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떠난 H에게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안녕하세요. 이번 주부터 세탁소를 새로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네?"
일터 바로 옆에 있는 세탁소, 어제부터 사장님이 바뀌었단다. 예전 H 사장님이 어제도 계셨던 것 같은데. 이발소 사장님과 여느 때처럼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셨는데.
섭섭했다. 그래도 9개월 간 뵈었던 분이었는데 이렇게 일언반구도 없이 떠나시다니. 컵라면 냄새가 너무 자주 나 '사장님 너무 라면만 드시면 건강에 안 좋을 텐데' 그런 생각도 종종 했었는데. 이곳 상가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열고 가장 늦게 닫는 곳. 한여름에도 세탁 기계들 때문에 에어컨을 켜도 소용없다며 그 뜨거운 날들을 선풍기로만 보내셨던 곳. 지나칠 때마다 사장님이 쪽잠을 주무시는 걸 가끔 보게 한 그곳.
인사할 때마다 쾌활하고 밝은 목소리로 받아주셨지만 삶을 살아내는 하루하루가 정말 고단하실 것 같다는 생각을 혼자서 종종 했었다. 어쩌면 우리 엄마도 예전에 자식들을 생각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셨을지도 모른다고. 한 마디 인사도 없이 떠나신 게 많이 허망했다. 간단한 인사조차 하지 않을 만큼 난 그에게 그렇게나 존재 의미가 없었다니. 출근할 때나 상가 복도를 지나는 짧은 시간에나마 밝게 서로 인사를 나누었던 미용실 직원도 한 두 달 전 인사도 없이 떠났을 때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떠나는 것에 그렇게 크게 의미 부여하지 말아요.
사는 게 다 그렇죠 뭐.
1층에 기존 사장님이 떠나고 새로운 점포가 들어오는 것에 아쉬워하던 내게 미용실 직원은 그렇게 얘기했었다. 마치 자신의 끝도 그럴 거라고 미리 알았던 것처럼.
살아 있는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단다.
그 사이에만 사는 거지.
......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그렇단다.
풀도,
사람도,
새도,
물고기도,
나무도,
토끼도,
아주 작은 벌레까지도.
오늘 아침 뜻하지 않은 이별을 맞으며 이 그림책을 읽었다.
뭐 그들에게 잘한 일도 특별히 없기도 하다. 모든 이에게 인사받으며 살고 싶은 건 오만한 생각일 수도 있다. 내 맘 같지 않다고 원망할 필요도 없다. 산다는 건 원래 다 그런 거라니까. 몸이 안 좋아 그만두셨다는 이야기를 다른 분께 전해 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라면을 드시지 않아도 되고, 불편한 쪽잠을 주무시지 않아도 되며, 뜨거운 여름날 선풍기에만 의지하지 않아도 될 것에 다행이구나, 위안 삼기로 했다.
세탁소 사장님과 미용실 직원분, 서로의 이름도 모르고 우리는 잠시 만났었지만 어디서라도 행복하고 건강하길 오늘 잠시 바라본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 사이에만 산다. 그러니 다시 만날 새로운 인연과 새 일상의 하루를 난 힘차게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