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남편에게 벼룩시장이 열리니 팔 것이 있는지 살펴보라고 한다. 남자는 창고로 향하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한동안 잊고 있던 추억의 공간이었다. 어릴 적 갖고 놀던 물건이 아직까지 잔뜩 있는 걸 보니 남자는 아무래도 부모님이 살던 집을 물려받아 살고 있었나 보다. 이 사람은 새록새록 꿈속처럼 옛일을 떠오르게 하는 그 물건들을 과연 벼룩시장으로 들고 나올 수나 있을까.
이번 주말에 벼룩시장이 열린대요.
벼룩시장을 난 매우 좋아한다. 코로나 시국 이전에는 날이 좋은 계절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동네 공원이나 공터에서 벼룩시장이 열렸다. 무엇을 사지 않아도 그 공간을 둘러보는 건 보물찾기 하듯 힐링의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가끔은 직접 물건을 가지고 나와 돗자리 깔고 앉아 반나절 팔기도 해봤다. 몇 시간 앉아 있다 벌은 얼마 안 되는 푼돈으로 의기양양 돈 벌어 왔다며 가족에게 피자를 쏘는 호기도 부리기도 했었다.
안 쓰는 물건이라고?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네.
중고 물품을 사면 어떤 사람이 쓰던 물건인 줄 알고 들이느냐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한때는 나도 같은 생각이 들긴 했었다. 중고 제품에 맛을 들인 건 아무래도 아이를 키우고부터였다. 가까이 살던 친정오빠에게서 조카 옷을 물려받아 우리 쌍둥이를 키웠다. 아이 둘을 한꺼번에 키우는 상황에서는 소비에 있어서 최우선의 가치로 최저가나 가성비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맞벌이 올케언니가 물려주는 조카 옷들은 내가 사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이었다. 새 계절이 올 때쯤 올케언니가 한보따리씩 보내주는 게 그렇게 고맙고 반가웠다. 의류비 절감에서 뿐만이 아니라 제품의 질 문제를 떠나 쇼핑을 위한 시간과 에너지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뭐 하나를 사야 할 때마다 쇼핑몰 몇 바퀴를 돌고 돌아야 겨우 결심이 서는 결정 장애가 내겐 있기 때문이다. 최적의 쇼핑을 위한 발품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 말하긴 하지만 발바닥이 꽤 아픈 건 사실이다. 그러니 선택에 대한 불필요한 고민 없이 물려받은 깨끗하고 멀쩡한 옷이 어찌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예쁘기까지 하니 아이들에게 골라 입히는 재미도 꽤 쏠쏠했다.
앗! 이건 내가 어릴 적에 치던 북이잖아!
친정 언니가 아파트 앞에 버려진 것을 멀쩡하다면서 종종 집으로 가져올 때가 있었다. 그런 언니를 두고 형부가 타박하는 걸 여러 번 봤었다. 당시 외벌이에 아이 셋을 키우던 언니가 결혼 전의 나는 안쓰럽게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언니처럼 내가 그러고 산다.
"이걸 누군가 산다고?" 신기하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나로서는 더 이상 가치를 느끼지 못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중고마켓으로부터 알게 됐다. 쓸모가 없어져 책이나 옷을 고물상으로 팔러 가면 천덕꾸러기처럼 쓰레기 더미 속으로 던져지는 모습이 내 눈에는 그렇게나 밟혔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잠시라도 더 존재 의미를 찾아주는 것이 내게 조금은 위안이 됐을까.
중고마켓 거래는 결코 손쉬운 일은 아니다.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세척을 하고 사진을 찍고 상세 설명을 쓰고 느닷없는 문의에도 친절히 응대해야 한다. 그냥 아파트 재활용함에 넣으면 그만인 것을 이게 뭐라고 이런 귀찮음을 감당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필요한 사람에게 넘겨진다는 그 소소한 기쁨 또한 포기할 수 없었다.지구에 보탬이 되는 일을 했다는 약간의 자부심마저 느낄 정도다.
이건 안 돼. 이렇게 멋진 추억이 사라지게 둘 수는 없어.
직장 스트레스를 요즘 소비로 푸는 조카가 있다. 원래는 절약하며 사는 아이인데 소비로 허한 마음을 채우는 것 같았다. 대단히 과한 소비도 아니기에 잠깐 그러겠거니 하고 말리지는 않고 있다. 대신 혼자 사는 집이 정신없으니 정리 좀 하며 살라고, 요즘 트렌드가 미니멀리즘인 것도 모르냐며 잔소리를 하기는 했다. 그저께는 조카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 주위가 시끄러워 밖인가 보다 했는데, 조카는 “당근 하고 들어가는 길이야.” “뭐? 당근 샀다고?” 소리가 잘 안 들려 난 엉뚱한 대답을 했다. 조카는 만화책 한 질을 팔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중고마켓에 올리자마자 구매자가 나타나 너무 싸게 올린 게 아닌지 조금은 후회가 된다고 했다. 그 가격으로 올렸기 때문에 팔린 거니까 처분했다는 거에 의의를 두라고 난 말해줬다. 팔리는 재미를 알게 되면 그것도 중독되는데, 조카 집이 앞으로 조금은 가뿐해지게 될까.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일 년 전 이사를 오며 정리하고 팔고 처분하고 했는데도 책장은 여전히 빽빽하고 내 집도 역시 정신없긴 매한가지다. 그림책 속 남자처럼 물건을 두고 추억 여행을 떠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조카에게 뭐라고 할 입장은 솔직히 나도 아니었다. 그래, 말 나온 김에 주말에는 봄맞이 대청소다. 그러다 또 새 주인을 만날 수 있는 물건과 마주한다면 난 다시 세척을 하고 사진을 찍고 글을 올리고 집 앞에서 낯선 이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누군가 내게 머뭇머뭇 다가오면 난 그에게 또 묻겠지. "당근이세요?"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