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당신의 그림자도 알아봐요
같이 운동하는 V에게 [두 사람]
남편 V와 종종 싸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다는 '안나 카레니나' 소설 속 첫 문장에 빗대자면 우리가 싸울 때의 이유도 언제나 비슷하다. 서로의 좋은 점만 바라보다 결혼한 남자와 여자는 이후 서로의 싫은 점을 발견하지만 둘은 살면서 하나도 그것을 고치지 못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 어쩌면 진리가 아닐까.
두 사람은 드넓은 바다 위 두 섬처럼 함께 살아요.
하지만 두 섬의 모양은 서로 달라서
자기만의 화산, 자기만의 폭포,
자기만의 계곡을 가지고 있답니다.
결혼하면서 나는 이 구절을 가슴 깊이 새겼어야 했다. 서로 좋아 만나고 늦은 밤까지 헤어지기 싫어 결혼했지만 결국 우리는 모양이 다른 섬에 각자 살고 있었던 것을 왜 이제야 깨닫게 되는가. 상대가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주야장천 핏대 세워 말한다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와 나는 자기만의 화산과 폭포와 계곡을 가지고 있으니 들어먹힐 일이 아니었다. 일찌감치 그것을 인정하고 포기했어야 했는데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어서야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는 나는 참으로 많이도 느리고 미련한 사람이다.
요즘 V와 열심히 저녁 운동을 한다. 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고작 공원에서 빨리 걷기. 그저 가장 편한 것이어서 하는 거다. 부담도 안되고 실제로 운동으로도 좋다고 하기에 하는 거지만 도대체 우리 둘의 살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했다고 벌써부터 효과를 바라는 건지, 거저먹겠다는 심보이긴 하다. 그러니 꾸준히 해보려 한다. V가 선뜻 같이 운동 친구로 나서 주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본인 건강을 위해서인지는 잘 모르지만, 어떤 이유든 상관없다. 솔직히 그저 같이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난 좋으니까.
매일 공원을 열 바퀴씩 도는데 마지막 바퀴 접어들어서는 앞서서 가던 V가 나를 한 바퀴 따라잡는다. 그때 그는 내 뒤에서 깜짝 놀라게 하려 하지만 어림없다. 난 이미 그가 온 걸 알아챘으니깐. 내 눈앞에 드리워진 그의 그림자가 보였으니까.
남편이 내 뒤에 있구나.
그의 걸음걸이, 팔 동작. 운동하는 다른 많은 사람 틈에 있어도 그림자만 봐도 V인 줄 알겠다. 실은 그런 내게 더 놀랐다. 이런 것이 부부인가 하고. 그 징글징글한 두 사람의 시간이 그래도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닌 것 같아서.
두 사람은 나란히 한쪽으로 나 있는 두 창문과 같아요.
묘한 일러스트로 자꾸 곱씹으며 보게 되는 그림책 <두 사람>은 복잡다단한 사람과의 사이를 아래 글로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은
함께여서 더 쉽고
함께여서 더 어렵습니다.
그래, 이 말이 딱이다. 쉽고도 어려운 것.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서로에게 풀리지 않는 자물쇠가 되기도, 풀 수 있는 열쇠가 되기도 할 것이다. 아이를 함께 키우는 동지, 취미를 공유하는 친구, 어떤 이름이든 우리는 살아갈수록 서로에 대한 신뢰가 차곡차곡 쌓이는 적금 이자처럼 깊어가긴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의 결혼생활은 안온해지는 걸까. 바람은 그렇지만, 두고 볼 일이다. 어차피 두 사람, 특히 부부라는 건 그렇게 묘한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