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해를 잡고 싶을 때
서울숲과 성수는 많이도 돌아다녀서 굵직한 거리와 거기서부터 뻗어나가고 이어지는 작은 골목들 까지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오늘은 안 가본 쪽을 가보기로 하고 정처 없이 걷다 보니 듬성듬성 피자집, 와인바, 카페 등이 나왔는데 메인 거리에 비하면 사람이 차이나게 적어서 돌아다니기가 훨씬 편했다.
눈앞에 보이는 3층짜리 카페로 덜컥 들어갔다. 무채색이 많이 사용된 모던하고 깔끔한 카페였다. 로고는 컵을 쌓아 올린 모양으로, 귀여웠다. '이런 느낌 나쁘지 않지.' 1층에는 카운터뿐이었기에 먼저 올라가서 자리를 잡기로 했다.
건물 외부에 위치한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갔어야 했는데 추운 날 좁고 가파른 옛날 계단이 조금 힘들기는 했다. 하지만 운동한다는 생각으로! 뒤꿈치를 밀며 업 !
먼저 2층. 유리문을 통해 들여다보니 안에 몇 팀이 보인다. 패스.
그리고 3층. 한 팀이 있지만, 괜찮다. 문을 밀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아메리카노와 감태마들렌을 주문해 올라왔다.
카페는 3층 전부 통창이었지만 주변이 주택가여서 대단한 뷰는 없었다. 하지만 때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
따스하고 은근한 노을이 앉은자리까지 깊게 들었다. 드는 해에 보드라워진 얼굴을 쭈욱- 더 내미며 순간을 만끽했다. 은은하고 부드러운 빛의 조명을 켜 놓은 듯 친구의 이목구비가 예쁘게 잘 보였다. 노을도 예뻤다.
조용한 카페에서 노을빛을 받으며 앉아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든 컵을 두 손으로 움켜쥐어 손을 녹였다. 겉바속촉 마들렌 안에는 캐러멜이 들어있었다. 캐러멜은 달고 감태는 짭짤해서 묘하고 새로운 맛을 내었다. 잠시동안 행복한 시간을 만끽했다.
들어오는 빛의 변화는 꽤 빨랐다.
벽 전체를 비추던 빛이 점점 사선으로 늘어지고 길어지며 면적을 좁혀갔다. 테이블 전체를 비추다, 상반신을 비추다, 얼굴을 비추다... 결국 앉은키보다 높은 벽에만 햇살이 쬐고 있었다. 햇살의 따스함이 사라져 살짝 으슬한 순간에서야 거의 넘어간 해를 눈치챘다.
재빨리 일어나 마지막 순간을 찍어두고 싶었다. 해가 짧아 매일이 아쉬운 요즘이었다.
마침 하나 있던 다른 테이블도 나가고 3층엔 우리뿐. 휴대폰 카메라를 켜고 해가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는 곳으로 매장 안을 성큼성큼 돌아다녔다. 아직 노을의 흔적이 남은 테이블, 의자, 매장 내부를 빠르게 여러 번 찍었다. 완전히 어두워지면 다른 색감으로 찍힐 것들이었다.
마지막으로 뒤돌아 해를 바라봤다. 카페 앞 높이 선 건물뒤로 그라데이션 구름과 함께 해가 예쁘게 지고 있었다.
'이 건물 앞은 아직 해가 있겠구나. 앞에 또 뭐가 없으면 엄청 멋지겠다.'
카페에선 보이지 않는 앞 건물 이면의 풍경이 궁금해 혼자 상상을 해봤다. 노오란 해는 1층까지 들어오고, 눈 쌓인 앞마당에도 노을이 한가득 담긴 풍경. 온통 노을빛 세상.
해가 있을 쪽으로 달려 나가 구경하고 싶기도 했지만, 나는 지금 내게 허락된 만큼의 해를 까치발 들어 열심히 찍었다. 까치발은 바라는 마음이었다. 키가 아직 작은 어린 시절 담 너머를 보고 싶은, 모여있는 무리 안 쪽의 화젯거리를 보고 싶은, 실제보다 조금 더 크게 키가 재어졌으면 하는.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지는 해를 잡고 싶을 때 나는 까치발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