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냄새라는 사치

: 계절의 냄새

by 윌버와 샬롯
내가 모은 계절의 냄새를 맡아 봐.
수줍었고, 알싸했고, 바스락거렸으며, 포근했던 냄새들.
우리가 함께했던 추억이 모두 여기에 있어.


작가는 계절과 냄새로 기억에 관한 그림책을 만들었다. 아이와의 따뜻했던 시간을 붙잡고 싶었나 보다. 유리병에 하나하나 그 추억을 담았다. 작가는 그림책으로 그 기억들을 봉인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2년 간 우리에겐 추억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금방 끝날 것 같던 팬데믹 상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기억하며 남기고 싶은 추억들이 우리에게 남아있기나 할까. 모든 것이 바뀌었다. 2년 전 일상 기억은 이제 희미하기만 하다.

냄새를 모았다고? 응. 계절의 냄새.


아이는 모처럼 친구들과 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간다고 했지만 엄마는 허락하지 않았다. 친구들이랑 논다고 하면 언제나 일순위로 반겼지만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사적으로 친구랑 만나서 무엇을 한다고 하면 엄마는 불안함이 먼저 엄습했다. 어지간하면 수업이 끝나고 바로 집으로 왔으면 했다.


봄에는 어떤 냄새를 모았니?


봄이 되고 꽃이 피면 다정한 지인들과 가까운 곳으로 소풍을 갔다. 꽃을 핑계로 사람들을 만났고 맛있는 것을 나눠먹었다. 금방 사라질 것 같은 계절의 그 이쁜 것들을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 기어이 밖으로 데리고 나갔었다. 아이 학교에서 소풍을 가는 날이면 새벽부터 김밥을 쌌다. 솜씨는 어설퍼도 정성을 다했다. 옆구리가 터진 김밥은 아이를 보내고 친한 이웃들을 집으로 불러 같이 먹었다. 각자의 김밥을 품평하며 아침부터 부지런을 떤 서로의 노고를 치하했다.


수줍은 봄의 냄새야.


새 학기가 되면 아이도 설레지만 엄마도 그렇다. 내 아이와 같은 반이 된 친구가 누구인지, 어떤 분이 담임선생님인지 엄마도 궁금한 게 투성이다. 같은 반이 되었다는 하나의 사실만으로 몰랐던 타인은 하루아침에 내 스마트폰 안으로 입장한다. 인사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한다. 그중 대다수는 네모난 대화창에서만 존재하는 이로 남을 것이다. 해가 지나면 그들은 다시 사라진다. 운이 좋다면 한두 명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는 소풍도 졸업여행도 못 갔다. 졸업앨범도 여느 해와 다르게 간소하게 찍어야 했다. 학기초만 되면 불이 나던 대화창은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계절마다의 추억. 남은 것이라곤 아쉽게도 2년 간의 전염병에 대한 공포뿐이다. 이제는 좀 달라지겠지 하는 희망이 다시 수포로 돌아가는 실망감도 더해진다. 최선을 다했지만 닿을 수 없는 신기루만을 쫓는 기분이다. 지쳤다. 어떤 것이 최선인 건지 이제는 판단하기조차 어렵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어떤 것이 진실인지도 모르겠다.


남기고 싶은 추억은 아닐지라도 이 모든 순간들은 빼곡하게 유리병 안에 저장될 것이다. 음성/양성, 접종자/미접종자처럼 사람을 이분법으로 나누며 숫자로 표시하는 세상을 유리병은 기억할 것이다.


꿈에서조차 점령당한 이 공포는 언제쯤 끝날까? 따스한 추억을 되새길 그 계절의 냄새들 다시 맡을 수나 있을까? 안 좋은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2년 간 겪은 지금의 현실은 결코 아름다운 옛일로 남을 것 같지는 않다.


어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당연한 것들을 되찾고 싶다. 일상으로의 복귀. 이 그림책을 보노라니 그 따스하고 평범했던 사치스러운 추억들이 너무나 그리워졌다.


끝나지 않는 깜깜한 터널 속 두 번째 겨울을 우리는 보내고 있다. 이 겨울이 지나고 다시 맞이할 우리들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어떤 향기를 전해줄까? 유리병 안에 모인 쓸쓸한 기억들이 머나먼 바다를 건너 건너 다시 우리에게 돌아와 그 뚜껑을 열어봤을 때 포근한 향을 선사하기를, 또 한 번 부질없는 기도를 해본다.


이미지 출처 :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