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일이 모두 사소한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니잖아요?

by 윌버와 샬롯

싹둑 기사 1

앞으로의 교육은 AI를 잘 알고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AI를 이용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려는 세계관을 가지는 역량을 키우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소소하지만 일상적인 실천이 환경 문제와 기후위기로부터 우리와 지구를 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AI를 넘어서는 성찰적 행위자입니다.


AI,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닌 현재 진행의 언어가 됐다. 예상치 못한 팬데믹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는 의도치 않게도 생각보다 빨리 AI 시대를 만나고 있다.


새로운 현상에 직면하게 되면서 미래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말들이 많다. 앞으로 어떤 인재상이 필요한지에 관한 논의 또한 활발하다. 코딩 교육을 하느냐 마느냐에서부터도 전문가 의견이 제각각이다. 가보지 않은 길이니 정답은 없다. 그러나 정답은 모를지라도 적어도 변치 않는 명제 정도는 존재하는 건 아닐까.


위 기사에서 눈에 띄는 단어 하나가 보인다.


"성찰적 행위자"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성찰적 행위자’는 구조적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능력을 잠재하고 있는 사람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알고 실천하여 변화시키는 자. 이런 성찰적 행위자는 미래 사회에서만 필요한 인재상은 아닌 것 같다. 혼돈스러운 현시점에도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닐까. 성찰만 해서는 안된다. 실천하는 행위가 분명 있어야 사회는 조금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 것이다.


지난달부터 우리 아파트에서도 투명 페트병을 따로 분리 배출하고 있다. 페트병에 대해 약간은 더 효율적 재활용이 용이해지는 건 아닌지 반갑기도 하다.


우리 집 재활용품 분리하는 모습도 조금 바뀌었다. 다 쓴 플라스틱 용기는 예전보다 더 깨끗하게 씻어 버린다. 용기에 붙어 있는 라벨도 사용한 사람이 떼어내 분리한다. 택배 상자에 붙은 테이프나 송장도 철저히 떼어낸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번거롭다. 남편은 귀찮음에 가끔 투덜거리기도 한다.


우리가 이런다고 뭐가 달라져?


달라진다고 믿는다. 내 주위에는 지구 환경을 걱정하는 이가 그래도 제법 있다. 일부러 일회용품은 쓰지 않고, 외출할 때마다 장바구니를 지니고 나오는 건 이젠 보통 일이며, 세제도 친환경으로 쓰고, 비닐 한 장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재활용하려 노력한다. 일회용 쓰레기 때문에 아예 배달 음식도 시켜 먹지 않는 사람도 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당연히 당장의 큰 변화는 기대할 수 없다. 애초부터 환경에 유해한 원재료를 생산하는 기업으로부터 국가는 비싼 환경세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인도 있다. 이제는 물건을 생산하는 주체로서 기업 인식이 변화해야 할 절실한 시점이다. 성찰하며 비판할 줄 아는 개인과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가진 기업이 만나야 진정한 변화가 이뤄질 것이다.


작은 초콜릿 하나를 사더라도 한 번쯤은 공정무역에 관해 생각하고 구매하는 사람, 페트병 하나를 버릴 때도 지구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 그렇게 우리 아이들이 성찰적 행위자가 되길 바란다. 이런 사고를 가지기만 한다면 어떤 시대가 도래한다 하더라도 우리 아이들은 마땅히 잘 살아내 않을까.



싹둑 기사 2

사람들은 저마다 소중한 것을 잃고 비통하게 울지만, 크게 보면 그것이 “밤 한 톨을 잃고 우는 어린아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말고 더 크고 더 넓게 세상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


사소한 것에 쉽게 분개하는 편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그 순간은 세상이 끝난 것인 양 수선을 떤 모양새다. 이런 조급한 성격을 고치고 싶었다. 감정 기복이 들쭉날쭉하지 않고 호수처럼 잔잔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나 천성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고치려 노력해도 불쑥하고 예전 버릇이 나오기 일쑤다.


새해에는 이런 조급함을 '밤 한 톨에 우는 아이'에 빗대어 감정을 조절해 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봤다. 욱하고 성이 날 때마다 '겨우 밤 한 톨이야, 괜찮을 거야, 별 일 아니야'라고 마음을 다져나 볼까.


여기 다산 정약용처럼 작은 것에 얽매이지 말고 크게 생각해보자고 얘기하니 듣고 있던 아이는 대뜸 이렇게 반문한다.


엄마, 그렇다고 세상 일이 모두 사소한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니잖아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귀양살이를 18년이나 한 다산의 이야기일지라도 아이는 기막힌 세상 뉴스를 이미 많이 봐와서 그런지 이렇게 반기를 든다. '그러게, 우리에게는 기함하고 분개할 만한 일이 여전히 많이 일어나긴 하지' 속으로는 아이 말에 그렇게 수긍하면서도 거시적 안목이 한참이나 부족한 엄마는 아이 말에 그저 얼버무리고 말았다.


다만 이것만은 아이가 알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너희들이 살아갈 시대는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 엄마는 잘 모르지만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다산이 말한 오늘 이 한 구절을 그래도 기억했으면 하는 엄마 마음은 알아주길. 너희는 엄마보다는 세상을 조금은 더 너그럽고 포용하며 살아가 주길. 그럼에도 도저히 밤 한 톨이 아닌 이해하지 못할 일에는 소리도 내지를 줄 아는 뜨거운 사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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