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부모님이 구독했던 신문은 보수 성향 신문이었다. 정치 경제면은 봐도 봐도 모르는 것뿐이었지만 문화면은 달랐다. 꽤나 즐겨 읽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인문 교양을 쌓는데 어느 정도는 신문이 그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어릴 때부터 보던 신문에서 좋아하던 칼럼이 있었다. 자라고 한동안 신문을 안 봤는데 한참 후에 그 신문을 구독하고서 그 칼럼을 다시 발견했다. 쓰는 이는 아마도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지면이 살아있어 반가웠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자발적으로 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두 종류의 신문을 구독했는데 진보와 보수의 대명사 격인 신문들이었다. 도서관에서 들었던 NIE 수업 선생님께서 양쪽 성향의 신문을 봐야 정보가 편향되지 않을 거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이후 두 종류의 신문을 구독하게 됐다. 그 전까지만 해도 확증 편향에 관한 인식을 갖고 있지 못했는데 NIE 수업은 내게 나름의 영향을 준 것이다. 아무래도 양쪽의 시각을 구별하며 판단할 수 있는 눈이 생긴 것도 같다. 정보 편향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이제는 여실히 알고 있기도 하다.
자발적 신문 구독을 했을 때부터 진보 성향 신문은 처음 제대로 보게 됐다. 그 신문은 잡지를 보는 듯하다.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기사와 기존 신문에서 보지 못하는 색다른 시도들이 흥미롭다. 어릴 때부터 한 신문만을 보던 내게는 혁명적 충격이었다. 어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를테면 남북정상회담 같은 큰 사건 다음 날 1면을 전면 사진으로 편집하는 등 강렬하다. 그럴 땐 그 날 신문은 소장해야 하나 갈등까지 생긴다.요즘은 여러 다른 신문에서도 가끔은 파격적 편집을 시도하는 듯하다.
이런 때도 있었는데...
신문 구독의 목적은 솔직히 함께 끼어서 배달해주는 어린이 신문 때문이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신문을 보는 습관을 들이는 게 내 경험을 비추어봐도 중요할 듯싶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어린이 신문을 보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만화 섹션이 다수 있어 그것만 골라 보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신문은 즐거운 읽을거리와 정보가 가득 들어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아는 것 같다. 학교에 와서 간식을 먹으며 신문을 보는 것을 휴식처럼 즐긴다.
신문을 읽다 보면 지나치기 아쉬운 기사나 정보가 보이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자기 입맛대로 만화만 쓱 봤을 것만 같아 한번이라도 다시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 언제부턴가는 화장실 변기 가까운 벽면에 몇 꼭지를 오려서 붙이기 시작했다. 우리 집 어린이 독자가 읽건 말건 엄마만의 고독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나름 좋은 기사의 선택이라는 고민을 안기는 즐거운 편집자의 시간이기도 했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화장실에 나오면서 가끔은 기사나 이슈에 반응을 보였다.
엄마, 그거 말이야. 흥미롭던데.
우리 애들보다 한참 어린 자녀를 둔 학교 동기가 그런 우리 집을 보고는 "화장실에서마저 공부시키는 거야?" 하며 뜨악하는 소리에 약간 뜨끔은 했지만 그 여정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본론은 여기서부터다.
어느 날 갑자기 그날그날 오리는 신문에 대해 기록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어떤 생각으로 이 기사를 선택했고, 아이는 거기에 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 쓰려고 한다.
올해부터는 자발적 신문구독을 멈췄다. 대신 비자발적으로 그동안 구독하던 신문이 아닌 다른 종류의 신문 두 부를 보고 있다. 앞으로 이 매거진은 주로 그 신문들에서 뽑은 기사 링크와 그에 대한 소소한 얘기로 이루어질 것이다.가끔은 미처 읽지 못하고 모아뒀던 한참 지난 기사 내용도 있을 수 있다.
신문은 매일매일 값싸게 읽을 수 있는 현재 진행형 종합 인문학지다. 신문이 아이에게 혹은 엄마에게 오늘은 어떤 교양과 지혜를 안겨주게 될까. 그럼 이제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