불필요한 변화.
운동경기와 비교해 보자.
지금까지 성실하게 살아오면서, 그리고 도전하고 성취하면서 쌓아온 점수가 있다. 그런데 인생이라는 상대에게 점수를 내주지 않기 위해서 공격은 하지 않고 방어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상대에게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취하면서 새롭게 점수를 따는 것을 공격이라고 보고, 상대가 만들어 낸 변화와 변수에 적응하고 대응하는 것을 수비라고 보자.
수비만 해서는 상대를 이길 수 없다. 지금까지 쌓아 온 점수가 워낙 많아서 앞으로 수비만 해도 지지 않거나 최소한 비길 게 확실하다면 수비집중이라는 전략은 유효하다. 그렇지 않다면 공격을 해야 최소한 졌잘싸라도 한다.
그런데, 상대의 전략이 이미 뻔히 보이지 않는가.
노화라는 변화를 만들고 은퇴라는 변수를 만들어 낼 것이다. 양육과 부양이라는 환경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자녀는 독립할 것이고 부모는 언젠가는 돌아가시게 될 것이다. 배우자와의 관계변화도 불가피하다.
이런 상대의 공격이 뻔한데, 수비만 하겠다고? 공격 없이 수비만 하는 경기는 지치고, 고되고, 어렵기만 하지 않을까? 졌잘싸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