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재밌어서 만들었어요!

by 윌버와 샬롯

싹둑 기사 1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다른 클래식 악기들은 규격이 정해져 있어요. 음색도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론 같은 소리를 내죠. 하지만 오르간은 장소마다 천차만별이에요. 크기뿐만 아니라 파이프 개수, 건반의 단수와 낼 수 있는 음색 수까지 다양해요. 새 오르간을 만날 때마다 조작법을 익히려면 꽤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게 오르간의 매력이기도 하죠. 세상의 모든 오르간이 다 같았다면 아마 오르간을 계속하지 않았을 거예요."


교회나 성당을 다니지 않는 나로서는 파이프 오르간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오르간에 대한 로망은 가지고 있다. 알록달록 종교화가 화려하게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공간에서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파이프 오르간을 듣고 싶다는 소망 말이다. 유럽 여행 중에 비슷비슷한 여러 두오모를 기웃거린 것은 혹시 오르간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태 국내외 어디에서도 난 그 소리를 아직도 실제로 듣지 못했다.


콘서트를 연다는 오르가니스트의 기사를 보고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오르가니스트는 자기만의 파이프 오르간을 갖고 있을까? 그 거대한 악기를 소장하며 연습할 수 있을까?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박준호 오르가니스트는 유럽 내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된 100여 곳에서 연주를 했다고 한다. 자기만의 악기가 아닌 것으로 때마다 다른 소리를 낸다는 것에 다른 클래식 연주자와 많이 다른 느낌이다. 각기 다른 소리를 내기에 오르간에 더 매력을 갖는다는 그의 말이 인상적이다.


비즈니스 석 옆 자리에 악기를 동반하여 연주 여행을 다닌다는 어느 저명한 연주가의 이야기나 첼로나 바이올린을 매고 다니는 클래식 전공자에 대한 뭔지 모를 아우라에 나는 아마도 동경심이 있었던 것도 같다.


"우리는 모든 것이 굉장히 빨리 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어요. 귀를 즉각 만족시켜줄 수 있는 음악을 원하죠. 하지만 인간 내면에는 지적욕구와 정서적 고양에 대한 갈망이 있어요. 오르간으로 연주하는 바흐의 푸가를 듣다보면 소리의 퍼즐들이 한 조각씩 맞춰지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오르간에는 분명 우리의 지성과 정서를 함양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관악기, 현악기 소리뿐만 아니라 종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까지 낼 수 있다는 오르간 기사를 보니 이 악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부디 언젠가 내게도 어느 예쁜 곳에서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소망해본다.



싹둑 기사 2

"너무 빨리 변하는 시대잖아요. 더 이상 새로운 게 나오기 힘들 정도로요. 레트로란 옛스러운 것들의 유행이 아니라 옛것을 레퍼런스 삼아 젊은 세대가 해석해가는 방식이 아닌가 싶어요. 방산어사전도 지난 세대의 용어를 젊은 세대가 해석하는 방식 때문에 주목해주시는 것 같아요."


방산어사전이라. 혹자는 굳이 이런 사전이 필요한 걸까 하고 의문이 들기도 하겠지만 난 이 젊은이들이 참 재밌다. 대중적으로 널리 필요하지 않은 것일지라도 나름의 가치를 알아내고 뭔가를 완성해내는 이 패기. 그거야말로 과연 예술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사전이란 단어가 담은 진지한 깊이보다는
가볍게 즐기는 마음으로 제작했어요.
우리가 재밌어서 만든 것을 좋아해 주실 때
정말 기분이 좋아요.
'놀려면 알고 제대로 놀자!'가
우리 목표예요.
먼저 방산어사전을 통해
즐겨주시길 바랄게요.


'즐기자는 마음으로 가볍게. 그냥 재밌어서 만들다.' 우리는 뭐든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처음엔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을까. 정말 재미있고 즐거운 것은 무엇을 바라고 시작하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시작했고 꾸준히 했을 뿐인데 나도 모르게 큰 꾸러미가 되어 어느새 묵직한 가치가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지 않던가.


이 젊은 예술가의 발랄한 시도에 응원을 보낸다. 전혀 내 삶의 반경에 들어오지 않았을 외계어 방산어들이 내 귓가에 이제는 즐겁게 노래하고 있으니 벌써부터 그들은 목표에 도달했다.



싹둑 기사 3

https://www.mk.co.kr/opinion/columnists/view/2021/02/101535/

나는 밤이 낯설지 않네.
나는 빗속을 걸어나갔고 빗속을
되돌아왔네.
도시의 불빛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걸었네.
나는 멈추어 서서 발소리를 죽이고
들었네,
지붕과 담을 넘어 들려오는 끊어질 듯한 외침을
날 부르는 소리도, 작별 인사도
아니었네.
저 멀리 아득히 높은 곳에,
빛나는 시계가 하늘에 걸려 있고,
시간은 틀리지도 맞지도 않다고
알려주네.
나는 밤이 낯설지 않네.

- 로버트 프로스트 作 <밤이 낯설지 않네> 중


지난 일 년 동안만큼이나 고독한 때가 또 있었을까. 일상을 다 반납하고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BTS는 'Life Goes On'이라고 노래 부르지만 현재와 같은 삶은 이제 그만 멈췄으면 한다.


내일이면 설이다. 별일이 없는데도 이번 설은 남편만 본가에 갔다. 코로나 말고 별일이라는 것이 지금 이 시기에 또 뭐가 있을까.


핑곗거리가 어쩔 수 없기에 시댁에 가지 않는 명절이라지만 빈손으로 남편만 보낼 수 없기에 일찍부터 일어나 함께 보낼 음식을 준비했다. 그래야 조금은 마음이라도 편할 것 같아서. 친정식구들을 본지도 너무 오래됐다. 어디도 가지 않으니 평상시보다 몸은 편하지만 여전히 이 끝나지 않는 전쟁이 야속하고 밉다.


사실 인간의 본질은 고독이다.
따라서 고독과 친한 자는
인간의 속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자다.
고독은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
친하게 지내야 할 친구다.
잘 고독한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이다.


인간의 본질이 고독이라 하지만 우리는 이미 고독을 즐길 만큼 즐기지 않았던가. 이제는 같이 웃고 떠들고 싶다. 고독은 가끔만 하고 싶다. 서로를 의심과 경계로 대하는 이 일상이 어서 끝나길 바란다. 아이들이 어서 학교에 가기를. 어서 운동장에서 뛰어놀기를. 마스크 없이 서로의 미소를 확인할 수 있기를.


그렇게 심란한 마음으로 낯선 설 연휴를 고독하게 보내고 있다. 모두들 별일 없이 봄을 맞이할 수 있기를,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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