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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버와 샬롯 Feb 28. 2024

영업은 좀 많이 떨려

"얘기는 잘 되었나요? 성과가 있어요?"

"이제 기다려봐야죠. 방문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출근 전에 근처 학교 두 군데를 방문했습니다. 소소하게 학교 선생님들의 주문이 있긴 했지만 지속적인 책방 운영을 위해서는 학교나 공공도서관의 정기적 납품이 필수불가결한 일인 줄은 알고는 있었습니다.

"솔직히 얘기해 줘봐. 내가 학교에 가면 잡상인 취급받겠지?"

"으음, 아무래도...... ㅜㅜ"

선생님인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해봤습니다. 도서 도매 영업사원도 말했습니다. 사장님, 근처 학교에 당당히 가셔서 요청하셔야 해요! 그런 말을 들은 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던 것 같습니다. 내내 문제만 보면서 풀지 않고 시험지를 안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고 싶어 책방을 열었는데, 책상머리에서만 일해본 경험밖에 없는데, 영업이라니! 굳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까지 이 책방을 유지해야 하는 것인가. 구멍가게 같은 책방도 사업이라면 사업인데, 시작했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건 아닌가. 이 두 가지 마음이 엎치락뒤치락했습니다.

"도서 구매 관련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어 방문했어요."

"원래는 영업하시는 분들은 들이지 않는데요. 말씀을 그리 찬찬히 해주시니 방문증을 드리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 말을 잘 안 해요."

한 곳은 보안관 선생님의 호의로, 한 곳은 그저 운이 좋아 교문 앞에서, 교감 선생님을 오늘은 두 분이나 짧지만 뵙게 되었네요. 뭐 두 팔 벌려 환영받은 건 아니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용기를 오늘 아침에는 내었답니다. 3년 차에 처음 만들어본 명함을 내밀면서요.

방문증을 반납하며 인사하는데 보안관 선생님이 일이 잘 되었기를 바란다는 인사 말씀에 오래 묵은 숙제를 푼 것처럼 학교에서 나오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웠습니다. '아, 3월에는 학교 도서관 사서님이랑 통화라도 해봐야겠다.' 엄두가 나지 않던 일을 한번 부딪혀보니 다른 새로운 일에 용기를 다시 내어볼까 계획도 세워보네요. 앞으로 이 책방에서 저는 어떤 일까지 해볼 수 있게 될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어쩌겠어요. 제 깜냥은 여기까지 인걸요. 그래도 후회는 없을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 부탁하기도 부탁받기도 싫어하는 제가 혼자만의 오랜 숙제였던 것을 끝냈어요. 오늘은 그저 저를 칭찬하고 싶은 날입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애썼어, 나 자신!

떨리던 마음을 가라앉히려 오늘은 책방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협주곡을 듣겠습니다. 날씨가 따스해요. 오늘도 오후 5시까지 책방 열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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