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기와 함께 태어나는 신생 인류입니다. 아기 성장에 관한 보고서는 쌓여 가고 있지만 신생 엄마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지요. 왜 누구도 갓 태어난 엄마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걸까요. 모든 것이 처음인 세상에서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을 갓난 엄마들을 생각하며 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림책 <엄마 도감> 끝에 작가는 이 책을 만든 의도를 명확하게 설파했다. 작가 말처럼 아기에 대한 책은 숱하게 존재한다. 나 또한 육아책들을 닳도록 읽었다. 육아책 내용과 아이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면 나는 훌륭한 엄마가 되었고 책과 다른 아이를 발견하면 못난 엄마가 되어 있었다. 책으로 육아를 배운 나는 그렇게 웃고 울고 희망을 찾고 좌절했었다. 책이 정한 기준처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누군가 내게 말해줬더라면 난 좀 편한 육아의 시절을 보낼 수 있었을까. 혼자서 아이를 키웠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그래도 난 책에 의지했을 것이다. 책과 육아 커뮤니티 카페가 그때는 내게 오은영 선생님이었고 친정 엄마나 다름없었으니까.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려고 노력했다. 엄마가 처음인 그 시절 누구나가 그러지 않을까.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우리 모두는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닌가. 내 손가락 하나를 꼭 잡는 그 어린 생명이 옆에 있는데 최선을 다할 수밖에. 얘도 나밖에 없는데.
아기가 태어나는 동시에 엄마도 태어난다.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나만 챙기면 되던 가뿐한 삶에서 한 생명을 키우며 공감과 배려를 배운다. 똑부러지게 제 말을 잘하는 U는 엄마가 되고부터 아이 말에 더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어른이 됐다. 살림할 줄 모르던 U는 엄마가 되서는 깔끔쟁이가 되었다. 너무 말라 보여 걱정하는 말을 하니 "아이 키우느라 그런가봐요. 어쩔 수 없죠. 그럴 때잖아요." 그러한 엄마의 노고로 아이는 포동포동 살이 오른다. 애쓰며 잘 살아가고 있다고 U에게 말해주고 싶다. 동시에 어린 아이를 한창 키우고 있는 엄마들에게 그림책 <엄마 도감>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태어나서 처음 본 엄마 얼굴은 내가 배 속에서 상상했던 것과 많이 다릅니다.
엄마 배 속에서 바로 나온 아이가 예쁘지 않듯 엄마 또한 그랬다. 맞다. 엄마도 그날 새로 태어난 거다. 그래도 명색이 그림책인데 이렇게까지 엄마를 후줄근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만큼 아름답지 않게 엄마를 그린 그림책이 또 있을까. 근데 실제로 엄마는 그렇다. 쭈글쭈글한 상태의 아이를 보고 낯설었던 것은 엄마만이 아님을 이 그림책을 보고 깨달았다. 갓 나온 아이 역시 엄마를 보고 적잖이 실망했을 수 있겠다.
아이 옆에 네모나게 송장처럼 누워 있는 엄마를 보니 감정이 이입되지 않을 수 없다. 그녀 발에 유독 눈에 들어왔다. 아기를 낳기 전까지는 아무리 춥다 해도 수면양말을 신어본 적이 없었다. 출산 후에는 찬바람을 쐬면 안 된다 해서 처음으로 신어봤다. 신기는 신었는데 벗을 때가 문제였다. 몸의 변화가 얼마나 예측불가였는지 어느새 발은 부어 그 헐렁하던 양말이 꽉 끼었다. 낑낑대며 겨우 양말을 벗던 기억. 벗은 맨발은 퉁퉁 부어 있어 너무 겁나고 놀란 가슴. 그림책 속 기운 없이 누워있는 산모를 보니 그때 내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는
괜찮은 걸까요?
아니, 괜찮지 않아. 아가야, 너도 세상에 나오느라 힘들었겠지만 엄마도 만만치 않았어. 엄마 얼굴만 보더라도 알겠지. 그러니 앞으론 네 생일에 케이크 초를 후-하고 엄마랑 같이 불자꾸나. '둘 다 고생했어' 하고.
갓난아이에게 엄마 몸은 우주와 같다. 2인 3각 경기처럼 아기와 엄마는 한 팀이다. 모유나 분유를 먹이고 적어도 30분 이상은 안고 트림시키기. 30분 이상 업거나 안고 재우기. 손 탄다고 많이 안아주지 말라고 누가 그랬어도 아이가 울면 달리 방도가 없다. 독하게 외면하려 해도 결국엔 아이에게 지고 만다. 팔이 아파 안는 게 힘들면 낮잠을 재우기 위해 유아차에 태워 동네를 몇 바퀴 돌았다. 겨우 아이가 잠들면 잠시 벤치에 앉아 쉬는 것이 유일한 바깥나들이, 쉼이었다. 아이가 잘 때 가장 예쁘다는 말은 실은 마침이 없는 육아에 대한 꿀 같은 쉬는 시간이 주워진다는 다른 말이었다. 누군가는 맘충이라고 속도 모르는 소리를 한다지만 유아차 끌고 카페라도 갈 생각을 그때 왜 난 못했을까. 차 한 잔 잠깐의 여유도 엄두가 나지 않던 시절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는 의도치 않은 다이어트를 하게 된다. 돌이켜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잠도 잘 못 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니 살이 쏙 빠지는 건 당연지사. 아이가 학교에 입학할 때쯤 되서야 엄마도 아이처럼 살이 붙기 시작했다. 그제야 엄마는 제 몸 건사하는 사람 꼴이 되어갔다.
그래도 내 몸 위에서 아이가 자라던 그 시절이 살짝 그립기도 하다. 내 안에서 자고 먹고 놀고 하던 그때가 몸은 힘들었어도 아이의 까르르 천사 미소를 가장 가까이서 본 때가 아니었을까. 그렇다 해도 다시 돌아가고 싶냐고 내게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것이다. 정말 힘들었다. 그립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다만 고마운 사람들은 있다. 그 시절 나를 조금이나마 도와주기 위해 좁은 내 집으로 찾아오던 친구와 가족을 결코 잊지 못한다. 난 그들에게 영원히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내 힘든 시절을 함께 해주었기에. 나를 먹이려고 음식을 해주고, 나 대신 잠시 아이를 안아주던 그들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엄마 도감>은 엄마가 미운 다 큰 아이가 꼭 봤으면 하는 그림책이기도 하다. 이것을 보면 조금은 아이가 엄마를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지 않을까. 밉고 싫어도 이렇게 고생해서 자기를 낳고 키웠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까. 엄마라는 족속은 그래서 어쩔 수 없는 거구나 하며 잠깐이라도 좀 불쌍히 봐주지 않을까. 우리 같이 힘들었구나 하면서.
조만간 둘째를 낳을 U에게 이 그림책을 선물하려 한다. 근처에서 아이를 돌봐주는 헌신적인 시부모가 계시고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키우는 비슷한 또래 '82년생 김지영'보다는 형편이 좀 나아 보이지만 그럼에도 얼마 전 통화에서 그녀의 목소리에는 힘듦이 묻어났다. 어찌 그러지 않을까. 부모 됨이, 삶이라는 게 그리 녹록하던가. 현재를 치열히 살고 있는 U에게 이 그림책은 어떤 마음으로 다가가게 될지 사뭇 궁금하다.
아이를 갖고부터는 긴 머리카락을 가져보지 못한 엄마. 그 모든 위대한 엄마들에게 토닥토닥 위로하며 선물하고 싶은 그림책을 만났다. 힘들면 도와달라고 요구하기를. 절대 혼자 감당하려 하지 말기를. 타인의 도움을 기꺼이 받으라고 이 세상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분들에게 전하고 싶다. 예쁘지 않은 그림책. 그래서 더 와닿는 그림책. 불모지나 다름없던 엄마라는 신생 인류에 대한 남다른 작가의 시선에 찬사를 보낸다.
이미지 출처 :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