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바라는 대로, 윤석남

: 나, 화가가 되고 싶어!

by 윌버와 샬롯

왜 난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화가 나혜석이 연상됐을까? '윤석남'이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예스러움으로 전 세대의 화가 나혜석이 떠오른 걸까?


나혜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다. 그녀는 우리나라 '최초'라는 여러 이름을 가졌음에도 그림보다 사생활이 더 세간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시대를 앞질렀던 나혜석의 삶은 지금 봐도 놀랍지만 비참하고 쓸쓸한 죽음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러나 이 그림책 주인공은 그렇지 않다. 나혜석의 끝은 슬프지만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윤석남의 예술은 힘차게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셋째 딸은 자라고 자라......
내가 되었어요.


"남동생이 태어났단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구나.
딸아, 너도 좋지?"


남아선호 사상의 끝을 보여줬던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후남'이라는 이름은 아들을 바라는 시대적 작명의 전형이다. 그건 비단 드라마 속 얘기만이 아니었다. 아들을 바랐지만 셋째 딸로 태어난 윤석남은 위로도 언니가 둘이나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시대 분위기는 윤석남도 그런 속내로 이름이 지어졌다. 신기하게도 후에 그녀는 남동생 셋을 보게 된다.


내 마음이 바라는 건 고작 이런 거랍니다. 그네 타고 하늘에 닿기,
학교 가는 길에 목화송이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기,
한동안은 아빠 서재에서 하루 종일 틀어박혀 책만 읽었답니다.


언니는 자라고 자라 공부 잘하고 예쁜 아이가 되었고,
남동생은 자라고 자라 공부 잘하고 착한 아이가 되었어요.

나는 자라고 자라 마음 가는 대로 사는 아이가 되었고요.
마음대로 사는 아이니까, 참 걱정된다고요?
걱정 마세요.
내 마음은 그리 고약한 녀석이 아니니까요.


윤석남은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밖에서 뛰어 놀기를 좋아했다. 학교에 지각해도, 엄마한테 걱정을 들어도 자연을 들여다보기를 좋아하는 호기심 많은 소녀였다. 책 속에 아주 멋진 세상이 있다는 것도 아버지 서재에서 발견할 줄 아는 아이였다.


나, 화가가 되고 싶어!


뛰어놀고 책에 빠지던 아이는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무언지 어느 날 깨닫게 된다. 그건 바로 그림. 성공하든 못하든 무작정 하고 싶다는 열망. 그렇게 소녀에겐 화가라는 꿈이 생긴다. 그러나 삶이란 게 그렇게 호락호락하던가. 자유로이 마음대로 살던 아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마음이 바라는 대로 살 수 없어요.
마음이 아무리 바라도 화가가 되기 위해 미술을 공부할 수 없어요.
마음이 아무리 바라도 지긋지긋한 회사를 그만둘 수 없어요.


홀로 여섯 아이를 키우며 고생하시는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그녀는 외면할 수 없었다. 그 시절 우리네 여성들의 삶이 그랬듯 자기 대신 남자 동생들을 먼저 대학에 보내야 했고 집안을 돌봐야 했다. 윤석남 역시 화가라는 꿈은 사치였고 돈을 벌어야 했다.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글은 쓸 수 있었기에 그녀는 작가라는 또 다른 꿈을 꾸기도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청년과 28살에 결혼을 하고 딸도 낳는다. 아내, 며느리, 엄마로서의 삶. 살림은 넉넉해졌고 생활은 안정되었다. 이제 그녀는 행복해졌을까?


딸아이는 자라고 또 자랐고,
집은 커지고 또 커졌어요.

그런데 이상해요.
왜 나는 그대로죠?
아니 왜 나는 점점 작아지고 또 작아지는 거죠?


작은 점이 되어
이대로 사라지고 말 것 같아.


윤석남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오래도록 깊이 묻어있던 마음속 그 소리를 말이다. 마음이 바라는 대로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마흔 살 전후에 그녀는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녀의 테마는 엄마였다. 어머니와 주변 아주머니를 그렸고, 시대의 여성을 표현했다.


'왜 나는 엄마처럼 남편과 자식을 위해 사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그리고 답은 찾았습니다.

엄마들에게는 남을 보살피고 싶은 사랑이 있었습니다.
윤석남은 자기에게도 그런 사랑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엄마들은 그 사랑으로 자식을 보살핀다면, 자기는 자식뿐 아니라 온 세상을 보살피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바로 그림으로요.
윤석남은 무엇보다 그림으로 수많은 여자들을 보살피고 싶었습니다.


윤석남의 이 말은 육아에 지쳐있는 나를 다시 긍정하게 했다. 여느 엄마들처럼 헌신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윤석남이 자신만의 그림을 그렸듯 나는 나만의 글을 쓸 거라고.


늙어 죽을 때까지 남편과 자식만을 바라보며 사는 어머니들이 있다. 가족을 뒷바라지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사는 인생. 그것이 세상의 전부.


나의 엄마도 그렇게 사셨고 이제 좀 편해지려 할 때 병이 났고 돌아가셨다. 엄마를 다시 만난다면 난 엄마에게 꼭 묻고 싶은 게 있다. 그렇게 사는 동안 행복하셨냐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항상 박했던 삶에 후회는 없느냐고. 힘들었지만 너희들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는 대답을 듣는다면 난 그나마 휴우 안도할 것 같다. 엄마도 자식을 보살피는 사랑으로 행복한 사람이었기를. 그러나 두렵다. 후회하고 아팠던 짧은 삶이었다고 엄마가 내게 말한다면 슬플 것 같다. 스스로를 위해 사는 엄마 모습의 기억이 내게 단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누구의 아내이자 엄마이며 며느리이기도 한 나도 화가 윤석남의 역할과 삶에 대한 고민이 낯설지 않다. 점처럼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 나라고 왜 없었을까. 다행히도 윤석남은 그림에서 그 답을 찾는다. 누구는 남편과 자식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고, 어떤 이는 글을 쓰며 찾기도 할 것이고, 또 다른 이는 꽃을 키우며 얻기도 할 것이다. 뭐든 괜찮다. 그 순간 진정 행복하다면!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윤석남은 여든 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자연과 여성을 주제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시대의 편견에 외롭게 맞섰던 나혜석이 이 시대의 윤석남을 본다면 어땠을까?



나혜석과 윤석남은 페미니스트 1세대 화가라는 비슷한 타이틀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 두 멋진 여성이 손을 맞잡은 모습이 내 눈에 그려진다. 둘은 따스한 미소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그리고 숨죽이던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우리에게 손짓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같은 꿈을 지녔던 두 화가는 그렇게 우리에게 의미로운 역사로 남는다.


이미지 출처 :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