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직원은 손 엄청 시리겠어요

by 윌버와 샬롯

싹둑 기사 1

여덟 살짜리 딸은 아버지의 지시대로 옆에서 성경책을 읽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제판기를 이용해 아연판에 점자를 새겼다. 그런데 아이가 읽어주는 성경은 쪽복음, 즉 권별로 분리된 휴대용 성경이어서 제대로 읽기가 힘들었다. 행을 바꿔 읽을 때 같은 줄을 또 읽거나 한 줄을 건너뛰고 읽는 일이 잦았다. 그러면 아버지는 아연판으로 딸의 머리를 내리쳤다. 딸은 서러웠다.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존재인가 보다. 완벽하게 안과 밖을 모두 살필 수가 없다. 큰 일을 한 위대한 인물을 보더라도 대외 업적과는 별도로 미처 돌보지 못한 가정사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사는 한글 점자를 만든 송암 박두성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어린 딸의 도움을 받아 그는 점자를 새겼다. 도움을 주는 딸에게 그가 조금만 다정했으면 어땠을까. 그러나 일제강점기라는 열악한 상황에서 완성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 앞에 딸에게는 마음의 여유가 그에겐 없었을 것도 같다.


나라를 위해서 희생한 영웅들 후손의 삶이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일 때 많이 속상하다. 영웅은 가족을 돌보지 못했기에 우리는 나라를 되찾았현재까지 올 수 있었다. 영웅이 돌보지 못했다면 후에라도 이름을 찾은 조국은 그들 후손을 돌봐야 함은 마땅하다.


젊은 시절 한국 점자를 위해 살다 시력도 나빠지고 중풍으로 누운 송암 박두성은 그제야 딸에게 사랑을 표현했다고 한다. 약해진 부모는 다시 자식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으리라. 젊은 시절 딸에게 혹독하게 한 것에 대해 왜 그라고 후회와 회한이 없을까. 한때는 의붓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딸은 했다지만 아버지의 위대함을 훗날 이해할 수 있었다 하니 다행이다.


며칠 전 아이들과 윤동주 삶을 조명한 영화 '동주'를 함께 봤다. 나는 영화를 개봉했을 당시 극장에서 이미 봤었지만 아이들에게 윤동주와 송몽규의 삶을 알려주고 싶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아이는 엄마랑 똑같이 눈이 벌게져 있었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절. 우리는 그 시절의 이름도 다 헤아리지 못할 많은 이들에게 빚지며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적어도 우리는 지금 위치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싹둑 기사 2

울릉도는 바람이 강하게 불어 적설판 위에서도 위치마다 눈이 쌓인 정도가 다르다. 이 때문에 관측자들은 매 시간 적설척 주변을 자로 찔러가며 평균치를 구해야 한다. 눈보라가 몰아쳐도, 한밤중이어도 거를 수 없다. 17일까지 5일간 비상근무를 마친 김정희 울릉도관측소장은 “매 시간의 관측 기록들이 모여 울릉도의 기후 역사가 되기에 한순간도 게을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기 또 극한직업 하나를 발견했다. 매 시간마다 눈보라가 쳐도 자를 들고 눈을 재야 한다니. 첨단을 달리는 요즘 시대에 눈을 재는 방식은 너무나 아날로그식이 아닐는지. 정말 이 방법이 최선인 거지. 기사 사진 속 관측자를 보면 진짜이긴 한가 보다. 이런 건 AI 로봇으로 대체할 수는 없는 것인지. 밖에 나가 자로 대기만 하면 되니 그깟 일로 로봇까지 대동할 필요성을 기상청 당국은 모르는 건지.


예전 TV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기상청 직원이 나오는 걸 본 적 있다. 기상청 체육대회 날마저 비가 온다더라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들었었다. 아무리 과학 기술이 좋아졌다지만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을 어찌 모두 딱딱 떨어지는 수학처럼 맞출 수 있겠는가. 모든 일에는 변수가 존재하는 법. 맞추면 본전이요, 틀리면 욕이나 얻어먹는 일이니 극한직업임에 틀림없다.


야구 시즌 때 야구를 시청할 때마다 의아한 점이 하나 있다. 왜 스트라이크존을 아직도 심판의 눈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다년간 훈련된 베테랑 심판이 하는 일이니 오판이 흔하지는 않다. 그렇다 해도 컴퓨터가 사람 눈보다 더 정확하지 않을까. 한치의 오류도 없을 지능화된 컴퓨터보다 더 명확한 심판이 있을 수 있을까. 경기 중계 중에도 던져진 공의 위치가 찍힌 자료 화면을 보여주는데 굳이 심판이 판단해야 할 일인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매 시마다 자를 들고 눈보라를 헤치며 눈을 재는 것이나 어느 지점에 공이 들어오는지 정도는 굳이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이제는 더 이상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기상청이나 야구의 현장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 엉뚱한 생각 수 있다. 내가 모르는 다른 분명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또 달리 생각해보면 아무리 날고 긴다는 엄청난 기술이 있다 해도 변치 않는 그 무엇은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단순하지만 지켜야 할 어떤 가치 뭐 그런 거. 첨단기술까지는 아니더라도 연필깎이로 연필을 깎는 것보다 칼로 쓱쓱 나무를 깎을 때 마음이 차분해져 그 시간을 좋아했던 내 어린 시절 모습만 봐도 그렇다.


어제는 눈이 많이 왔다. 그러니 어제도 기상청의 어느 직원은 매 시간마다 추운 야외에서 눈의 양을 체크했을 것이다. 봄이 되면 야구 경기를 많은 사람들이 직관할 수 있게 될까. 야구장에 퍼지는 심판의 시원한 아웃 판정 동작을 다시 볼 수 있게 될까. 본인의 자리에서 묵묵히 오늘도 그 일을 해낸 모든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그나저나 아무리 그래도 기상청 체육대회날마저 비가 온다는 건 좀 아니지 않나. :)



싹둑 기사 3

엘 그레코, 목동들의 경배, 1612~1614년
혼자 ‘아니다’를 외칠 수 있는 용기. 엘 그레코는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부정했던 건 다름 아닌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미켈란젤로였다. 모두가 천재라고 칭송했던 거장을 그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지 몰랐다”며 무시했다. 스스로를 미켈란젤로보다 뛰어나다고 믿었던 이 화가는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혼자 '아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 쉬운 일이 아니다. 남편과 가끔 언쟁이 높아지는 주제이기도 하다. 본인은 그러고 싶지 않은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다는 그 빤한 말들이 힘 빠지게 한다.


여기 엘 그레코는 엄청 용기 있는 자였다. 당대에도 그랬지만 현재까지도 위대한 화가인 미켈란젤로를 무시했다니 그 자신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기에 그럴 수 있었을까.


기사를 보니 성공한 자에게 내는 그저 허무맹랑한 질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의 그림을 보고 첫눈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20세기 입체파 미술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설명을 읽고 나니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유와 자격이 있는 자신감. 비록 미켈란젤로보다는 존재감은 약하지만 엘 그레코 역시 400년이나 앞섰던 천재였던 거다. 그러니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한 것이 당연했다.


경력단절 아내, 토끼 같은 자식 둘, 이 세 사람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남편은 오늘도 야근을 해야 한다고 연락했다. 아침밥도 잘 챙겨주지도 못하면서 아내는 부조리에는 용기 있는 남편이 되어주기를 속도 모르며 바가지를 긁고 있었을지 모른다.


왜 그라고 자존심이 없을까. 왜 그라고 비굴함을 모르겠는가. 내 남자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아내는 바라지만 어찌 더러운 꼴 안 보고 당당하게만 살 수 있을까.


밀가루로 만든 거 말고
비싼 걸로 시켜 먹어.


회삿돈으로 저녁을 먹을 남편에게 철없는 아내는 그렇게 말했다. 그럴유일하게 회사에 할 수 있는 아내의 구차하고 소심한 복수다.


미끄러울 눈길인데 많이 늦지 않기를, 조심하고 안전히 들어오길 아내는 엘 그레코보다는 용기는 없지만 그래도 가정에 충실하고 자상한 남자를 오늘도 늦은 밤까지 기다 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엄마, 패소가 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