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마당과 태종사
2013년 12월 초, 나는 홀로 기차여행을 떠났다. 7일 간 무제한으로 기차를 탈 수 있는 '내일로' 혜택이 만 26세까지 인 게 그 이유였다. 주어진 건 일주일, 효율적인 동선으로 가장 많은 곳을 둘러보기 위해 기차 노선과 시간표를 대조해 가며 시골버스의 시간표까지 살피며 꼼꼼하게 계획을 세웠다.
첫 여행지로 전주를 택했다. 청량리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3시간 반을 가는 동안 나의 시선은 눈을 감는 것보다 창밖으로 향했다. 창문에 가까웠던 수풀들은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기차의 움직임과 떨어져 있는 시골집들은 호젓한 모습으로 나를 꼿꼿하게 응시하듯 흘러갔다. 풍경의 움직임과 귀에 꽂은 이어폰 속 음악의 리듬을 느끼며 가다 보니 어느새 전주역에 도착했고 이후 보성, 순천, 경주, 울산을 지나 마지막 여행지인 부산에 당도했다.
부산역에서 내려 남포역에 도착해 30번 버스를 탔다. 조금 지나자 구불구불한 언덕길이 나타났다. 버스는 익숙한 듯 가파른 경사 속에서 강렬한 굉음을 내며 도로를 가로질렀다. 버스의 박력 있는 움직임을 느끼며 창문을 바라보니 끝없이 펼쳐진 바다의 물결이 눈앞에 나타났다.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은 바닷바람이 창문 사이로 시원하게 들어왔다. 코끝에 머무는 바다향기를 느끼다 보니 어느새 버스는 종점 도착 소리를 알렸다. 마지막 여행지인 태종대였다.
신라 태종 무열왕이 활쏘기와 연회를 열였다는 이곳은 울창한 숲과 함께 기암괴석이 남해 바다와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자랑했다. 트레킹 할 수 있도록 안내된 표지판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20분 정도 지나자 등대자갈마당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을 하나씩 밟으며 내려가면서도 나의 눈은 절벽들 사이 유난히 반짝이는 윤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름답게 오돌토돌한 자갈들이 펼쳐져 있었고 나는 그곳에 가만히 앉아 바닷물이 자갈들과 부딪히며 내는 파도소리를 들었다.
너무 평온해서일까?
괜스레 눈물이 났다. 막 사회에 나와 일을 시작한 지 3년도 채 되지 않았던 시점이라 모든 것이 버거웠던 것 같았다. 바다는 파도를 뱉어내고 삼키는 걸 반복하며 윤슬을 더욱 반짝였다. 부딪혀야 더욱 반짝일 수 있음을, 바다는 그렇게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나를 위로해 주었다. 어느덧 해가 떨어지고 난 태종사로 가기 위해 아쉬운 눈길을 거두며 파도와 윤슬을 담아내고 바지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태종대 트레킹코스 옆으로 살짝 비켜난 흙길을 따라 들어가니 크지 않은 절이 나왔다. 12월의 태종사는 사람이 없어 한적했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처마 끝 풍경도 그 속에서 자기만의 청아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해가 막 떨어지기 시작한 4시 반이었다. 노르스름한 빛깔이 절의 기둥으로 기울었고 마침 절에서 스님이 나오셨다. 어색하지만 합장을 하며 인사를 드렸더니 스님도 은은한 미소를 지어주며 말없이 인사를 받아주셨다. 그 미소에 나는 가슴속에서 뜨거운 입김 같은 것이 올라왔고, 이내 눈물이 차올랐다.
눈물의 원인이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그날 눈물이 난 이유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참견보다 따듯한 친절이, 험상궂은 인상보다 어른의 미소가, 질타보다 응원의 눈동자가 필요했었다. 그렇게 나는 스님의 미소에서, 태종대의 절벽에서, 자갈마당의 윤슬에서 위로의 얼굴을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힘들 때마다 그 따듯한 얼굴을 마주하러 태종대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