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패소가 뭐예요?

by 윌버와 샬롯

싹둑 기사 1

한 남학생이 시험을 본 후 면담을 신청했다. “혼자서 공부하니 몰입할 수가 없고 제가 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 학생은 친구도 없는 듯했다. 이 친구에게 어떻게든지 친구들을 사귀면서 함께 공부를 해보라고 말해주었다.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는 먼저 다가가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해보고 싶은 일을 해보라고 했다. 지금이 더 기회일 수 있다. 그것이 취미일 수 있고 딴짓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때다.


작년에는 고생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해였다. 그중 엄마 된 입장으로는 오래도록 학교에 갈 수 없었던 학생들이 보기가 안타까웠다. 특히나 새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더욱 그렇다.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1학년 꼬맹이들은 여전히 유치원생 티를 못 벗어난 것 같고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들 또한 여전히 초등학생 같다고 엄마들은 얘기한다.


가장 기대하고 즐거워야 할 시절을 그렇게 아이들은 빼앗겼다. 컴퓨터 화면으로만 친구들을 볼 수 있었고 대면 수업이라고 해봐야 마스크로 친구들 얼굴도 온전히 보지도 못했다. 그 와중에 말 한마디 제대로 붙일 수나 있었을까.


학교에서 대면으로 방과 후 수업을 진행했던 가까운 지인의 말이 떠오른다. 초등 1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었다. 가방은 굳이 가져오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수업이었음에도 자기 덩치만 한 책가방을 꼭 메고 오는 아이가 있더란다. 학교 갈 일이 자주 없어서 그랬는지 아이는 새로 산 책가방을 꼬박꼬박 메고 왔단다. 아이 엄마 말로는 아이가 원하니 무거워도 그냥 놔뒀다고 했다는데, 안쓰러운 얘기다.


알고 보니 천재인 아인슈타인도 혼자서 이뤄낸 것이 아니었다. 그도 친구가 필요했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교류하지 않는 자는 고인 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주 업무 이외에 확실한 자기만의 취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에서 그 돌파구를 찾은 듯하다. 당신의 취미는 무엇인가? 직장인이든 학생이든 업무나 공부로 지칠 때 잠시 하던 것을 멈추고 자기만의 것으로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진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아무리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소통이 그리운 외로운 인간이다. 우리에겐 우정이 절실하다. 어서 빨리 우리 모두가 기다리는 일상으로 다시 가야 할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재잘거려야 하며 마스크 없이 운동장에서 뛰어놀아야 한다.


아직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지인의 딸은 컴퓨터에서 줌으로 반 친구들을 불러 모아 밤새도록 수다를 떨며 논다고 기막히다며 내게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난 좀 부러웠다. 그렇게라도 아이가 깔깔대며 소소하게나마 우정을 쌓고 있는 모습이 귀엽고도 대견하게 보였다.


물리적 거리는 여전히 떨어져야 하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의 거리는 다가가는 방법을 찾는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할 때이다.


싹둑 기사 2

패배를 마주하는 일은 굉장히 괴롭고 힘든 일이다. 그 패배를 인정하고 곱씹는 것 또한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자명한데, 사람은 매번 승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패배를 서랍에 깊이 넣어 감추는 것보다는 고통스럽게 하는 패배의 뾰족뾰족한 부분을 닳아 없어질 때까지 만져 매끌매끌하게 만들고, 이를 성공을 위해 보태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닐까.


신문 보는 것을 즐기는 이유 중 하나가 다양한 직군에 종사하고 있는 여러 사람의 글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선 첫 번째 기사에서는 물리학과 교수의 글을 빌어 아인슈타인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번 글은 변호사 자신의 생생한 영업 고백 글을 볼 수 있다.


아이에게 넓은 시야를 주고 싶어 여러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싶지만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실제 그 직종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의 살아있는 이야기는 직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에 평소 잘 접할 수 없는 직업인의 기사를 종종 아이에게 넌지시 내밀기도 한다.


법대는 가고 싶지만 그 많은 한자에 자신이 없어서 가지 않는다는 우스개 소리를 어릴 때 어떤 친구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법조계에서 한글은 그저 조사 수준으로만 끼어 넣는 것도 같아 보인다. 판사의 판결문을 들을 때마저도 당최 그래서 결론이 뭔지 못 알아들을 때도 있다. 한자어를 쉬운 말로 교체할 거라는 언론 보도를 본 것도 같은데 일반인이 알아듣기에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인다.


변호사의 글을 읽은 아이는 아니나 다를까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한다.


엄마, 패소가 무슨 말이에요?


가끔 이렇게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한자를 집중해서 제대로 아이에게 가르친 적은 없지만 설마 이런 단어도 아직까지도르나 싶어 한숨이 나왔다.


근데 생각해보자면 나도 한참 크고 나서야 제대로 뜻을 알게 된 단어가 많았던 것 같다. 학생 때는 뜻도 모르면서 무작정 학습을 위한 암기만을 했었는데 나이가 드니 자연스럽게 의미 파악이 쉬어짐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심지어 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칠 때도 그제야 수학 용어를 이해하게 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아, 이게 진정한 개념 이해로구나'하면서 수포자의 지난했던 과거가 씁쓸해졌다. 국어를 잘해야 수학도 영어도 잘한다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나이는 그래도 허투루 먹는 건 아닌 건지 그 사이 아무래도 배경지식도 많아지고 어휘도 확장되어서 그럴 거다. 물론 나이만 먹는다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평소 꾸준히 읽고 쓰는 습관이 제반되어야 더 용이해지리라.


당장 직접적으로 단어 뜻을 모른다 해도 글의 앞뒤 문맥을 파악하면 아이도 대충은 뜻을 파악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러나 패소라는 고충으로 변호인으로서 한 단계 나은 자세를 여기 변호사도 획득했듯이 아이들도 그렇게 좌충우돌 배우며 느리지만 천천히 어느새 라나 있을 것이다.



싹둑 기사 3

오늘날 러시아와 동유럽까지 정복하였던 몽골이 고려, 특히 강화도를 정복하지 못한 이유는 뭘까요?

첫째,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강화도는 천연의 요새였습니다. 거기에다가 강화 천도 이후 개성, 서울, 경기 광주 지역의 주민을 이주시키고, 군대를 이용해 방어시설을 구축했습니다. 궁궐을 짓고 그 주위에 약 2km의 성벽을 건설하고, 해안가에는 외성을 쌓았습니다. 1250년경에는 궁성과 외성 사이에 중성을 건설했습니다. 몽골이 강화를 공격하려면 우선 갯벌을 통과하고 빠른 물살의 염하를 건너야 하며, 그 이후에도 3개의 성벽을 뚫어야 했습니다.

둘째, 고려는 장기전에 대비해 강화도에서 대규모의 간척사업을 벌였습니다. 육지에서 피란 온 주민들을 동원해 대규모의 방조제를 만들고, 방조제 안의 갯벌을 농지로 만들었습니다. 또 조운제도를 이용해 삼남 지방에서 조세를 계속 거두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장기전에 필요한 물자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조건입니다.

그래도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몽골이 여러 전쟁을 동시에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몽골의 주된 공격 목표는 남송과 서아시아 지역이었고, 고려는 상대적으로 주요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복당하지 않은 측면도 있습니다.


강화도라는 섬은 참 매력적인 곳이다.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역사의 부침이 많았던 곳이기도 하다. 서울이랑 가깝기도 해 나들이나 역사 여행으로 손색없는 곳이다.


기사로 강화도 역사를 다시 접하니 그곳이 좀 더 역사적으로 각인될 수 있게 여행 인프라를 더욱 다채롭게 개발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충분히 볼거리가 많은 곳이긴 하지만 우리 역사가 내재되어 있는 의미 있는 장소로써의 이미지로는 아직 약한 면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 역사는 왜 그리 어렵고 재미가 없었을까? 중요 사건이 있는 연도를 외어야 할 때는 아직까지도 숫자를 오래 기억 못 하는 내겐 참으로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어린 시절 TV에서 유행하던 사극 드라마는 그렇게 빼놓지 않고 재밌게 봤음에도 아쉽게도 학습으로까지는 연결되지 못했다.


수업시간에 칠판에만 빼곡히 판서하며 수업하는 역사시간은 참 지루하기만 했다. 탁월한 이야기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우리 역사에 자부심을 가지고 배울 수 있게 한 선생님을 공립 중고등학교 시절 단 한 분도 만날 수 없었다는 건 내게만 유난히 선생님 복이 없었던 것일까.


또 이런 생각도 해본다. 학문이라는 것이 아는 만큼 보인다고, 크고 나서는 역사 관련 영화를 보면 그 배경이 더욱 궁금해지고 그러면 또 찾아보기도 하고 영화 한 편으로 더 확장된 공부를 자발적으로 하게 된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좀 더 재미있게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무래도 입시라는 궁극적 목표에 매몰되어 학문의 즐거움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궁금하여 찾아가며 하는 깊이 있는 공부가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 한참 후에나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예전과 하등 다를 바 없는 학교라는 획일적 시스템이 얼마나 시간 낭비이며 무용지물인지 생각하게도 한다. 학교는 기본적인 방향만 제시하고 아이들이 원하고 배우고 싶은 것을 탐구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요즘 시대에는 배울 수 있는 플랫폼이 차고 넘친다. 이제는 게으름이 배움의 유일한 원흉일 뿐이다. 맘만 먹으면 우리 집 책상 컴퓨터에서 세계 유수의 자료를 접할 수 있다. 이처럼 학문에 시간과 장소의 벽이 허물어진 시대에 우리 아이들 교육에도 예전 우리가 배운 것과는 콘텐츠면에서나 전달자의 자질도 이제는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따뜻한 봄이 오면 알록달록 빼곡하게 달려있는 연등이 인상적인 전등사가 언제나 떠오른다. 강화도는 서울과 멀지 않은 곳이라는 이유로 어릴 때는 친구랑도 많이 놀러 갔었고, 가정을 꾸리고도 아이와 함께 가족 여행으로 오기에도 여전히 멋진 곳이다.


마지막으로 강화도를 방문했던 것은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나왔던 루트대로 따라갔던 2년 전 일이다. 추웠지만 눈이 소복이 쌓인 한옥 성당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하늘도 그날은 유난히 파래서 눈밭에서 서로 인생 샷을 얻겠다고 아이들은 점프샷을 얼마나 찍어댔던지.


그때는 겨울이었지만 이제 돌아오는 봄에 전등사를 꼭 다시 가고 싶다. 그리고 예쁜 연등 아래에서 다시 한번 그때보다 키가 많이 큰 아이들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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