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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그라운드 Nov 10. 2018

취향이 있는 쉼

루트임팩트 김나영 매니저

* 본 후기는 ‘인스파이어드 2018 in 제주’의 참여자로 느낀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Inspired는 체인지메이커들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언컨퍼런스 un-conference 형식으로 휴식과 네트워킹의 기회를 제공하는 행사로 2016년부터 3회째 운영되고 있다.

루트임팩트, C-program, sopoong가 주최하는 행사인 Inspired는 올해 ‘취향의 발견’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제주도에서 진행된 Inspired 2018에는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는 100명의 체인지메이커를 초청하였고, 그 결과 94명의 체인지메이커가 참여했다. 3회 중 최다 참석 인원이라고 한다. 아마 (올해 사회적 경제가 대두되고 꽤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때라는 점을 감안하면) 모두에게 쉼이 필요한 타이밍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모인 체인지메이커들은 함께 제주도를 여행하기도 하고, 운동, 라이프셰어, 상담 등 각자가 가진 콘텐츠를 나누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또한 다른 지역과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료 체인지메이커들과 영감을 나누기도 하였다.


누가 모였나?

Inspired를 주최한 세 개의 기관(루트임팩트, C 프로그램, SOPOONG)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여러 체인지메이커들이 초대되었다. 모두가 사회 곳곳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체인지메이커로 초대되었는데, 처음 초대장을 받았을 때의 반응으로 분류하면 소셜 섹터 멤버 / 소셜 섹터 파트너인 것 같다.

전자인 소셜 섹터 멤버들은 대한민국 곳곳에서 사회적 미션을 보다 직접적인 목적으로 두며 사회적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분들로는 사회적 경제 분야 1호 교수인 이은선 님(최근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커지면서 엄청나게 바빠지셨다고 한다.), 농산어촌 청소년들이 각 지역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멘토리 권기효 님,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과 정보접근을 돕는 통로 소보로의 윤지현 님이 그런 사람들이다.


왼 쪽 부터 이은선님, 권기효님, 윤지현님

두 번째로 직접적인 목적으로 사회적 미션을 내세운 곳은 아니지만, 문화/예술 등의 다양한 분야와 콘텐츠로 체인지메이커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나는 체인지메이커가 아닌데 이곳에 와도 되는지 모르겠다’라고 이야기하곤 했는데, 당연히, 너무나 적합한 사람들이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소셜 섹터가 왜 이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재미난 프로젝트를 하는지 알게 되는 매력적인 분들이다. 재발견-재해석-재생산을 지향하는 소다미술관을 운영하며 공공디자인을 겸하는 장동선 님, ‘뒤에 있어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가장 빛나는 것들(Behind but Best)’을 조명하는 신촌살롱의 음주문화 공간 기획자 원부연 님, 낯선 사람과 인생에 대해 토론하는 라이프셰어 최재원 님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왼 쪽부터 장동선님, 원부연님, 최재원님


다시 말해 ‘체인지메이커’나 ‘사회적 경제/소셜 섹터’라는 용어에 익숙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인데,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이 둘의 조합은 이 분야를 제한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꾀하는 면에서 다분히 의도적이었으며 이들은 하루 이틀을 지나면서 꽤 재미난 연대를 이루었다.

이 외에도 지역적으로 대전, 대구, 부산, 제주 등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체인지메이커들이 모여 대한민국 전역을 아우르는 모임이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온 다양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우리는 서로를 ‘영감님’이라고 불렀다.


무엇을 했나?

2018년 인스파이어드 in 제주의 키워드는 '취향'과 '영감'이었다. 2박 3일 내내  각자 취향 따라 활동을 적어 두고 멤버들을 모으는 시간의 연속이었는데, 어느 때는 취향이 참 비슷해서 이야깃거리가 많았고, 같은 모양별을 뽑았다는 공통점으로 너무 다른 취향을 만나서 신선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때로는 자연스럽게 때로는 인위적으로 서로에게 영감을 얻는 시간이었다.(그래서 서로를 영감님으로 부르는 것이다.)

 

2박 3일 일정의 첫 시작은 마디라는 신선한 플랫폼과 같이했는데, 마디(Mardi)는 루트임팩트에서 새로 시작한 서비스로 음성으로 자신에 대한 어떤 것이든 자유롭게 기록하고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이다. 100명의 참가자들은 미리 혹은 그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올리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들 자기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듣는 것이 어색해서 대부분 노트에 스크립트를 쓰고 있었고 간혹 7번씩이나 녹음한 경우도 있었지만 꽤 재미있었다. 2박 3일의 여정 중에도 바닷소리, 함께 웃고 떠드는 소리들을 공유하고, 때로는 살짝 취기가 올라 감성을 나누는 목소리도 있었는데. 그 시간에만 담을 수 있는 이야기와 감정, 흥겨움이어서 참 좋았다.



100명 가까이의 영감님들은 2~3시간씩 큼지막하게 짜인 ‘취향이 있는 대화’, ‘취향이 머무는 쉼’, ‘취향을 담은 여행’ 등의 시간에 누군가 호스트가 되어 함께 하고 싶은 활동들을 적어두면, 혹시나 마감될까 후다닥 달려가 선착순으로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되면 삼삼오오 모여 그 활동들을 해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마냥 같이 게임을 하기도 했고, 노천탕에서 몸을 푹 담그며 노곤 노곤하게 밤하늘의 별을 보다가 갑자기 버스킹 공연을 펼치기도 했고, 제주에 왔으니 귤을 따야지 하는 마음으로 룰루랄라 귤 따기 체험을 하기도 했고,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올해의 버킷 서핑을 꼭 해보겠다고 급하게 바다로 뛰어나가기도 했고, (결국 만든 사람은 거의 못 먹긴 했지만) 밀푀유나베를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다섯 명이 머리를 맞대고 집에서보다 더 열심히 주방을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커피에 관심 있는 여럿은 모여서 에어로프레스(aeropress)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내리는 커피를 맛보다가 선물로 가져온 에어로프레스기를 타기 위해 한 번에 원두 14g 맞추기 게임을 하기도 했으며, 그간 많이 뭉쳤을 온몸의 근육을 가을 햇빛 따스히 맞으며 폼룰러로 살살 풀어 주기도 했으며, 서울이라면 절대 안 했겠지만 날이 좋고 경치가 너무 좋아 어디엔가 홀린 듯 맨발로 잔디에서 둥글게 둥글게 뛰다 해변가에 나가 달리기를 하기도 했고, 처음 본 누군가랑 갑자기 흥이 올라 새벽까지 노래방을 불태우기도 했다. 개인 번외 편으로는 쇼미를 좋아하는 몇 명이 번개로 모여 맥주와 함께 힙합 빅매치(EK.. ODEE.. 쿠기..ㅠㅠ)를 즐기기도 했다…

(이렇게 써보니 또 굉장히 낭만적인 2박 3일...)



인스파이어드 페이스북 페이지를 쭉 넘기면 가을 느낌 제주 느낌 물씬 나는 풍경이 참 아름다워서, 그 시간들 동안 먹은 것들이 참 맛있어 보여서, 웃고 있는 얼굴들이 참 행복해 보여서 마음이 따듯해진다.

 

무엇을 느꼈나?

2박 3일의 일정이 끝나자마자 하나둘씩 자발적으로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후기들이 이 행사의 취지를 새삼 곱씹게 하여 몇 가지를 공유한다.


“6년 반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또래의 동료들을 만나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이 시간들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 권기효 영감님(mentory)


“이런 아름답고 유쾌하고 흥미로운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것인가?... 난 그동안 어느 별에서 혼자 전투를 하고 있었나? 정말 어디에, 어느 별에 계시던 제주에서 뵌 모든 영감님들 오래 건강히 잘 사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시는 동안 또 만나고 나누면 감사하겠다고 생각이 듭니다.” / 장동선 영감님(소다미술관)


“소셜벤처라는 섹터를 정말 우연히 들어와 한 해 동안 즐거울 때도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도 있었는데요. 일 년이 채 지나기 전에 인스파이어드에 참가해서 많은 영감님들과 인생 얘기, 일 얘기, 삶에 대한 이야기를 쉼 없이 하며 그래도 참 좋은 한 해였다!라는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 하주연 영감님(위허들링)


“내가 눈앞에 두고 관심을 가지는 세상의 주제와 소재는 극히 일부지만, 이렇게 취향 있는 여러 사람들이 다방면의 이슈에 관심을 가지면서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는 노력, 그런 모습을 눈앞에 발견하면서 마음의 큰 위안을 얻었습니다.” / 장승규 영감님(서울케어즈)


“‘나는 왜 초대된 것일까?’라는 질문을 마음 한편에 가지고 참여했던 시간. 취향도 일도 삶도 배울 점이 너무 많은 분들과 함께 한 끝에 남은 제 정체성에 대한 결론은 ‘체인지메이커들을 만나야 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가 무엇을 바꾸는 체인지메이커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들과 함께하는 것이 너무 행복한 사람이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소중한 기회로 연결된 체인지메이커분들 사이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새로운 생각에 닿았습니다. 언젠가부터 이런저런 작은 시도들을 해왔고 계속해서 그다음 스텝을 고민하고 있던 지점에서 너무 큰 선물을 받게 되었습니다.” / 이병성 영감님(미래를 만드는 교육 읽기)


짧은 듯하면서도 꽤 긴 인스파이어드의 시간들을 통해 누군가는 각자의 사업에서 고민하고 있던 부분을 타개할 새로운 영감을 얻었고, 누군가는 혼자인 줄 알았던 이 섹터에서 함께 걷고 있는 든든한 동지들을 만나 힘을 얻었고, 누군가는 대표라는 이름으로 한동안 묻어둬야 했던 본래의 자신을 다시 만날 수 있었고, 누군가는 자의로는 절대 가질 수 없었던 진짜 쉼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시 한번 Inspired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네트워킹 행사는 굉장히 많지만, 갑자기 초대를 받아 ‘2박 3일’이란 시간 동안 ‘접점이 전혀 없을 수도 있는 사람들’과 비즈니스보다는 ‘개인의 취향과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어릴 적 MT에서와 같이 별생각 없이 밤새 이야기를 나누던 그 시간 또한 나이가 들면서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꽤 소중했을 것이다. 동기 많은 대기업 신입을 거치지 않고 소셜 섹터에 들어온 신입으로서, 다소 외로운 창업의 길을 걷고 있는 대표로서, 다양한 경험을 거쳐 새로운 시작을 한 경력자로서 2박 3일의 시간은 모두에게 꽤 유의미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 독특한 행사에 대해 각자가 느끼고 있는 것들은 매우 다를 것이다. 2박 3일의 시간에 충분한 영감을 얻어가지 못하고 피로를 더 얻었을 수도, 예기치 못한 불편함을 느낀 시간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저렇게 얻은 소회가 나비 효과로 번져, 어떻게든 각자의 삶에 inspired 되었으면 한다.


3개의 운영사와 매년 새롭게 구성된 운영 TF에서는 참여자들의 네트워크를 지속시키기 위해 행사가 끝난 후에도 후속 모임을 계획한다고 한다. 이를 통해 체인지메이커가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동료들의 네트워크 안에서 더욱 안정적으로 성장하며 사회혁신 활동을 지속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향후에도 Inspired의 형태로, 혹은 새로운 방식을 통해 체인지메이커에게 휴식과 네트워킹의 기회가 마련될 것이다. 그때는 더 많은 사람들이 또 다른 방법으로 사회를 변화시켜가고 있음을 목격하며 서로에게 영감을 얻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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