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점의 역습

: 토끼 뻥튀기

by 윌버와 샬롯

나는 사회성이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아.

나는 작은 일에도 너무 예민해.

내 첫인상은 남에게 편안할까?

난 전문가도 아닌데.


요즘 자꾸 떠오르는 생각이다. 부족한 나를 수시로 소환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어 최근 나름의 큰 결정을 내렸다. 조만간 일상의 큰 변화가 있을 터이다. 결정을 하자마자 든 생각은 불안과 두려움. 몇 날 며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공포영화를 본 것처럼 정말 무서움에 떨었다.


누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니고 스스로 뛰어든 것인데도 주변 모든 것이 나를 기만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핑크빛 미래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시작부터 이렇게까지 불안해할지 미처 몰랐다. 급기야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라는 일이었지만 내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을까. 내 일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과연 말처럼 할 수 있을까. 여러 의구심이 머릿속에서 마구 쏟아졌다.


쯧쯧, 넌 왜 그렇게 키가 작고 다리가 짧으니?
덩치도 작은 녀석이 감히 어른 앞길을 가로막아?
고놈 참 귀엽게 생겼군. 우리 아들한테 장난감으로 줘야지!


그림책은 어느 때에 보느냐에 따라 그 감정이 달라진다. 현시점으로 그림책은 불현듯 내게 다가온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 원래 그것이 아니었더라도 독자는 그 순간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마음으로 그림책을 바라보게 된다. 상관없다. 독자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다는 것 자체로 그림책의 존재는 충분하니까.


토끼는 덩치가 작았어요.
작아서 억울한 일도 많았지요.


여기 그림책 속 토끼를 보면서 보이지 않는 스스로의 장벽으로부터 이리저리 치이는 나 자신이 투영됐다. 작은 토끼를 놀리며 괴롭히는 다른 동물들은 나를 좋은 먹잇감으로 여기는 주변 사람들을 떠오르게 했다. 과도한 걱정일 수 있다. 그러나 자꾸 최악의 상황만 떠오른다. 어찌 이리 억울한 생각만 들게 되었을까. 원래 난 이렇게 나약한 사람이던가. 아이만 키우며 산 세월이 참으로 오래되어 토끼처럼 난 점점 작아진 걸까. 인정하기 싫지만 우물 안 속 개구리가 된 것 같았다. 작아진 나를 확인하는 건 비참하다. 자격지심은 끝도 없었다.


문제는 누구의 탓도 아니었고 내 안에 있다는 걸 직시해야 했다. 작아졌지만 책임은 져야 한다.


차라리 어디론가 멀리 떠나 버릴래.


그 모든 게 싫어져 그림책 속 토끼는 산에서 내려온다. 나도 내가 내린 결정을 몇 번이고 번복하고 싶었다. 그러면 그 모든 불안과 고민들이 싹 사라질 것만 같았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내 주제에 현명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결국 그런 나에게 또다시 실망하겠지. 그렇다 한들 내가 나를 실망하면 좀 어떤가. 그래, 엎어버리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러쿵저러쿵 여러 핑계를 대며 평생을 살게 될까 봐 두려웠다. 언제부턴가 난 주변에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이러이러한 걸 계획 중에 있어." 평소 확실한 사실이 아니라면 사적인 얘기는 잘 안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엔 입을 가볍게 했다. 스스로 던진 말에 책임을 지게 하려고. 어쩌면 그 말이 부메랑이 되어 내게 다시 돌아와 진짜 이루어질지도 모를까 봐. 그러나 역시 난 곧 후회했다. 어쩌자고 시작도 안 한 일을 쉽게 얘기했을까.


그때 어디선가 '뻥!'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사람 사는 마을로 내려온 토끼는 뻥튀기 기계를 발견한다. 그 속에 있다 나온 것들이 뻥! 하고 크기가 커지는 걸 보고 토끼는 그 기계로 뛰어든다. 그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면서. 거기는 어지럽고 뜨거울 거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토끼는 뻥튀기 기계로 들어갔을까. 그럼에도 아마 토끼는 그 불구덩이로 들어갔을 것 같다. 주변 멸시로 어떤 고통도 감수할 만큼 토끼는 절실했었을 테니까.


나도 그 불구덩이로 입장했다. 토끼처럼 괴상하게 변하게 될지 모르겠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어느 정도 예상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동안 갈망했던 것을 해보려 한다. 내 결정에 지지하지도 만류하지도 않던 남편은 마지막에 내게 말했다. "경험을 해본다는 건 좋은 거야. 혹여 실패한다 하더라도 당신이 크게 낙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여태 큰 반응이 없었던 남편이다. 그러나 그의 말에 난 왈칵 눈물이 났다. 그리고 진심으로 위로가 됐다.


우하하하, 나도 이제 덩치가 커졌다.
날 깔보고 괴롭히던 녀석들, 어디 두고 보자.


거인 토끼는 자기가 받은 만큼 숲 속 친구들에게 똑같이 되갚아준다. 더 이상 토끼는 두려울 게 없었지만 쓸쓸하고 외로워지기 시작했다. 덩치가 커졌다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작지만 귀여웠던 토끼는 뻥튀기 기계로 들어간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거인 토끼는 가끔 거울을 보며 예전 같지 않은 자기 얼굴에 잠깐 후회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결 평화로워진 그 이후의 일상에 더 만족하지 않았을까. 상처 없는 대가를 세상은 쉽게 쥐어주지 않는 법이다.


괴물이 될지언정 더 이상 무서워 말자. 누구의 책 제목처럼 이러다 잘 될지도 모르니까. 실패하더라도 난 분명 괜찮을 거니까.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젠 쇼타임. 한번 신나게 놀아보자.


이미지 출처 :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