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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김 Jan 13. 2022

장롱면허 20년, 운전에 도전하다

2년 전 친정아버지께서 암 판정을 받으시고 치료를 받아오시다가 작년에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시면서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다.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음을 직감했다. 맏딸인 나는 퇴근 후 거의 매일 병원이나 친정으로 홀로 계신 아버지를 뵈러 갔다. 차가 없어서 주로 지상철이나 버스를 탔다. 대중교통으로 1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를 왕복하며 수개월 동안 내 몸은 지쳐갔다. 돌이켜보면 내가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싶기도 하다. 그즈음 중학생 아들이 “엄마는 왜 외할아버지만 챙겨?”하며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결국 아버지는 투병 끝에 칠순 생신을 나흘 남겨두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버지는 입원하시기 직전까지 1 ton 화물트럭을 출퇴근용으로 그리고 짐을 실어 나르는 용도로 타고 다니셨다. 가끔 아버지가 운전하시는 트럭을 같이 탔던 기억이 난다. 고령의 나이에 이제  그만 하시고 쉬실 법도 한데 자식들한테 생활비로  벌리고 싶지 않다며 끝까지 일을 놓지 않으셨다. 아버지께서 편찮으실  바닷가재 한번 먹어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끝내 그걸   드렸다. 그때 만약에 내가 운전을   있는 상황이었다면 아버지모시고 식당에 가서  마리 사드릴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영영 못하게 됐다.

 

장롱면허 거의 20년 만에 운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마흔 넘도록 왜 이토록 운전에 거부감을 가졌을까? 후회스러웠다. 솔직히 가정경제에 지출을 줄이고자 하는 마음이 제일 컸다. 생활이 빠듯했고 교통비라도 줄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운전의 장점 – 이동 시간 단축, 효율성, 피로도 경감 등은 후순위로 미뤄 둔 거다. 이제 아파트 대출금도 제법 갚았고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이 되니, 내 차를 마련하기로 했다. 초보 운전이니까 작은 중고차로 시작해서 운전에 익숙해지면 새 차를 사야지 했더니만 주위 사람들이 극구 말렸다. 운전은 곧 익숙해질 테니 처음부터 새 차를 사라고. 한 달 넘게 고민 끝에 이왕 사는 거 큰맘 먹고 수입차로 결정했다. 중고차 알아보다가 수입차라니… 이런 결정을 내린 나 자신도 어안이 벙벙했다.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온 내게 유일한 사치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태까지 수고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치자. 내 돈 주고 내가 사는데 누가 뭐래. 학창 시절부터 튼튼한 두 다리로 대중교통을 실컷 이용했으니 이제 좋은 차로 드라이브 한 번 해 보자.

 

운전학원에 등록해서 노란색 차로 도로 연수를 받았다. 내가 직접 운전대를 잡고 도로를 달린다는 게 신기하고 감격스러웠다. 물론 강사 선생님이 조수석에서 코치를 해 주셨지만 말이다. 평생 운전 안 하고 살 줄 알았더니만 이런 날이 오다니. 놀라운 건 내가 겁이 많아 운전을 잘 못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운전대를 잡고 원하는 곳으로 이동한다는 게 뿌듯하고 재미가 있었다. 운전을 통해 미처 내가 모르고 있던 내 모습을 새롭게 발견했다. 사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왜 운전을 안 하냐는 질문을 셀 수 없이 받았더랬다. 운전은 노동이라는 편견을 가지기도 했고 운전이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하고 싶어졌다. 이왕 할 거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조금 더 빨리 할 걸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이 적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든지 다 때가 있나 보다. 하고 싶을 때, 그리고 할 수 있을 때.

 

다음 달이면 생애 최초로 내 차가 생긴다.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출퇴근하기

마트에 가서 장보기

교외의 예쁜 카페에 가기

셋 다 할 수 있겠지?


새해, 나의 ‘붕붕이’와 함께 새로운 도전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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