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가 멈춰 선 진짜 이유. 과부하
오래 사용하던 노트북이 갑자기 버벅댄다. 뭐라도 하나 하려고 하면 로딩에 한참이 걸리거나 다운이 된다. 딱히 고장 난 게 아니라면 열어놓은 창이 너무 많거나 저장용량에 여유가 없어서 과부하 상태가 됐을 확률이 높다. 우리를 삶 앞에 멈춰 서게 만드는 이유도 비슷하다. 해야 하는 역할이 너무 많거나 일상에 여유가 없이 과부하가 걸려있는 상황이거나.
50대는 인생에서 가장 많은 가면을 쓰는 시기다. 샌드위치 세대로서 양육하는 부모, 부양하는 자식의 가면을 번갈아 쓴다. 두쪽 다 삶이 달린 문제라 소홀히 할 수 없다.
생계활동의 가면은 어떤가. 자녀 양육비는 정점을 찍고, 부모 부양비는 계속 늘어난다. 계획에 없던 별건의 목돈 지출도 빈도가 높아진다. 그래서 가면의 무게가 무척 무겁다. 이 가면들은 '의무'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고, 최우선 순위에 두는 역할 가면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이들이 직업적 역할을 실제 자아로 착각하기도 한다.
형제자매, 친구, 동료, 각각의 관계에도 기대되는 역할이 있다. 결코 가벼운 가면은 없다. 맨 얼굴을 보일 일이 없을 만큼 기대받는 역할, 의무감으로 하는 역할들 때문에 과부하가 걸린다.
그러다가 스스로 본인의 가면을 쓰지 않은 얼굴, 즉 다시 말해 '나 자신'을 낯설어하거나 아예 잊게 된다.
'나 자신'을 사실상 가두는 보이지 않는 감옥도 있다.
우리는 매일매일 마스크를 써야 했던 팬데믹을 경험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벌금을 물어야 했고, 입장이 제한됐고, 공공에 민폐를 끼치는 사람으로 보던 때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해제됐다. 그러자 매일 쓰던 마스크 없이 출근을 하던 길이 얼마나 어색하고 허전했었던가. 어떤 이들은 해제 이후에도 한동안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도 했었다. 맨 얼굴차림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삶에서도 우리는 맨 얼굴로 사는 일이 어색하다. 부끄럽고, 민망하고, 써야 할 가면을 내팽개친 듯한 자책감에 스스로 다시 가면을 찾아서 나의 맨 얼굴을 가리곤 한다.
게다가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하거나 미뤄뒀던 무엇인가를 시작하려다가 스스로 포기하면서 자기 낙인(Self-stigma)을 찍기도 한다. '이제 와서 뭘...', '이 나이에 무슨...' 하는 식이다.
게다가 우리의 사회, 커뮤니티는 50대를 '예비 시니어'로 한정 짓고 어딘가에 속하기라도 하면 닥치고 어른 대접을 하거나 어른의 역할을 기대하기도 한다. 애초에 영포티, 꼰대라는 식의 배타적 시선으로 인구통계학적 구분을 짓는다. 여담이지만, 나는 영포티라는 특정 세대의 관점이 불편하다. 영하든 말든, 올드하든 말든. 소위 말하는 어린 세대의 치기 어린 조롱법인 것 같은데 오히려 나이 좀 먹었다는 사람들이 시쳇말로 쫀다. 아, 그렇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그런 나이이다. 내가 이 커뮤니티에서 나이에 걸맞지 않다는 평가를 받을까 봐, 꿔다 놓은 보릿자루는 아닌지 눈치를 보는 나이인가 보다.
어쨌든 이런 것들은 의도됐건 그렇지 않았건 엄연한 사회적 연령차별이다. (Social Agism)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힌 우리 세대.
자기 낙인과 사회적 연령차별, 이것이 우리에게 내려진 두 가지 혐의라면 협의이겠다.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해.'
'낄끼빠빠를 알아야지.'
'이제 비켜줘야지.'
뭐, 좋다.
사춘기 때나 지금이나 호르몬의 변화와 신체적 성징 또는 노화징후들로 심리적 불안정을 겪는다는 점에서는 그때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른 점이라면 그때(사춘기)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없거나 나 자신조차도 나를 도울 여력이 없다.
그 시절에는 시스템 운영체계에 이상증상들이 보이면 도움을 청할 수 있었다. 그럼 시스템을 잘 알거나 혹은 비슷한 증상을 겪어본 경험이 있는 언니, 오빠, 형, 누나가 와서 쓸데없는 것은 삭제해 주고, 부족한 것은 업데이트해줄 수 있었다. 그럼 우리는 그것을 보며 배우고 성장했다. 때로는 부모님이 시원하게 새로운 기기로 바꿔주기도 했다.
지금은 어떤가. 우리에게 그런 역할을 해주었던 언니, 오빠, 형, 누나, 부모님은 되려 우리의 보호를 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예전과는 많이 바뀌어버린 운영체계(OS)이지만 간단한 문제는 스스로 진단할 줄도 알아야 하고, 간단한 삭제와 업데이트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또는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물어볼 데라도 만들어 놓아야 한다.
우리의 삶이, 생애주기상 꼭 이런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인 것 같다.
내 일상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느 정도는 스스로 원인을 추론 또는 진단할 수 있을 만큼 내 삶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고, 내 삶에 대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주체인 '나 자신'으로서의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하고, 연대할 수 있는 몇몇 연결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할 나이가 아니겠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