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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그라운드 Sep 25. 2020

"음악에게 받은 것을 어떻게 돌려줄지 고민하는 뮤지션"

뮤지션 하림님 인터뷰

Hey Listen은 성수동 체인지메이커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는 헤이그라운드팀의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Hey Listen 인터뷰는 팟캐스트와 그를 요약한 텍스트로 발행됩니다. 생생한 목소리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누르시면 풀버전 청취가 가능합니다.


이번 주 헤이리슨에서는 뮤지션 하림님을 만났습니다. 인터뷰 내내 '음악의 힘'이라는 키워드가 여러 번 등장했는데요. 자신이 업으로 삼은 분야에 대해 깊은 고민을 계속해 나가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음악이 잘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고민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만들어 활동하고, 예술가의 정직한 노동에 대해 생각하는 뮤지션 하림님의 이야기, 많이 듣고 읽어 주세요!



음악에게 받은 것을 어떻게 돌려줄지 고민하는 뮤지션

뮤지션 하림

*하림님의 자세한 프로필이 궁금하다면? 문제적 프로필 듣기

사진 어도러블 플레이스

최근에 비긴어게인 통해서 잘 뵈었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비긴 어게인은 보람 있는 작업이었어요. 코로나로 공연이 없어지고 사람들이 잘 못 나가는 시기에 음악이 줄 수 있는 위로가 크다는 걸 방송으로 ‘보면서' 느꼈어요. (웃음) 녹화할 때는 힘들어서 주어진 역할 소화하기 바빴죠. 곡수도 워낙 많고 체력도 달리고요. 그런데 정말 실력 있는 보컬리스트들과 함께하니까 연주하면서 즐거움이 있었어요. 바로 옆에서 노래를 들으면 팔에 털이 쫙 곤두서죠. 비긴 어게인을 잘 마치고 요즘은 ‘그 쇳물 쓰지 마라' 함께 부르기 챌린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어떤 프로젝트인지 간단히 설명 부탁드려요.

10년 전 당진에서 한 청년이 용광로에 빠져 사망한 사건이 있었어요. 올해가 10주기인데, 한 기획자가 당시 기사에 댓글로 달린 시를 가지고 노래를 만들고 싶다고 찾아왔어요. 제가 해야 될 것 같아 곡을 썼죠. 음원을 내는 방식으로는 진정성을 전하기 어려우니 민중가요처럼 구전시키는 방식으로 가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는 방식, 아주 오랜 옛날 역사 속에서 노래가 퍼지던 방식으로요. 그런데 너무 안타깝게도 이 프로젝트 시작한 지 3-4일 만에 또 한 발전소에서 사고소식을 접했습니다. 마음이 복잡해 주변에 알렸어요. 빨리 힘을 좀 실어주면 좋겠다고. 뮤지션들을 포함해서 일반인들도 많이 참여해 주셨어요. 구전이 목표니까 노래를 최대한 쉽게 만들었어요. 어르신도 아이들도 리코더도 쉽게 따라 불러요. 그 모습들이 제게 주는 감동이 있어요. 이 프로젝트는 저널리즘 펀딩을 하는 회사인 프로젝트 퀘스쳔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으세요?

이 사고엔 아주 다양한 이슈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죠. 그럼에도, 우리가 이걸 꾸준히 돌아보고 신경 써야 우리 주변의 사람들, 친구들이 더 안전하게 일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전하고 공론화하고 싶어요. 그게 음악이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도 생각해요. 음악이라는 것이 역사를 전하기도 좋은 도구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기도 좋은 도구예요. 장르적으로 그런 힘이 있어요. 역사적으로 음악이 그런 힘을 발휘한 사례도 많고요.

영상 JTBC 유튜브

기타 포 아프리카라는 프로젝트도 하고 계십니다.

2008년부터 아프리카에 꾸준히 기타를 보내고 있어요.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어 하는 재능 있는 친구들에게 보내요. 아프리카에 간다는 사람이 있으면 제가 부탁하기도 하고, 아프리카 갈 계획이 있으면 제게 와서 기타를 받아 가기도 합니다. 처음 보는 분들에게 기타를 들려준 적도 많아요. 잘 전해주고 사진 한 장만 보내달라고 하면서요.


기타 포 아프리카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2008년 다큐멘터리 촬영으로 아프리카를 갔었는데요. 아프리카 아이들은 음악을 하며 노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 중 하나예요. 아이들이 다들 너무 음악을 잘합니다. 그때 만난 아이들 중 가장 큰 언니가 노래를 너무 잘하길래 나중에 기타를 선물하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그러고 한국 돌아와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느라 그 약속을 까맣게 잊은 거죠. 한 날 거기 계신 선교사님께 그 아이가 기타를 기다리고 있다는 메일이 온 거예요. 정말 어떡하지! 했어요. 그 아이에게 기타를 보내면서 이걸 프로젝트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공연 수익 일부, 모금함으로 모은 돈까지 해서 꾸준히 기타를 사서 보냈습니다. 그게 10년이 넘었네요. 


기타를 받은 분 중에 가수가 된 분도 있다고요.

가수로 데뷔하고 음악을 가르치는 친구가 있어요.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한창 회의감이 들 때가 있었는데요. 계속 기타를 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냥 나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닐까 복잡한 생각이 들었죠. 그때 말라위에 갈 일이 있었는데 예전에 기타를 받았던 소녀와 연락이 닿았어요. 기타를 업그레이드해 달라고 하더군요. (웃음) 그래서 더 좋은 기타를 들고 찾아갔더니 자기가 치던 기타는 자신이 가르치는 후배에게 주고 새 기타로 노래를 들려주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많이 울었어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복잡하게 생각하는 내가 문제였구나. 결국은, 악기들이 돌아다니면서 자기 일을 하는구나. 이 소녀가 음악을 연습하게 하고, 음악을 통해 직업도 찾게 하는구나. 난 그냥 그걸 도울뿐이구나. 이 모습을 보려고 내가 이 일을 해 왔구나. 그때 그 노래를 들으며 행복감이 컸어요. 복잡한 생각은 집어치우자는 생각도 했고요. 기타 포 아프리카는 열린 대문입니다. 누구나 와서 기타를 가져갈 수 있어요.


사진 하림님 인스타그램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 분들을 위한 공연도 꾸준히 하고 계시죠?

국경 없는 음악회라는 프로젝트예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의 진료를 무료로 해 주는 라파엘 클리닉이라는 곳이 있는데요. 그분들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다큐멘터리 촬영으로 쿠바에 간 적이 있는데요.


다큐멘터리에 자주 출연하시네요. (웃음)

네, 제가 말을 잘 듣는데요. (웃음) 협업을 좋아하기도 하고. 나가면 항상 협업 마인드로 함께 하거든요. 같이 만드는 거잖아요. 아무튼 쿠바에 갔는데 어깨 염증이 너무 심하게 생겼어요. 외국이기도 하고 또 쿠바가 사회주의 국가니까 왠지 병원 시스템이 잘 되어 있지 않을 것 같다는 편견도 있었어서 그냥 참았어요. 그러다 정말 걷지 못할 정도가 되어서 갔는데, 그냥 비자만 있는 외국인인데도 바로 진료를 해 줬어요. 약을 먹었더니 바로 다음날 나았어요. 약값과 진료비 모두 저렴했고요. 외국인을 진료하는 병원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더라고요. 나중에 안 건데, 쿠바는 교육과 의료가 모두 무료이기도 하고 의료 강국이기도 하대요. 그 경험을 하고 나니, 한국에서 외국인들을 진료하고 치료하는 곳들이 정말 중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전부터 알았던 라파엘 클리닉이 생각나 전화를 걸었죠. 혹시 도울 일이 없겠냐고 했더니 와서 공연을 해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또 기획을 좋아하잖아요. (웃음) 그분들께 그냥 노래를 들려드리기보다는 부르는 경험을 하게 해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준비할게 많지 않나요?

맞아요. 처음부터 저 혼자 하는 걸 원칙으로 해서 스피커와 악기 모두 제가 준비했죠. 그래도 장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연구를 많이 해서 진행했어요. 누군가에게 도와 달라고 하는 걸 제가 잘 못하기도 하고, 도와주면 꼭 돈을 줘야 한다는 생각인데 그러기 어려운 활동이잖아요. 그런데 자원봉사자 분들이 일당백으로 정말 잘해주세요. 차로 클리닉에 딱 도착하면 일사불란하게 스피커 세팅하고 악기 세팅하시고. 완전 전문가들이 됐어요. (웃음) 비긴 어게인 음악 감독이셨던 정지찬님이 오셔서 노래를 한 번 해주신 적이 있는데, 놀라시더라고요. 자원봉사자들이 음향회사 스텝들 같다고.


그것도 벌써 꽤 오래 하셨죠?

네 3주에 한 번씩 하고 있는데 3년 정도 됐네요. 옆에서 지켜보면서 음악의 힘, 노래의 힘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요. 노래를 하는 행위가 주는 치료 효과가 제게는 보여요. 눈빛이 바뀌는 분들도 많고. 노래하고 나면 가족들에게 영상 메시지도 보내는데, 그러면서 그리움을 토해 내고 춤도 추는 모습을 봐요. 그럴 때면 제가 스스로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데, 그 기분이 썩 괜찮아요. 나는, 음악가는 정말 음악의 흔적을 좇는 먼지 같은 거구나. 노래의 힘은 정말 크구나 하면서. 마치고 나면 병원 분들과 제가 모두 기쁨으로 충만해지죠. 요즘 코로나로 클리닉을 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워요.


1집과 2집 모두 저와 제 주변에서 반응이 좋았는데요. 어느덧 앨범 내신 지 15년이 넘게 흘렀어요.

당시에 첫 앨범 두 개로 음반 제작에 든 돈을 다 회수하지는 못했어요. 회사는 그 음악들의 남은 생명력으로 꾸준히 회수를 할 테고, 나는 이걸 전업으로 삼아 살아가기는 어렵겠구나 생각했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일랜드로 여행을 떠났어요. 제가 월드 뮤직을 좋아하게 된 것이 어려서부터 스팅을 좋아했기 때문인데, 스팅이 아일랜드 사운드로 음반을 낸 적이 있어요. 아마 그 때문에 아일랜드로 향했던 것 같아요. 아일랜드에서 거리공연을 하는 버스커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냥 돈이 필요해 구걸하는 이들인 줄만 알았는데, 얘기를 나눠보니 연습을 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저보고도 껴서 하라길래 했죠. (웃음) 그러고 사람들이 준 돈을 나눠서 그 돈으로 샌드위치를 사 먹는데 묘한 쾌감이 있었어요. 돈을 벌었잖아요. 앨범 두 장을 내고 투자한 돈을 회수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의기소침해 있던 때인데. 


사진 JTBC

버스킹의 시작이군요.

네 한국으로 돌아와서 바로 3개월 정도 유럽 곳곳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어요. 그때 드렐라이어(허디거디)라는 악기도 샀죠. 계속 걷고 사진 찍고 길에서 연주하고 연습하면서 돌아다녔어요. 그 여행이 저에게는 음악을 통해 하는 정직한 노동의 경험이었어요. 제가 길에서 연주한 시간만큼, 사람들이 지나가며 동전을 주죠. 유로는 동전이 그래도 1,000원은 되니 다행이었죠. (웃음) 그 동전을 잔뜩 들고 큰 스테이크를 먹으러 간 적도 있어요. 동전을 와르르 쏟아내니 점원이 처음엔 좀 당황하다가, 정성껏 세어서 계산해 주더라고요. 참 멋있는 점원이다, 감사하다 생각했죠.


한국에 돌아와서도 버스킹을 계속하셨죠?

음악을 노동으로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멋있어 보이는 일, 젊음을 불태우는 일이 아니라 정말 ‘일'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홍대 쪽 거리에서 오페라의 유령에 나올법한 가면을 쓰고 드렐라이어를 연주했어요. 근처에 노점상들이 많았는데, 기업형 노점상이 아니라 젊은 아마추어 예술가들이 살면서 생계를 위해 장사를 하는 곳들이었죠. 버스킹해서 받은 돈으로 그들과 소주도 마시고 하면서 친하게 지냈어요. 그땐 제가 일한 시간이 저에게 시급처럼 돌아오더군요. 당시 아르바이트 시급이 4,000원 정도였다면 저는 10,000원 조금 넘게 받았어요. 아, 음악이라는 것이 이 정도의 정서적인 책임을 더 져야 하는 것이구나, 세배 정도 마음을 더 담아서 작업을 해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면 음악 시장에서 책정되는 가치는 뭘까? 거기엔 비즈니스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10배가 되고 100배가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그걸 계기로 음악에 대한 생각에도 변화가 있으셨나요?

제 마음속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어요. 음악이라는 것과 음악 시장이라는 것이 구분되기 시작했죠. 주변에서 음악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어, 음악은 고통스러운 거야, 음악은 힘든 거야 등등의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요. ‘근데 음악 해서 먹고살 수 있어?’라는 말 때문에 모든 음악 - 듣는 음악, 즐기는 음악 모두를 음악 시장 쪽으로 보내 버리고는 음악을 삶에서 지워버리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음악 입장에선 억울할 거예요. (웃음) 나는 놀자고 하는데 너희가 나 가지고 돈 벌려고 하다가 왜 미워하냐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음악이 힘든 게 아니라 음악 시장에서 이걸 직업으로 삼아 성공하기가 힘든 거구나 하고 둘을 분리시켜 생각하게 됐죠. 그 이후로 음악 자체는 저에게는 좀 다른 쪽 영역으로 넘어간 것 같아요. 음악 시장에선, 그때그때 제게 주어진 일들을 하면서 먹고살았죠. 세션 연주도 하고, 윤종신씨가 부르면 가서 하모니카도 불고 코러스도 넣고요, 작은 공연에서 혼자 노래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10여 년이 흘렀어요. 그리고 어느새 제가 하고 있는 월드 뮤직 밴드들이 3-4개가 되어버렸죠. 저는 자연스럽게 공연 시장으로 흡수가 된 것 같아요.


헤이그라운드에 모여 있는 사업가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어떤 의미였나요?

저는 결국 음악을 일처럼 하고 싶은 사람이죠. 영혼을 갈아 넣거나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일로요. 투자자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모든 사람들에게 일한 만큼 공평한 노동의 대가가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사람들이 음악은 예술이니까 돈 많이 안 벌어도 되는 거 아니냐, 삶의 진정한 가치를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 많이들 얘기하는데요. 그건 일종의 판타지라고 생각해요. 진짜 예술은 예술가들의 삶이죠. 삶을 꾸려가는 그 자체. 그러다 보니 사업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보며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아요. 그리고 하루하루 직장에서 일하며 성실히 밸런스를 맞추고 살아가는 대다수의 분들께 느끼는 존경심이 있어요. 그들이 없으면 또 예술가가 존재할 수 없기도 하고요.

사진 어도러블 플레이스

반대로 또 예술가가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죠. 저는 어떤 시기를 음악에 기대서 건너기도 했고 음악에 많이 빚지고 사는 것 같은데요. 그 고마움이 그대로 아티스트들에게 전달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한국 음악 시장은 건강한 걸까요?

그 구조에 대해 예전부터 생각을 많이 해본 것 같아요. 물론 제 이야기가 답이 될 수는 없지만, 제가 경험한 월드 뮤직의 강국들은 음악을 즐기는 사람과 상황이 훨씬 폭넓어요. 그러다 보니 즐기는 음악 자체가 매우 다양합니다. 물론 거기도 팝 음악이 있고, 아이돌도 있죠. 다만 그 나라의 색을 가진 근대 음악이나 공연도 함께 잘 소비가 돼요. 작은 공연에 설 자리들이 많다 보니 로컬 뮤지션들도 먹고살 수 있는 환경이 돼요. 아일랜드를 10년 만에 다시 방문해서 여전히 같은 곳에서 계속 음악을 하며 살고 있는 로컬 뮤지션을 만났는데 참 인상적이더라고요. 성공을 위해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 삶이 음악인 거죠. 우리나라 음악 시장은 다이아몬드 모양이라고들 해요. 중간 두꺼운 부분이 앨범을 한 번 내 본 사람들이고 아래로 점점 좁아지는 부분이 아마추어 뮤지션들과 애호가들인 거죠. 위로는 스타들이 있고요. 월드 뮤직 강국들의 경우 이게 삼각형이 되어 아래쪽에 가장 많은 아마추어 뮤지션들과 애호가들이 시장을 받치는 좀 더 안정적인 구조로 보여요. 작은 공연장들, 음악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지금과는 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예전에 동유럽을 여행하다가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오셔서는 전봇대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휴지를 꺼내 받아 적고 가시는 걸 봤어요. 뭔가 하고 봤더니 동네 소규모 공연 스케줄이었어요. 대단하다고 생각했죠. 우리는 그러지 않잖아요. 우리나라는 열광하는 콘텐츠 위주로만 소비하는 경향이 좀 강한 것 같아요.


라이브 공연만이 줄 수 있는 가치는 뭘까요?

음악의 가장 행복하고 좋은 점은, 음악가와 듣는 사람이 함께 같은 바이브로 진동했을 때 나오는 기쁨이라고 봐요. 물리학에서 말하는 떨림 같은 것이죠. 같은 생각을 했을 때 나오는 떨림과, 쓰레기를 직접적으로 만들지는 않는다는 두 가지 사실이 제게는 음악 공연의 가장 좋은 점으로 다가와요. 앞으로 한정된 제 에너지를 계속 쓰면서 살 텐데, 가급적이면 그 음악의 떨림을 공연장에서 나누는데 많이 쓰고 싶어요. 이런 생각들을 하니 공연장으로 향할 때 발걸음이 가볍죠. 라이브로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그 본능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유전자에 깊게 새겨져 있으니까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우선 가요 시장 안에서의 제 작업들이나 방송들이 있겠죠. 그쪽에서는 제가 가진 생각들을 다 얘기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해요. 그 시장에는 그 시장의 소비자들의 니즈가 있는 거니까요. 거기에 맞춰서 활동해야죠. 예전처럼 제 음악적 고집을 거기에 대입해서 상처 받거나 하진 않을 거예요. 그 시장이 다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니까요. 다른 쪽에서는, 제 재주로 할 수 있는 일들, 원래 음악이 잘 해오던 일들을 하고 싶어요.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힘든 생각을 대변해 주고, 멜로디로 마음을 파고들고. 제가 가진 재주는 음들을 조합하는 거니까, 적재적소에 잘 쓰이게 활동하고 싶어요. 그 가운데 계속 좋은 공연들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공연은 특히 메시지를 전달하기 좋은 매체라고 봐요. 한 시간 좀 넘게 스토리텔링이 가능하죠. 아프리카 오버랜드 공연을 보고 아프리카에 대해 갖는 생각이 조금 달라지거나, 먼 아리랑 공연을 보고 100년 전 고려인들의 힘든 시절을 한 번쯤 떠올려 보거나. 이런 일들을 하기에 음악 공연이 가진 장점이 있다고 봐요. 이런 여러 층위의 일들을 통해 많은 분들께 즐거움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기다려 주시는 음반도 꼭 녹음해서 음원으로도 들려 드릴게요. 


인터뷰에서 하림님과 이런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팟캐스트로 들어보세요!

여러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하게 된 이유

국경 없는 음악회의 최종 목표? (기업 사회공헌팀 분들 연락 주세요!)

음악의 재료는 결국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요.


하림님을 응원하고 싶다면?

#그쇳물쓰지마라 캠페인을 응원한다.

아프리카에 갈 일이 있다면 #기타포아프리카 전달자로 지원해 본다.



Interview 헤이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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