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씨아저씨네 대표 공석진님 인터뷰
Hey Listen은 성수동 체인지메이커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는 헤이그라운드팀의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Hey Listen 인터뷰는 팟캐스트와 그를 요약한 텍스트로 발행됩니다. 생생한 목소리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누르시면 풀버전 청취가 가능합니다.
이번 주 헤이리슨에서는 온라인 과일가게 공씨아저씨네의 대표 공석진님을 만났습니다. 현대사회에선 대부분의 생산물들이 유통이라는 단계를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되죠. 때로는 그 유통 단계에서의 관습이 소비자의 니즈와 어긋나 있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 과일 시장이 '맛있는 과일을 먹고 싶다'는 소비자의 니즈에 잘 부합하며 움직이고 있는지 엿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포장지를 줄이기 위해 고민하는 석진님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고요. 회원들의 지지와 함께 상식적인 과일가게를 만들어가는 석진님의 이야기, 많이 듣고 읽어 주세요!
공씨아저씨네 대표 공석진
*석진님의 자세한 프로필이 궁금하다면? 문제적 프로필 듣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온라인 과일가게 ‘공씨아저씨네’를 운영하는 공석진입니다.
상식적인 과일가게라는 말을 자주 쓰십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과일은 맛있으려고 먹잖아요. 저는 과일은 그저 맛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게 제게는 상식이라는 생각으로 일합니다. 그런데 시장에서 과일의 등급을 선별하는 기준은 맛이 아니에요. 크기, 모양, 색 세 가지 기준을 봅니다. 그 얘기는 작지만 맛있는 사과보다 크고 맛없는 사과가 시장에서는 더 비싸다는 거죠. 물론 지금의 등급 기준이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저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제 경우엔 다른 일을 하다가 이 업계로 넘어왔는데, 외부자의 관점으로 볼 때 이상한 점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제 마음이 편한 방식으로 일을 해 나가고 싶었고, 2018년에 사이트 리뉴얼을 하면서 공씨아저씨네의 정체성을 좀 더 명확히 표현하기 위해 '상식적인 과일가게'라는 슬로건을 의도적으로 썼던 것 같아요.
B급 과일에 대해 다양한 글을 쓰셨어요.
앞서 말씀드린 기준을 갖고 시장에서 흔히 과일을 A급과 B급으로 분류해요. 당연히 그 분류기준에 맞추어 시장도 형성되어 있죠. 사실 B급이라는 용어를 없애고 싶어서 전면에 내세운 거였어요. 맛도 있고 큰 문제가 없는데 외모 때문에 많은 과일들이 B급으로 분류되는 것이 정말 당연한가 질문해 보고 싶었던 거죠. 사실 B급은 팔기 좋아요. 싸게 팔거든요. 소비자 입장에서는 아주 매력적인 거예요. 저를 원망하는 분들도 있어요. 원래 싸게 먹던 것을 저 때문에 비싸게 사 먹는다고. (웃음) 저는 거의 A급 가격으로 팔거든요.
B급으로 분류되면 가격이 어느 정도로 떨어지나요?
반값 이하로 팔리는 경우가 허다하고요. 많이 받아도 6-70% 선입니다. 물론 B급으로 분류된 과일들 중에 생과로 판매가 어려운 경우도 있죠. 다만, 그중 제가 보기엔 생과로 먹어도 전혀 문제 되지 않는 것들이 많아요. B급을 너무 큰 범위로 분류하는 거죠. 그 과일들을 정상가의 범주로 끌어올리고 싶었어요. 농가와 협의해서 그런 개체들은 제가 정상 유통시키겠다고 하고 팔기 시작한 거죠.
분류 기준이 그렇게 되어 있다 보니 농가에서 어쩔 수 없이 부자연스러운 공정을 추가하기도 한다고요.
아주 조심스러운 이야기인데요. 배의 경우는 크게 만들기 위해 지베렐린이라는 성장촉진 호르몬 사용이 이슈가 됐었고, 농가들에서 이를 쓰지 않게 하기 위해 이미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죠. 사과의 경우도 맛과는 크게 관련이 없이 이뤄지는 일들이 있어요. 사과 중에 9월 말이 되어야 제 색과 맛이 나오는 품종이 있는데요. 추석이 9월 중순에 있다고 하면, 그전에 납품을 해야 하잖아요. 적기보다 한 달 정도 빨리 따야 되는 거죠. 그러면 아무래도 색도 맛도 덜합니다. 그럼 그걸 보완하기 위해 재배할 때 색을 좋게 하기 위해 착색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요. 색이 완전히 빨갛지 않으면 시장에서 제 평가를 못 받으니까요.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모든 농가가 그렇게 한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다만 시장에 왜곡이 있고, 어쩔 수 없이 부자연스러운 공정을 선택하게 되는 농가들도 있다는 거죠. 사과의 경우는 반사필름도 땅에 많이 대 놓습니다. 햇빛을 반사시켜서 아래쪽도 햇빛을 받아 빨갛게 만들려고 하는 거죠. 그 필름 자재 값도 만만치 않아요. 색에 대한 시장 기준이 완화된다면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작업입니다. 그러면 농가에서 불필요한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되고, 쓰레기도 덜 생기겠죠.
원래 취급하시는 사과 중 올해 색이 독특하게 나온 품종이 있었다고요.
아리수라는 사과인데요. 냉해에 약한 품종이에요. 냉해 피해를 받으면 동록 현상이라고 해서, 철에 녹이 슨 것처럼 표면이 갈색으로 변하고 거칠어지는 품종이죠. 올해 그 현상이 그대로 나타났어요. 농가에서는 망했다고 했어요. 시장 나가면 가격이 뻔하니까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과연 소비자들이 이해해줄 수 있을까 하고요. 사실 맛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오히려 맛은 작년보다 더 좋았거든요. 냉해를 견뎌낸 사과들은 육질이 더 촘촘합니다. 이걸 안 팔면 그동안 내가 해온 이야기들이 다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결국 외모를 본다는 얘기잖아요. 그래서 팔기로 했고, 최근 5-6년 사이에 소비자들 평가는 가장 좋았어요. 많은 분들이 좀 거칠긴 한데 먹으면 너무 맛있다는 평가를 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과일가게를 시작하게 됐나요?
학부 때 복수전공으로 사진을 배웠어요. 그리고 졸업하고는 사진과 관련된 다양한 일을 꽤 오래 했습니다. 그러다 회사 사정으로 회사를 그만 다니게 됐어요. 그때가 제게는 삶의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다시 그냥 취업을 하는 게 맞을지 고민을 오래 했어요. 그러다 처음엔 귀촌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제주도에 집을 알아봤어요. 제주도 농산물을 판매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요. 어려서부터 과일을 워낙 좋아했으니 과일을 팔아볼 수 있지 않을까 했죠. 제주도 집값도 비싸고 해서 귀촌은 못하고 과일을 팔아보겠다는 아이디어만 남아서 여기까지 왔네요. 저희 로고도 그래서 귤 모양이에요. (웃음)
처음부터 문제의식을 갖고 사업을 시작했나요?
전혀요. 회사를 나오고 가장 크게 고민한 부분은, 제 일과 삶이 일치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거였어요. 제가 추구하는 가치가 일에서든 삶에서든 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유기농을 팔면서 라면만 먹거나 하고 싶진 않았던 거죠. 그리고 결국 저라는 사람이 제가 하는 일에 드러날 수밖에 없지 않나 싶었어요. 제가 그런 스타일이기도 하고. 그런 마음으로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제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가치와 맞지 않는 방식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었던 거죠. 그런 생각으로 사업을 하다 보니 조금씩 판매량도 늘고 제 얘기에 관심 가져주는 사람들도 조금씩 생기더라고요. 그러면서 목소리를 조금씩 냈던 것 같아요.
요즘 코비드-19 사태로 인해 소비의 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격히 넘어가고 있습니다. 체감하시나요?
확 넘어오는 것이 느껴져요. 그런데 저는 오프라인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제가 온라인 사업을 하고 있지만,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봐요. 특히 쓰레기 총량과 관련하여서는 더 그렇죠. 온라인은 어떤 방식으로든 포장이 필요해요. 쓰레기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좋은 것은 마트나 과일가게에 가서 과일 한두 개를 포장 없이 사 오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환경이 되는 거예요. 아직은 그런 문화가 자리잡지 못한 것 같아요. 대형마트에 가면 보통 랩에 포장되어서 여러 개 단위로 팔죠. 요즘 그린피스에서 포장 걷어내기 운동 등을 하는데 대형 마트에서 움직이면 파급력이 클 거라고 생각해요.
포장재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하고 계시죠?
현재 진행형인데, 딱히 답이 보이지는 않아요. 사실 업체 입장에선 포장지가 많을수록 편하죠. 배송 과정에서 손상이 덜하고 그만큼 고객 불만이 줄어드는 거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은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파는 상품의 과일과 포장재를 쭉 늘어뜨려 두고 보니까 제가 과일을 파는 건지 쓰레기를 파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민은 되는데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어요. 하나씩이라도 줄여보자 하는 생각을 했어요. 사과의 경우 난좌(사과를 올릴 수 있게 홈이 파여 있는 받침용 포장재) 위에 스티로폼 개별 캡을 씌워서 나가는데, 개별 캡을 없애봤어요. 상단에 종이 완충재를 넣어 유격을 최소화하는 보완을 좀 하고요. 과일이 모든 단계에서 서로 좀 부딪히기도 하고 멍이 좀 들기도 하는데, 저부터 너무 그 기준을 민감하게 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다행히 큰 이슈는 없었습니다. 가끔 멍들었다고 연락 오면 그냥 도려내고 드시라고 해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답이 없는 거죠. 이런 생각에 동의할 수 있는 분들이 아마 계속 회원으로 남지 않으실까 싶어요. 최근에는 난좌도 플라스틱이 아닌 종이로 만든 난좌를 쓰고 있어요. 좋더라고요.
과일 시장의 다양한 문제 해결을 위해 소비자는 뭘 해야 할까요?
소비자들이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소비자가 무슨 죄가 있나요. 소비자가 플라스틱 덕후라서 포장재를 모으는 것도 아닌데. 이건 만드는 사람과 유통하는 사람들이 책임져야 하는 문제예요. 상황이 이렇구나 정도를 이해해 주신다면 감사하죠. 물론 자발적으로 계속 목소리를 내주시는 분들은 너무 반가운 일입니다. 그게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죠. 바꿀 힘이 있는 업체들에 가 닿을 수 있으니까요. 다만, 지금의 상황에 대한 책임이 마치 소비자들의 의식에 있다는 듯한 뉘앙스에는 반대해요. 책임의 무게가 소비자 쪽으로 가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사업의 규모를 키우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시작부터 딱히 계획이랄 것이 없었고, 크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사업을 키우면 스트레스가 커질 거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투자할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겠죠. 그건 제가 이 일을 시작하려고 했던 이유에서 멀어지는 거예요. 통장에 잔고는 늘겠지만요. 저는 계속해서 영세업자로 남겠죠. 그래서 제 목소리는 작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계속 작은 돌을 던지겠죠.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이마트 같이 힘 있는 회사에서 움직여주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종이 난좌의 경우도 수요가 없어 생산이 중단된 적이 있는데, 이마트에서 쓴다면 업계 표준이 종이로 바뀔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으세요?
제가 드라마를 굉장히 좋아해요. (웃음) 특히 미생은 매년 한 번씩 봅니다. 어떤 해에는 장그래 입장에서, 어떤 해에는 오상식 과장 입장에서. 미생 12화에 요르단 중고 자동차 사업과 관련한 내부 비리로 엎어졌던 사업을 다시 진행하기 위해 장그래의 팀이 피티를 준비하는 내용이 나와요. 비리로 엎어졌던 건이라 피티는 변명과 해명으로 계속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고 얘기해요. 변명과 해명이라는 말이 제게 와 닿더라고요. 지금까지 제가 한 일도 ‘과일의 외모와 맛은 관계가 없어요'라고 끊임없이 소비자들에게 변명과 해명을 해온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당당하지 못하고 계속 변명하고 해명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라마에서 장그래가 세계지도를 물구나무서서 보는 장면이 있어요. 그냥 볼 땐 눈에 띄지 않았던 호주가 물구나무서서 보면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죠. 오상식 과장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관습에만 충실하다 보면 드러나야 할 것이 가려지는 수가 있지.’ 앞으로는 변명과 해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과일을 팔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 분이 이 이야기를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멜론 꼭 사셨으면..!)
공씨아저씨네에서 과일을 사서 먹어본다
과일은 외모보다 맛이라는 상식을 주위에 널리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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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헤이리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