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막두에게

: 막두

by 윌버와 샬롯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뉴스를 보고 있었다. 11살 우크라이나 소년 혼자서 이웃 나라 슬로바키아로 피난 온 보도를 봤다. 슬로바키아는 소년의 집에서부터 약 1,126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소년은 1장의 비닐봉지와 여권, 그리고 자신의 손바닥에 전화번호를 적은 채 국경을 넘었다.


난 밥 먹던 숟가락을 놓아버렸다.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다. 남편은 아이 손에 적힌 전화번호가 지워지면 어떡하냐며 걱정했다. 다행히 아이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안전히 보호받을 수 있었고 엄마와도 연락이 닿았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하고 기차역에서 가족들만 떠나보내는 아빠들 모습을 뉴스에서 여러 번 보았다. 아이를 꼭 안으며 아빠는 눈물을 흘렸다. 엄마와 아이들만의 피난길.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면 나와 내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어린아이들은 아빠와 헤어져야 하는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까. 아니다. 어른이라 해서 납득이 되는 상황도 아니지 않은가. 민간인과 아이가 있는 병원에마저 공격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21세기 현재 일어나고 있다는 게 난 믿기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비단 남의 나라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영화 '국제시장'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불과 70여 년 전 바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가 전쟁을 었다. 그림책 속 막두 할매도 그중 사람이다.


막두 할매는 이곳에서 일합니다.
"아이고~, 당신보다 싱싱하요! 안 살라면 그냥 가이소, 마!"
"내 육십 년 가까이 장사한 사람이요. 거짓말 안 하요!"
"아이구마, 쏙은 시원타만 그래 불뚝스러워가지고 어디 장사하겠나?"
"도미 이거는 그냥 줄게, 소금 뿌려 가 꾸어 드리고."
"커피야! 니 바지 색깔 쥑인다."


왼팔은 허리에 척 걸치고 펄떡이는 생선 한 마리를 위풍당당 들고 있는 한 사람이 보인다. 그림책 표지의 막두 할매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안된다. 그래서 그런지 모진 세월의 풍파가 느껴지기도 한다.


생선 상태를 타박하는 손님에게 막두 할매는 움츠려 들지 않는다. 자신의 일에 당당하며 큰 소리를 칠 줄 안다. 그렇다고 마냥 불퉁스러운 장사치만은 아니다. 딱한 사정이 있는 손님에게는 따뜻한 말도 건네고 덤을 얹어주는 외유내강의 사람이다. 할매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스스럼이 없고 우스개 소리를 던지며 함께 웃음꽃을 피운다. 그래서 막두 할매 주변은 환하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살아내는 것. 할매에게서 궁색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런 막두 할매에게 어떤 지난한 삶의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할매는 이곳에서 울고 웃으며 60년을 보냈습니다.
"막두야, 잘 들어라이. 우리는 부산으로 간다. 혹시라도 헤어지게 되면 영도다리로 와야 한다. 알갔지?"
어디서부터 얼마나 걸었는지 모릅니다.
다리 위엔 막두처럼 가족을 찾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습니다.
그그그그그그!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다리가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막두는 피난길에 가족들과 헤어지게 됐다. 부산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던 엄마의 말을 잊지 않고 그곳으로 왔지만 가족을 찾을 수는 없었다. 겨우 열 살 때 일이다.


막두 할매가 살아온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졌다. 가족을 만날 거라는 희망을 안고 어린 막두는 하루하루 매일 영도다리에 왔을 것이다. 이제나저제나 다리 주변에서 가족을 찾았을 것이다. 영도다리 근처를 떠날 수 없어 자갈치시장에서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막두는 좋은 남자를 만났을까. 서로 삿대질하며 싸움이 벌어지는 험한 시장통에서 등에 아기를 업고도 꿋꿋이 젊은 막두는 생선 장사를 했다. 힘겨운 세월을 견디고 살림도 안정되었다. 집도 장만했고 반짝반짝 빛나는 귀한 자개장도 안방에 떡하니 들여놨다. 혈혈단신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자식들도 장성하고 모두 출가시켜 대가족을 일궜다. 장사를 마치고 집에 오면 이제는 혼자지만 앞머리에 구르프도 말 줄 아는 멋쟁이 할매다. 그녀는 티브이를 보며 효자손으로 등도 긁는 마음 편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방 안 가득한 가족사진은 그녀 삶에 대한 훈장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사셨을 분이 어디 막두 할매뿐이겠는가. 이산의 고통을 가늠할 수나 있을까. 세월이 지났다 해서 그 애통함이 무뎌지기나 할까.


오마니, 아바이, 대단하지요?
막두도 저만치로 대단하게 살았심더.

맞아요. 할매, 정말 대단해요.


나이 70이 넘어서도 가족을 만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못한 증거는 그녀의 옷에서부터 엿볼 수 있다. 막두 할매의 삶은 경이롭다. 그러나 가족과 헤어졌을 때 입었던 빨간 옷과 같은 색상을 시장에서 평생 입었을 막두 할매의 사연은 참 애달프기도 하다.


세상은 참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런데 그 변화라는 것이 꼭 발전만을 의미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반추할 수 있는 역사가 버젓이 있음에도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남편과는 사별하고 몸이 불편해 피난을 같이 떠날 수 없던 우크라이나 소년의 엄마 심정은 어땠을까. 아이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혼자 그 머나먼 길을 나라면 보낼 수 있었을까.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다.


푸틴은 이미 자신의 가족 스위스로 보냈다고 언론은 전한다. 처음에는 그냥 엄포로만 알았던 혹은 짧게 끝날 거라고 모두가 예상했던 전쟁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러시아는 언론과 SNS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 우크라이나인은 "우리가 뭐를 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 한국인에게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주변에 알리고 안부를 물어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같이 밥 먹고 TV 보는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일 수 있다. 헤어졌던 아빠 그리고 혼자 길을 떠났던 11살 소년이 어서 자기 집에서 무사히 족과 다시 만나길 기도한다. 마지막 장에 막두 할매가 입었던 노란 꽃무늬 바지처럼 내일은 이 세상이 조금은 더 밝아져 있기를.

이미지 출처 :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