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연애 20년 결혼, 당신은 여전히 행복해?

: 개구리 왕자 그 뒷이야기

by 윌버와 샬롯

"당신, 핸드폰 보느라 내비 길 잘못 든 거지?"

". 원래 이 길로 가려고 했어."

"운전할 때는 폰 보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 위험하다고! 길 잘못 들어서서 도착 예상시간도 많이 늘어났잖아."

"그럼 당신이 운전하든가."

"지금 그 말, 운전 못하는 나 비꼬는 거야?"


"두 분, 이제 그만들 하세요."


차 뒷자리에서 핸드폰 게임을 하던 중학생 아들은 시끄러웠는지 부모에게 일침을 가한다. 자식들 다 키우고 손주까지 본 나이가 됐음에도 요즘도 종종 싸운다는 친정오빠 부부 얘기를 들을 때는 좀 우스웠다. 그 나이가 되면 부부간에도 평화가 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하면서. 그러나 웬걸, 결혼 20주년 나들이를 가는 길에서마저 우리 부부는 티격태격이다. 아, 이 지리멸렬함이여. 강산이 두 번 바뀐다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우리는 아직도 이러고 다.


어느 추웠던 크리스마스이브에 우리는 처음 만났고 그다음 날 신촌 거리를 같이 거닐었다. 연애의 희로애락을 겪으며 어찌어찌 3년 동안 만났고 최종 단계인 결혼에 골인했다. 올해 수능 시험일에 우리 부부는 결혼 20주년을 맞았다. 지구라는 별에는 78억여 명의 사람들이 산다는데 어찌 그 수많은 사람 중에 무슨 조화로 난 하필 이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됐을까. 우연의 우연이 모여 인연이 된 건가. 그렇게 우리는 아이 둘을 낳고 여전히 함께 살고 있다.

공주는 개구리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래서 둘이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남자 여자가 만나는 모든 동화책은 이렇게 끝난다. 이런 새빨간 거짓말이 문제다. 그릇된 동화책 속 조기교육은 결혼에 대한 환상을 꿈꾸게 하고 불행의 씨앗을 낳는다. 영원한 행복이라니. 결코 염세주의자는 아니지만 영원한 행복은 인간의 순진한 꿈일 뿐 닿을 수 없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왕자와 공주는 너무나도 불행했습니다. 둘은 어찌해야 할 지를 몰랐습니다.


원작 '개구리 왕자'에서 공주는 원래부터 개구리 왕자를 사랑했던 적이 없다. 금으로 만든 공을 기지고 놀다가 연못에 빠뜨리자 개구리가 공을 꺼내 주는 것으로 그 인연이 시작됐다. 도움을 주는 조건으로 내건 개구리 소원을 공주는 마지못해 들어준다. 동화책 결말은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개구리의 무리한 요구로 공주는 분노가 폭발에 벽에 개구리를 집어던지자 왕자로 변했다는 것과 공주가 개구리에게 입맞춤을 해 마법이 풀린다는 얘기가 그것이다. 과정이 어떻든 공주는 그저 마법이 풀린 왕자만을 사랑했다. 왕자라는 배경만이 공주에게는 의미 있는 결혼 조건이었던 거다. 그러니 이후의 불행한 결혼 생활은 당연한 수순 아니겠는가. 허우대만 변했을 뿐 개구리 속성은 그대로였으니까.


왕자는 밖으로 나가서 뭘 무찌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과 개성은 처음엔 남녀에게 매력 요소로 다가온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라는 환상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에 배어있던 기존의 가치관을 인간은 쉽게 바꾸지 못한다. 각자 살아왔던 서로 다른 태도는 일상으로 침투하고 사사건건 부딪히는 요소로 탈바꿈한다. 꽁꽁 묶어있어 결코 풀 수 없을 것만 같은 매듭처럼 말이다. 호기심과 동경은 서서히 불만의 이유가 된다.


"차라리 당신이 개구리로 그대로 있는 편이, 우리한테 더 좋았을 거야."

바로 그 순간 왕자에게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어요.
"개구리로 그대로... 그래! 바로 그거야!"


살다 보면 개구리 왕자처럼 혹은 "나 다시 돌아갈래!" 절규하던 영화 '박하사탕' 설경구처럼 생각이 드는 때도 있지 않은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이 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러나 그럴 때마다 예전 직장 선배의 자조 섞인 인생 조언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야." 정말 그럴까?


왕자는 숲속으로 달려갔습니다. 자기를 도로 개구리로 만들어 줄 마녀를 찾아서요.


자기를 좀 원래대로 바꿔달라고 개구리 왕자는 여러 마녀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내 안에서가 아닌 밖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동분서주한다. 마침내 잃고 나서야 때늦은 후회와 소중함을 깨닫는다.


아아, 난 정말 바보였어.
집에서 공주하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었는데.


남편이 미울 때 나는 아주 가끔 나쁜 상상을 한다. 이 사람이 아프다면... 이 사람이 지금 내게 없다면... 그때의 내 감정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러면 무조건 후회할 거라는 결론에 른다. 매우 화가 나는 상황이더라도 남편의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화를 조금은 희석시켜 평정심을 찾게 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잔소리할 때는 언제고 집에 늦게 돌아온 개구리 왕자에게 걱정의 말을 늘어놓는 공주가 그래서 낯설지 않다.


왕자는 공주를 찬찬히 바라보았습니다.
공주는 이 세상 누구도 자기를 믿어 주지 않았을 때,
자기를 믿어 준 사람이었습니다.


개구리 왕자는 우여곡절 끝에 초심으로 돌아간다. 잊고 있던 공주와의 사랑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공주에게 먼저 입맞춤을 한다. 사랑을 표현한 순간 둘은 다시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이 그림책도 역시 해피엔딩!


땅에 바늘을 꽂고
하늘에서 작은 씨앗을 떨어뜨려
바늘에 씨앗이 꽂힐 확률,
이 계산도 안 되는 확률로
너와 내가 만난 것이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나오는 대사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확률, 어찌 이와 같은 대단한 만남을 운명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니 지리멸렬하더라도 서로를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20대의 여자와 남자가 만났다. 혼자였던 여자는 둘이 되었고 스스로 일구는 행복한 가정을 꿈꿨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개구리 왕자의 공주처럼 여자는 남자의 여전한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종종 잠을 설친다. 서로의 얼굴보다 등을 맞대고 자는 날이 이제는 더 많지만 한 이불을 덮고 자긴 한다. 남자는 가끔 싱거운 아재 개그로 식구들을 어이없게 하지만 그 개그를 결코 포기하진 않는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가장 먼저 일어나 나가고 가장 늦게 집에 들어온다. 퇴근길에는 종종 저녁까지 책임질 요량으로 두 손 가득히 먹을거리가 들려있다. 어디에서 맛있는 것이 생기면 먹지 않고 집에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와 식탁에 펼쳐놓는 어미새의 습성을 종종 보이기도 한다. 습관 때문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며 주말에도 가장 먼저 일어나 아빠표 특식 아침을 차려준다. 어디 좀 데려달라 하면 가끔 귀찮아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운전하여 데려다준다. 여자가 만지면 안 되던 것이 맥가이버 남자가 만지면 마법같이 해결될 때가 많다. 여자의 생일에 대단한 선물을 주는 날은 드물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에 미역국은 끓여준다. 가족에게 좋은 곳을 보여주고 좋은 것을 먹이기 위해 애쓴다.


그놈이 그놈이 아니라, 이 남자는 이 여자에게 유일하다. 어떤 남자가 이 고집불통 여자를 그렇게 참아낼 수 있었겠는가.


원칙주의 여자와 낙천주의 남자는 서로가 달라서 좋았지만 지금은 달라서 싫을 때가 많아졌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여자와 남자는 덜 싸운다. 사춘기 자녀로 인해 남자와 여자는 전우애로 똘똘 뭉친 동지가 다 됐다. 불만의 대상이 배우자에서 자식들로 넘어간 것이다. 성년이 될 때까지 아이들을 키우고 나면 다시 여자와 남자는 서로에게 으르렁댈까? 그래도 그때가 좀 기대된다. 부모라는 책임감을 훌훌 털고 둘이서 캠핑카를 끌고 전국일주나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 그때도 여자는 남자 옆에서 내비를 보며 종알종알 댈 것이다. 남자는 그러면 또 조용하라며 투덜댈 테지. 그렇게 둘은 변함없이 시끄럽겠지만 그래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울퉁불퉁한 길일지라도 함께 가게 되지 않을까.


"이번엔 두 분만 같이 다정하게 서보세요. 이걸로 화해하는 거예요"


연신 아이들만 찍어대던 부모에게 여드름 투성 아들이 말한다. 멀찍이 서서 아들 딸은 엄마 아빠 사진을 찍어준다.


이번 결혼 20주년은 팬데믹으로 소박하게 보냈지만 30주년 때는 예전 신혼여행 갔던 곳으로 다시 여행 가고 싶다. 눈부셨던 남자와 여자의 젊음을 다시 기억하고 추억하기 위해! 이렇게 우리는 아직도 지지고 볶으며 살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