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교류하는 방식에 대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는 T에게 [또또와 사과나무]

by 윌버와 샬롯

저 꼭대기 닿을 수 없는 곳에 먹음직스러운 사과가 탐스럽게 열려 있다. 저것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서로 다른 동물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과를 얻는다. 옆에서 지켜보던 쥐는 '아, 저러면 되는구나'하고 방법을 배우게 되지만 정작 그들처럼 사과를 갖지는 못한다. 코를 늘려보고, 목을 주욱 빼보고, 나무에 머리를 힘껏 부딪혀봐도 소용없다.


새처럼 파다닥 날아오르면 사과를 딸 수 있을까


살면서 이거다 싶어 다른 사람을 따라 하다 느꼈던 좌절이나 혼돈의 순간이 있었는가. 타인에 대한 동경으로 그를 흉내라도 내본다면 어쩌면 조금은 비슷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고 어줍지 않은 시도를 해 본 적은 없었는가.


아이를 키우면서 상대적 작아짐을 느낄 때가 많았다. 한정식 셰프 뺨치게 요리를 잘하는 엄마, 소풍 때면 귀엽고 예쁘장한 캐릭터 도시락을 싸주는 엄마, 학습 관리를 철저히 해주는 엄마, 아이와의 교감을 수월히 하는 엄마. 세상에는 나와는 별세계인 능력 많고 완벽한 엄마들 천지다.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나를 보며 언젠가 T가 말했다. 모두를 따라 할 필요도 없고 부러워할 것도 없다고.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때 좀 안도하고 위안받았다. 살아가는 데 어떤 정답이 없듯 각자 방법대로 내 능력만큼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그때부터였을까. 누가 무엇을 잘하는 것에 마음의 큰 동요를 일으키지 않았다. 내가 하지 못할 것에 흉내라도 내어 필요 없는 소모를 하지도 않게 되었다. 억지로 남의 방법을 끼워 맞추려 하지 않는다. 완벽하지 않고 여러 곳이 숭숭 비는 구석이 있어도 나만의 형태로 뚝심 있게 이어갔다. 행복을 얻는 것은 사과를 따는 여러 방법만큼이나 모두 제각각일 테니까.


그림책을 보다가 다른 생각도 들었다. 근데 쥐는 처음부터 혼자서만 사과를 따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원래부터 도움은 청하고 싶지 않은 독립적인 자아를 갖고 있었던 걸까. 사과를 얻는 다른 동물을 계속 부럽게 쳐다보고 있는 쥐를 다른 동물은 왜 한 번도 이렇게 묻지 않았을까.


도와줄까?


'도와줘', '도와줄까?'라는 이 두 말이 서로가 그렇게 하기 힘들었을까. 눈치만 보고 누가 먼저 손을 내밀어 주기를 기다린 걸까. 쥐는 언제까지 다른 동물을 따라만 하고 있어야 했을까. 허탕만 치고 있는 쥐에게 유일하게 물개만이 말을 건넨다.


이런~, 조심해야지.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 먼저 다가와 관심 가져주고 말을 건넨 물개만이 이곳에서 유일한 승자다. 그래야 해결이 된다. 먼저 요청할 줄도, 무엇이 문제인지 관심을 갖고 다가갈 줄도 알아야 이 세상은 돌아간다. 평범한 개인은 한없이 작지만 그들이 모였을 때에야 꿈에 한 발짝이라도 더 내디딜 수 있다. 그림책은 영화 속 쿠키 영상과 같은 작은 그림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다. 앞에서 겪은 모든 갈등은 해결되고 아무 걱정 없이 신나게 두 친구가 노는 장면이다. 그 놀이는 바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던 실마리이기도 하다. 협동과 공감,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 이 작은 책에서 얻을 수 있었다.


자신만의 방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혼자서는 결코 살 수 없다. 자신을 지키면서도 타인을 살필 줄 아는 따뜻한 시선을 거둬서는 안 될 것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돕고 사는 것이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이미 그 지혜를 갖고 있는 T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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