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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aveler J Apr 07. 2023

은둔의 암살자

TMT (Too Much Talkers)에 대해...



어느 주말, 교육을 들으러 가서 있던 일이다. 얼마간 벼러왔던, '내돈내산' 강의였다. 기쁜 마음으로 토요일 아침부터 일찍 집을 나섰다.


처음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와있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역시 열심히 사는 이들이 많다는 걸 한 번 더 느끼며 내심 뿌듯한 마음으로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 업계에서 유명하다는 분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관심이 있던 분야의 교육인지라 잠을 많이 못 잤건, 지금이 주말 아침이건, 이미 한 시간을 달려왔건, 그런 힘듦 따위 이때만큼은 소소해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느 첫 모임이 그렇듯 화기애애하면서도 열정적인 분위기 속에 강의는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런데 뭔가 들을수록 이상했다. 쌍방 대화방식이 아닌 100% 일방 강의인데, 모든 설명이 너무 세세했다. 그러니까 수강생이 배워야 하는 부분에 대해 세세한 게 아니라, 아주 쉬운 한국말을 한 번 더 풀어서... 혹은 두 번 더 풀어서 설명했다. 슬슬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 물건 사진은 물건을 벽(배경)에서 약간의 간격을 두고 떨어뜨려 촬영한다.


이런 불렛포인트 하나로 5 - 10분을 설명한다.

예시 이미지도 붙어있어 단박에 이해가 가는 문장임에도 설명이 너무 길었다.


주제를 하나 둘 넘어가며 그녀의 패턴을 알아차렸다.

새 주제가 나오면 목차를 한 번 훑고, 본론에서 세세히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나오면서 한 번 더 훑는다. 보아하니 원래 말습관이 여러 번 말하는 스타일 같은데 '강의'라는 매개가 그녀의 열정에 불을 지른 듯했다.


확실했다.

그녀는 내용을 소화하는 수강생의 입장이 아닌, 강의를 완벽하게 완수하는 자신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었다.




...


와. 미치겠네. 

나름 앉은 생활 최소 20년 짬은 되는데 그래도 미치겠네.


책상과 의자가 붙어있는 작고 불편한 의자에 앉아 쉬는 시간도 없는 3시간짜리 강의라니. 진도도 시원하지가 않아서 제시간에 못 끝날 것 같았다.


‘안 쉬고 3시간인데 그래도 안 끝나면 좀 너무한 거 아니야?!’ 투덜대며 2시간 반을 지나 보낼 때쯤, 교재의 남은 부분을 들춰보고, 그녀의 말하기 속도를 가늠해 보고, 추측이 명확해지고... 나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엉덩이가 들썩이고 좀이 쑤셔 죽을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마주치며 강의에 집중한 모습을 보여줄 여력도 달아나 버렸다. 티 내지 않으려 했지만, 화가 나고 지친 기색은 어디로든 보였을 것이다. 나의 작은 자리에서 혼자만의 싸움을 한 시간 정도 더 하니 그제야 풀려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뛰어나오며 나오자마자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아주 큰 숨을 쉬었다. 어이없었지만 강력했던 3시간의 여운이 가실 때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당장 친구에게 전화해 그녀의 이야기를 전했다. '은둔의 암살자'를 만났다고. 날 죽이려는 것 같다고.






가끔 이런 이들이 있다. 쌍방이 아닌 일방 대화를 하는 이들. 너무 많은 말을 다 들려주고 싶은 이들. 반복해서 말하는 이들. 듣는 이는 진작 이해했는데도 끝까지 설명하는 이들.


정말 그럴 때면, 그들에게 듣는 상대방은 중요하지 않은 느낌이 온다. '들어줄 이가 필요했구나'싶어 나를 죽이고 열심히 들어보다가도 힘이 든 건 어쩔 수 없다. 매번 이렇게 행동하는 이들은 보통 본인이 다 말하는 게 중요하거나, 그저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사람들일 확률이 크다.


더욱이 그 이야기가 그들의 힘든 일에 관한 것이라면, '이게 바로 감정 쓰레기통이구나'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정도가 과한 친구나 지인을 볼 때면 그들의 배려 없음에 화가 나곤 한다.


그 수많은 말들이 내게 들이부어지는 느낌이다. 이미 한계치를 초과한 말들이 계속해서 부어지고, 나는 그 말들을 먹고 부욱 부욱 풍선처럼 부푸는 느낌. 그러다 빵. 언제 터질지 모른다.




사실 나도 평소 말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은 얼마나 고통일 수 있는지 이런 때 깨닫고 반성한다.

반성 또 반성. 싹둑싹둑 자르는 연습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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